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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곧 자본주의다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을 읽는다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5.14 07:17

프랑스에 앙리 르페브르(H. Lefebvre)라는 사회학자가 있다. 이 학자를 알게 된 것은 다른 책을 읽다가 그 책의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는 이 사람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책들을 좀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르페브르에게 느꼈던 매력은 그가 이야기하는 "일상성"에 대한 이론들이었다.

그가 국내에서는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자 혹은 맑스주의의 한 아류를 구성하는 철학자 정도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는 전후 프랑스의 지적풍토에서, 특히 공산당의 사상정립과정에서 공공연히 구조주의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으며, 1991년 9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대변화에 맞서 싸운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프랑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사(前史)라고 일컬어지는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그는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을 반대하는 ‘121 선언’에 참여했다. 미국의 마르쿠제에 비견될 정도로 68년 일어난 낭트지역의 학생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정력적인 실천 활동도 펼쳤다. 또한 이 시기는 미국의 포디즘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프랑스에 물밀듯이 밀려와 그의 표현대로 ‘소비조작의 관료사회’가 정착된 때였기에 이 과정에 수반된 일상생활의 무기력한 식민화 및 도시화에 관한 연구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새로운 공간의 출현이 르페브르로 하여금 일상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68년부터 74년에 이르기까지 도시화 혹은 사회공간 연구에 몰두하게 한다. 따라서 『도시혁명』(1970), 『자본주의의 생존』(1973), 『공간의 생산』(1974) 등 공간의 역사를 개괄한 대표적인 저작들이 나오게 된다.

사회이론과 공간이론의 통합

오늘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마다 훌륭한 족자처럼 걸려 있는 국토개발도면과 같은 물적 공간과 다른 하나는 공동체 혹은 지역사회의 공간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따라서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존재론적 공간(현상학적 관심)과 인식론적 공간(사회적 관계와 공간구조의 관계에 대한 구조주의적 관심)을 통합해서 해명해 보려는 노력이 생겨날 수 있으며, 이를 일명 사회공간이론이라고 부를 만하다. 

르페브르의 사회공간론은 철학적 관심에서 시작되며 60년대 프랑스의 정치, 사회 환경 속에서 공간문제에 대한 연구로 펼쳐졌다. 특히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실제 그리스의 도시공간에 투영되었음에 반해 오늘날 인식론적 사변으로 전락한 철학이 공간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연구과제는 전후 프랑스 경제복구 과정에서 본격화된 포디즘 체제의 도입과 근대화, 도시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근대화과정은 과거의 공간배열을 급속도로 변모시키게 된다. 또한 공간배열의 변화는 포드주의의 사회체제 정착과정으로 시민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국가권력과 그 계획체제의 힘을 빌어 일상생활의 공간 위에 급속히 재편된 것으로 일상생활이 상품화되고 본연의 축제적 기능을 잃어나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르페브르는 이를 일상생활의 식민화 또는 시공간의 식민화로 불렀다.
 
르페브르는 사망할 때까지 66권의 책을 발표한 왕성한 사회이론가였다. 1차 대전의 격변기에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에 심취하여 과학발달사, 일상생활의 특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그는 20년대 말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의 주도적 철학자로 활약하나 1958년 후루시초프 보고서(1956) 논쟁 끝에 공산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탈당 이후 스탈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탈당 이후 그의 연구는 60년대의 일상생활에 관한 연구, 1968∼1974년의 도시화와 공간생산 연구로 크게 나누어진다. 
 
일상생활의 연구에서 르페브르는 근대성의 기원, 농촌생활의 구조, 도시혁명의 중요성 그리고 대중운동이 압도적인 혁명의 동력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주장의 전형과도 같은 파리코뮨의 기원에 주목했다. 도시화와 공간생산 연구는 전문학술지인「공간과 사회」(Espace et Societe)의 발간으로 이루어 졌으며, 이 학술지를 무대로 마뉴엘 카스텔과 같은 소장사상가들이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다. 이러한 도시화와 공간 생산의 연구결과는 7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데, 그 대미를 장식한 것이 1974년 발간된 『공간의 생산』이다. 
 
   
▲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공간의 생산』

이 연구는 르페브르가 이룩한 도시연구의 핵심적 산물이며, 그 연구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헤겔과 맑스, 니체의 시공간 논의들이 공간생산의 연구에서도 ‘대결과 통합’ 방식으로 다루어지며, 사회와 공간의 ‘통합이론’을 구축해 간다.

르페브르가 구상한 공간의 틀은 ‘공간의 재현’, ‘재현의 공간’ 그리고 ‘공간적 실천’이라는 삼각체제의 사회공간이다. 여기서 사회공간의 두 가지 형태는 ‘공간의 재현’과 ‘재현의 공간’이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실천’에 의해 공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 틀은 자본주의 추상공간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고 있으며, 특히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관련성에 관해 독특한 논리를 편다. 그는 자칭 ‘도시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전세계적으로 도시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산업사회는 그 자체로써 완결된 것이 아니라 도시성(urbanism)을 위한 준비단계이며, 산업화는 도시화 속에서 완결되고, 또한 도시화가 산업생산 및 산업조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도시혁명의 과정 속에서 내적 특성과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던 절대공간들이 추상공간으로 변신된다. 절대공간이란 대부분 자본주의 이전의 종교적, 정치적 공간이거나 혈족과 토양과 언어가 결합된 산물로서 전개과정 속에서 사라지기보다는 역사적 공간이자 재현의 공간으로서 또 다른 기호체계를 가지고 생존하고 있는 지난날의 유산인 반면 추상공간을 생산해 내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 하에서 생성된 공간의 재현들 속에서도 즉, 식민화된 일상성의 공간 속에서도 새로운 공간적 실천에 기반한 새로운 재현의 공간들이 끊임없이 틈새를 비집고 일어난다. 

이와 같이 사회공간을 지배적 생산양식에 결부시키려는 르페브르의 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노동과 자본의 관계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노동, 자본, 토지관계의 삼위일체로 개념화하기에 이른다. 예컨대 자본주의 이전의 기념비적 공간들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소속감을 주면서 합의를 이루어내는 일종의 응집체로써 기능한 데 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념비적인 공간에 대응하여 들어선 빌딩은 힘을 통한 통제의 대상을 상업적 거래의 대상으로써 성공리에 결합시킨다고 할 수 있다. 

즉, 소비조작, 소비사회, 욕망의 해방과 대중민주주의 등 현대인은 끊임없이 소비하고, 욕망을 교환하고, 자본주의는 모든 이에게 욕망의 방향을 정해주면서 시장확대를 꾀하는 투자-생산-소비의 재투자로 이어주는 자본순환 과정이 자본주의 등장 이후 공간 정치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빌딩은 많은 사회관계들을 구겨 넣거나 모든 패러다임의 공간들을 뭉뚱그려 환원시키는 것으로 자본주의시기에 와서 공간문제와 공간의 모순들이 다른 무엇(예를 들어 계급갈등)보다 핵심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사회공간론의 공간적 실천

무릇 공간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이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공간개입을 통해 구성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소의 이미지나 집단최면과 같은 실천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르페브르가 말하는 공간적 실천은 그의 이론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공간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공간에서 표출되는 사회적 힘의 갈등이 공간에서 표현되어 그려지기보다는 병렬적인 이미지들의 집합으로 구성되는 기호학파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즉,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이 사회공간을 단순히 메시지, 혹은 기호로만 환원시킴으로써 역사와 실천을 모두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공간은 읽히기 위한 것이지 이전에 생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르페브르는 공간적 실천과 다양한 사회공간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논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일상성의 종식이라는 특유한 변혁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르페브르는 도시의 본연적인 축제성을 자본주의의 일상성이 짓누르고 있다고 판단하며, 그것이 이른바 ‘도시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어 그저 불꺼진 극장의 차가운 연극세트처럼 자리잡고 있을 뿐이며, 시장과 권력위주의 도시화만이 끝없이 연장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숨쉬고 있는, 자본주의적으로 재현된 공간도 삶의 변혁을 표방하는 일상성의 비판이라는 매듭을 이미 자신 속에 내포하고 있는 모순의 덩어리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일상 속의 인간을 뒤덮고 있는 환상에 대응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변형시키려는 실천은 근대적 지식체계인 합리화나 계획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사회 전체적 수준의 실천, 곧 문화혁명 수준의 실천을 의미한다.

사회관계는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공간관계의 형태로 나타난다. 근대화와 함께 시작된 도시혁명의 시대에서 사회적 실천은 무릇 공간적 실천인 것이다. 지금도 어느 구석에선가 처절하게 진행되는 공간적 실천의 장은 공간적 재현의 횡포 앞에서 재현하는 공간의 상상력으로 실행되고 있을 것이다. 르페브르가 지적하듯 자본주의는 갈수록 공간생산으로 생존해 나가며 자본순환의 생산에 있어 중추적인 부분을 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인 공간이 강화되면 될수록 생산된 공간의 실재와 인간에 대한 통제력은 약화되어 갈 것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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