본 글은 새길교회 창립 26주년 기념 정기 포럼(2013.03.03) 발제문(새길이야기 48호에 게재)으로 주최측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순차 게재합니다. 1. 유아기적 한국교회를 말하다(이오갑 그리스도대 교수) 2. 세계기독교대안운동(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3. 한국기독교의 대안운동과 방향제시(방인성 함께여는교회 목사)

▲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담임목사)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기독교 또한 예수의 성전숙청(혹은 성전파괴)사건이 말해 주듯, 당시의 주류인 유대교에 대한 대안적인 신앙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분파운동이 있었는데, 이 또한 대안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 안드레로 대변되는 예루살렘 중심의 예수 운동에 대한 대안으로 스데반, 빌립, 바울로 이어지는 탈유대 예수운동이 있었으며 이어 지역적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 마가 마태 누가(복음)공동체들의 운동이 있었고 이어 영지주의 후기 시대를 반영하는 요한(복음)공동체 대안 운동이 있었다. 더 나아가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베드로(복음), 심지어는 스승을 팔아넘긴 배신자로 낙인찍힌 가롯 유다(복음)를 따르는 대안적 예수운동이 있었다. 헤겔이 말한바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는 법이고 이는 또 하나의 합(合)을 거쳐 진일보한 또 하나의 정-반-합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이든, 신앙운동이든 운동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안운동은 항시 있어왔던 것이고, 항시 있어야 하는 운동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 혹은 기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일체를 대안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질의 관점에서 처음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뿌리회복운동이 되었을 때, 진정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이 관점에서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예수가 세웠던 대안공동체는 결국 로마제국이라는 지배문화 속에 흡수되었고, 저항과 비판으로서의 예수의 민중운동은 종탑과 교리 안으로 순화되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추구하고자 하는 기독교 대안운동은 정의 평화 생명이라는 가치로 이해되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어떻게 이 땅에 세워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예수의 갈릴리민중운동의 회복이어야 한다. 다만 예수의 운동은 로마제국의 폭력에 대하여 사랑을 무기로 하는 민중저항이라는 종교 사회 정치적 관점이 핵심이었다면,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기에 덧붙여 지구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와 무분별한 개발과 에너지 소비로 인한 지구생태계의 멸종이라는 또 다른 종말론적 관점이 중요하다.

기독교 대안운동은 예수가 꾸준히 설파했던 맘몬과의 싸움이다. 맘몬은 곧 제국이 보장하는 거짓 평화의 실체인데, 이 실체는 남보다 많이 갖는 것이 성공이요, 큰 것일수록, 비싼 것일수록 좋은 것이자 옳은 것이라는 시장 자본주의적 가치를 나타낸다. 기독교 대안운동은 이를 무효화하는 자기 성찰에 기초하여 ‘예수믿기’에서 ‘예수따르기,’ ‘예수살기’로 나아가는 ‘십자가지기운동’이어야 한다. 예수는 당시의 별 볼일 없는 인간 곧 죄인들로 정죄 받아 온 갈릴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저들이 주체가 되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쳤다.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는 ‘생명의 하느님,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본래는 아시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정의의 하느님‘을 앞세웠다. 그러나 백인 주도의 중앙위원회가 그 주제를 비틀었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로서, 예수와 같이 권력과 부가 집중된 성전(지배구조)을 깨끗케 하여 만민(가난하고 병든 자, 여자와 이방인, 장애인, 성소수자 모두를 포함)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는 정치사회의 구조적 변화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진정한 대안이란 대체가 아니라, 기존의 구조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가 자신의 구조 안에 갇혀버리거나(reformed) 또 하나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conformed) 끊임없이 개혁해가는(reforming) 해체 운동(out of form)을 말한다.

필자는 세계 기독교대안운동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전통에 따른 기성의 목회를 하여 오면서, 예수가 행동했고, 지금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듯이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하느님 나라의 본질을 찾고자 나름대로 몸부림쳐오고 있다. 진보교회로서 기성과 대안의 경계선에 서 있고자 노력하여 온 향린교회의 목사로서 필자의 지향하는 꿈은 언제나 대안 운동에 있었다. 내게 영향을 주었고 어렴풋이나마 꿈꾸는 두 개의 기독교 대안 운동은 내가 직접 경험한 세이비어 교회(운동)와 부루더호프 공동체(운동)이다. (※지금은 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주로 지역의 이름을 딴 개별 공동체 이름으로 불린다. 부루더(Bruder, brother)라는 남성 단어 때문이다.)
세이비어교회 운동이 교회의 기본 틀을 갖는 운동이라면 부루더호프 공동체 운동은 그 틀마저 전면적으로 깨는 운동이다.

1. 세이비어교회의 대안운동

세이비어교회는 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의 섬김을 우선시 하여 온 워싱톤 DC 중심가의 한 교회이다.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상을 직접 경험한 고든 코스비목사는 1947년 교회를 개척하여 2010년 은퇴하기까지 63년간 이 교회를 통해 현재 9개의 자매교회와 40여개의 수많은 선교기관들을 만들어냈다. 이 교회는 교인이 150명 이상이 된 적이 없다. 코스비목사의 설교는 언제나 미제국주의의 침략성과 야만성 그리고 냉혹한 시장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들어본 미국목사의 설교 중 가장 체제 비판적이었다. 미국을 Empire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복지사역 혹은 내적 치유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 미국 워싱턴 DC 북부 빈민지역에 자리한 세이비어교회 본부 건물

교회와 선교활동(2-15명)은 구분되지 않는다. 선교활동을 하다 예배가 필요하다고 여기면 교회가 된다. 예배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절반가량이 자체 건물 없이 사역지에서 주중에 모인다. 필자는 나이 든 할머니 4명이 모이는 주중 공적 예배와 성찬식에 참여한 감동을 지니고 있고, 책방과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는 the Potter's House 교회에서는 식당 한 구석에 20여명이 모여 테제 노래와 이 단체를 통해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한 흑인 평신도 목사의 감동어린 설교와 성찬식을 경험하기도 했다. 헨리 나우웬이 이 공동체에서 영향을 받고 대학 강단을 떠나 토론토의 정신박약 장애인들과 일생을 보내게 되고. 정신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장 바니어 또한 이곳에서 영성훈련을 받고 배출된 교인이다

세이비어교회는 담임목사 이후의 교회 진로를 놓고 몇 년을 토론한 끝에 교회를 해산하고 재산을 모두 자매교회에 분배하였다. 내가 보기에 최소한 10년 이상 별다른 노력 없이도 유지가 가능한 교회였다. 미국에는 이런 교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세이비어교회의 나이든 교인들은 단순히 예배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것은 교회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여기서 세이비어 교회의 위대성을 보았다.

각기 독특한 예배와 지역 선교를 갖고 있는 9개의 교회 외에 이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40여개의 사역을 희년 사역(Jubilee Ministries)이라 부르는데, 이 사역은 단순한 구제가 아닌 가난한 자들이 자립해서 전인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크게 보아 3년 과정의 ‘섬김 리더십 학교’를 비롯하여 ‘주거사역’ ‘치유사역’ ‘영성사역’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사역’ ‘취업보조와 성인교육 사역’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www.inwardoutward.org/page/churches 와 www.inwardoutward.org/page/ministries-church-savior)

하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10년 전 침묵 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10명이 3일내내 침묵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닫혔던 말문을 터트리는 마지막 자리에서 모두의 울음보가 터졌다. 

거기서 만난 50대 후반 여성 세이비어교인 이야기. 이 교회를 30년 이상 다니고 있다. 단순한 교인이 아니라, 선교활동에 있어 매우 헌신적인 활동가였다. 그러나 정교인은 아니다. 정교인이 되려면 약 2,3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고, 마지막에 선서를 한다. 거기에는 자신의 소유가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필요에 따라 하느님나라 사업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겠다고 하는 글귀가 있는데 그는 이 구절에 걸려 마지막 관문인 선서를 하지 못했다. 부자청년이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며 떠나갔다는 청년과는 달리 근심을 안고 30년을 예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실천에 철저한 교회이다. 한 교회는 교인을 4종류로 나누는데, 재정기여도에 따라 구분이 된다. inward/outward 라는 매일묵상 글이 메일로 오는데, 주제는 항상 돈이다.

2. 부루더호프 생활공동체 신앙운동

부루더호프는 독일의 저명한 강사이자 작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16세기 초 개혁운동 당시 제도권 교회를 떠나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추구하던 후터파 공동체에게 영향을 받아 1920년 독일에서 시작했다. 1930년대 말 나치의 박해를 피해 파라과이로 피신을 갔다가 지금은 9개(미국6, 영국2, 호주1)의 공동체(각각 250-300명가량)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일체의 사유재산 없이 전원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에서 서너 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운동을 곳곳에서 시작하였다. 중학교까지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없는 이곳 아이들은 공동체 가족들과의 깊은 대화와 교제, 독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사고력이 깊어져 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소수의 인원만을 보낸다.

▲ 부루더호프 공동체

이들은 매우 단순한 색깔로 된 일종의 제복 같은 옷을 입으며 얼굴에는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띤다. 어린이를 위한 가구나 놀이 기구, 장애자용 기구가 이들의 주 수입원인데, 제품의 질로 인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노동, 그리고 자연과의 만남을 중시한다. 결코 궁핍하지는 않지만, 가구, 옷, 신발, 장난감 등등 대부분의 생활용품은 바깥사회에서 쓰던 것들이다. 남을 험담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직접 솔직하게 말하기(Straight Talking In Love)를 세례 서약의 하나로 할 만큼 중요시 여긴다. 한번은 전체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재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죄수와 마약 중독자들의 교화, 사형 폐지운동, 쿠바 어린이들과의 교류 등 지역과 세계 평화운동에 나서고 있다.

평신도 사제정신에 따라 성서 말씀을 독점적으로 해석하는 목사와 설교의 제도가 없다. 성령의 직접 계시를 중시하여 묵상을 통한 대화로 깨달음을 나눈다. 특별한 예전으로 드리는 예배 또한 없다. 일요일이 되면 잔디밭에 둘러앉아 노래하며 얘기를 나눈다. 특별한 절기에는 모두가 악기를 하나씩 다루기에 소규모 교향악단과 같은 연주를 스스로 하기도 한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모이자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가 몸이 불편함을 알리고 기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300명이 그분이 누워있는 침대가 보이는 뒤뜰에 모였다. 누군가가 노래 선창을 하자 모두가 함께 부른다. 멋들어진 화음들을 넣어서 부른다. 그리고 잠시 침묵기도를 한다. 또 누군가가 노래 선창을 하면 함께 부른다. 이번에는 7살 어린이가 선창을 한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불러온 저들은 수백 곡의 노래를 암기하고 있다. 저 멀리 뭉게구름이 낮게 떠가는 늦은 오후 푸른 초원의 능선이 물결치고 양들은 하루를 정리하는 목가적인 자연을 바라보는 가운데 300여명의 남녀노소가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화음에 정녕 이곳이 하늘나라가 아니라면 그 어디가 하늘나라이겠는가 하는 뭉클한 감상을 가진 적이 있다.

필자는 거리의 투쟁 현장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의 노래를 부를 때, 우리 모두는 역사의 현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경찰의 벽 앞에서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의 찬송을 부를 때에는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체험한다.

"브루더호프의 글들은 제자도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안에서 체득한 경험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 안에서 연단되고 정화된다. 용서와 치유의 모든 것을 배우는 곳은 바로 공동체이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배우는 곳이 공동체이다. 공동체야말로 참된 사랑의 학교이다."(헨리 나우웬)

한때 목사후보생들과 더불어 공동체생활을 했던 본 회퍼 목사는 교회를 다음의 3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이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새 인간으로서의 하나이다. 둘째, 교회는 현장이다. 예수는 선한 것과 속된 것이 하나 되는 현장 안에 계신다. 셋째, 교회는 타자를 위한 존재이다. 세상의 죄에 저항함으로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한다. 정리하면 말씀 선포(케르그마)를 통해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 섬김(디아코니아)을 완성한다. 기독교 대안운동이란 다름 아닌 예수 사랑으로 세상을 변혁해가는 운동이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른을 갓 넘긴 글쟁이 김현진은 「뜨겁게 안녕」이란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도시에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그렇듯, 고단하고 막막하다. 넓고 깨끗하게 구획되는 거리는 좁다랗고 아무렇지도 않고 후줄근하고 또 정다운 골목을 쾌속으로 말살하고, 그 골목에서 마주치던 수많은 사람들을 감쪽같이 증발시켰다.” 그렇다. 오늘날의 도시 교회는, 구성원인 교인 모두가 부자를 꿈꾸듯 대형교회를 꿈꾸는 모든 교회들은, 사람들을, 관계들을 감쪽같이 증발시켰다. 두 날개라는 이름하에 소모임은 수없이 생겨나지만, 거기에는 직선만 있을 뿐이다. 예배와 성경공부라는 잠시의 웃음을 뒤로하고 각자의 아파트로 돌아서는 저들에겐 씁쓸함과 고독이 주위를 배회한다. 김현진은 강압적인 학교 교육에 반발해 고등학교를 박차고 나와 <네 멋대로 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집도 절도 없이 빽도 없이 도시빈민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삶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책 인세의 절반을 용산참사 유족들, 유기동물 친구들, 쌍용차 해고자, 청년 유니온 등에 희사한다. 

우리는 왜 이러한 교회를 하지 못하는가? 대안교회 운동이란 바로 ‘내 멋대로 해 보겠다’는 운동이 아니겠는가?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은 곧 목사와 건물이 없는 작은 공동체 교회 운동을 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아니겠는가?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