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1), 나의 인생 책 중에 한 권이다. 적이란 개념의 형성과 실체를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책 속에는 두 개의 참호가 있다. 주인공인 나는 참호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반대편 참호에도 역시 한 병사가 있다. 그는 적이다. 전쟁은 점점 길어지고, 우리 둘만 남은 거 같다. 우리를 전쟁터로 보낸 사람들은 우리를 잊은 건 아닐까. 외롭고 배고픈 것만 빼면 상대와 나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죽이는 동정심도 없는 야수이기 때문이다.
지친 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결국 전쟁을 끝내기로 작정하고, 한밤중에 몰래 상대의 참호로 진격했다. 그런데 도착한 상대방의 참호는 텅 비어있었다. 적 역시 같은 생각으로 나를 공격하러 참호를 나섰던 거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참호에 붙어있는 적의 가족사진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가족이 있으면서 어린아이와 동물을 죽이고 물에 독을 탈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적의 참호에 붙어있던 전투 지침서를 보았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로부터 내려온 지침서이다.
| “적은 잔인하고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따라서 적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죽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죽인 뒤 우리 가족까지 절멸시킬 것이다. 그래도 적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개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동물이란 동물은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나무를 불태우고 마시는 물에 독을 탈 것이다. 적은 인간이 아니다.” |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받은 적에 대한 지침서와 적의 참호에 붙어있는 지침서는 완전히 똑같다. 다만 적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이 붙어 있을 뿐이다. 이건 거짓말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도 내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현실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2024년 12월 3일, 근 반세기 만에 계엄이라는 역사를 다시 만난 우리 국민은 커다란 혼동에 빠졌다. 계엄은 해제되었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가며 전개되는 정치적·법적 절차는 국민들에게 긴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은 또 다른 분단으로 나뉘고 있는 느낌이다. 민주공화국이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따라 설립된 대한민국이 그간 쌓아온 가치는 부인되고, 국론은 분열되어 서로를 적으로 몰아세우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계엄선포로 인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는 이념이라는 가면을 덧씌운 채 거세어지고, 정계와 언론이 부각시키는 이분법적 구도와 치졸한 언어들은 눈덩이처럼 부풀어만 간다. 민주적인 시위 현장을 서부지방법원 폭동으로까지 변질시킨 사태, 과연 무엇이 평범한 시민들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서로 대치하게 만들었을까? 서로 싸우고 분열됨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일단 한반도에서 선포된 계엄의 계보로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한반도에서 선포된 최초의 계엄령은 미군정이 대구에서 선포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기쁨은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지고 남한에서는 미군정의 실정으로 주민 반발이 거세졌다. 1946년 10월 1일, 해방 후 일 년여 동안 기아에 허덕이던 대구 시민들은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2)
경찰은 이에 발포하였고, 일제강점기의 관료와 친일 인사들이 대부분이던 경찰에 대한 악감정이 더해져 주민과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이에 경상북도 미군정 당국은 10월 2일 계엄을 선포하였고, 이후 10월 7일까지 여섯 차례의 계엄령을 포고했다.(3) 해방 이후 국가 건설 과정에서 식량과 기아 문제뿐 아니라 경찰개혁 및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잔재 타파, 미소공동위원회 재개 등의 현실 과제를 해결하고자 발생한 대구의 10월 항쟁은 좌절되었고 시민들은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다.
당시, 미군정 계엄 하에 사살된 사람들 중에는 일제강점기 때 좌우합작 항일단체의 간부이며 해방 후 인민위원회 간부를 지낸 지역 명망가가 있었다. 10월 3일, 2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구미 경찰서를 습격하였던 그는 추후 대구에서 온 경찰부대에 의해 10월 6일 논바닥에서 사살되었다.(4) 그의 이름은 박상희, 계엄을 4차례나 선포하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이다. 박정희 역시 그해 12월에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하여 군사총책을 담당하였고, 여수·순천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군부 내 남로당 명단을 밀고하고 숙군사업에 공헌하며 사면되었고, 6.25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사상 전향하여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이를 발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장기 집권과 독재체제를 굳건히 했다. 이러한 집안의 역사는 대구와 경북지역의 보수화 과정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전까지 애국과 친일로 어렴풋이 구분되던 시민들은 좌익과 우익이라는 사상으로 구분되었고, 학살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공포로 인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전쟁 이후 친미 반공정권 구축의 토대가 된다.(5)
이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다시금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령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선포되었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대회에 참가한 제주도민들에게 행한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시민들을 검거하기 위해 본토의 경찰과 월남한 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이 토벌대로 제주에 파견되었다. 일 년여 동안 시민 2500명이 구금당하고 테러와 고문이 자행되자, 이에 대항하여 결집한 남로당 무장대는 1948년 4월 3일 경찰과 우익단체를 공격하였다.
이를 진압하고자 파견하려던 여수의 14연대가 반기를 들자, 이승만 정권은 1948년 10월 22일 대한민국 최초의 비상계엄을 여수와 순천 지역에 선포하고 연이어 11월 17일에 제주에도 계엄을 선포하였다. 그런데 계엄법은 1948년 7월에 헌법이 제정된 이후 1년이 지난 후인 1949년 11월 24일에 제정되었으므로, 계엄 관련 법률이 부재한 상태에서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6) 혹자는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을 합법적 근거로 삼는데, 일본은 이미 패전 이후 1947년 5월 3일에 계엄법이 폐지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일제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결국 불법적 계엄이 동반된 제주4·3사건에서 3만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비율은 12.6%이고, 정권의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는 78.1%이다.(7) 가해의 선후 문제와 가해자에 의한 피해자 비율을 넘어서, 법률적 근거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선포된 최초의 계엄은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폭력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국가 형성을 완성시켰다.
유사하게 박정희의 유신정권 역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며 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합법화하기에 이르렀다.(8) 이러한 국가폭력의 양상은 권력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자기 존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어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선포된 계엄은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에 입각한 폭력의 남용으로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존엄을 박탈해 왔다.(9)
살아남을 권리와 기본권의 박탈은 체제 분단을 명분으로 한 각양각색의 폭력 형태로, 경쟁 세력과 상대를 억압하기 위한 분단폭력에 기인한다. 우리는 분단되고 분열될수록 권력에 의한 폭력에 취약해진다. 체계적으로 좌우를 나누고 통제하며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을 서로의 적으로 만드는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21세기 과학기술과 자본은 더욱 교묘하게 편파적인 매체와 정보를 침투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확신을 부추기고 선동한다.
우리가 이분법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적이 되는 순간, 그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권력을 유지한다. 국민들이야 서로 찢어져 죽어가든 말든, 가족이 분열되는 말든, 서로를 악마화하고 이분법으로 나누는 언어로 선동하는 매체와 사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양비론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해 온 근원적인 가치를 들여다보고 함께 진리로 나아갈 단초를 찾자는 것이다.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 어떤 종교도 상대를 미워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적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야 한다.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우리를 가르는 권력과 이념,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해 조작되는 나 자신의 무의식적인 이분법을 성찰해 볼 때이다.
곧 봄이 온다. 그저 정체된 채,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것을 반복할 터인가? 함께 존재하느냐 함께 소멸하느냐의 문제이다. 기존 정치에서 적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었다면, 새로운 정치는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믿는 종교적 성찰로부터 가능해진다.(10)
또한 정치인은 인간의 존엄과 조건을 보호하는 모든 여건을 마련하도록, 원대한 목표를 품고 현실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집을 짓는 건축가처럼 실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11) 따라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릴 수 있도록 만남의 자리를 조직하고, 각자가 다양한 이에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표명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논의는 풍부해지고 기존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실체를 깨달은 병사는 손수건에 전쟁을 끝내자는 편지를 써서 병 속에 담는다. 그리고 적에게, 아니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에게 닿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온 마음을 다해 힘껏 던진다. 내가 그의 세계에 무관심하고 경멸하기를 넘어서고, 먼저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다른 정치, 새로운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선택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적을 필요로 하는 권력은 외면되고 도태되며, 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기획할 때이다. 다가오는 봄, 나의 편지가 그에게 닿는다면 우리는 함께 변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와 함께 꽃놀이 갈 2025년의 봄을 기대해본다.
미주 |
| (1) Davide Cali 글, Serge Bloch 그림, 안수연 옮김. (2018). 적(L’ennemi). 파주: 문학동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