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교회는 더 이상 ‘쇠퇴’가 아니라 ‘소멸’의 문턱에 있다”
11월 3일(월) 오후, 익산 유스호스텔 대강당, 한국기독교장로회 농어민선교목회자연합회(이하 기장 농목)와 기독교농촌개발원이 공동 주최한 ‘2025년 신년 목회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신민주 목사(기장 농목 회장, 용학교회)는 20년 만에 재실시된 농촌교회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지금 농촌교회는 쇠퇴를 넘어 급격한 소멸 위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발표는 이날 행사 전체의 방향을 규정했다 —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으로 응답하자.”
“농촌 교회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신민주 목사는 발표 서두에서 자신의 첫 목회지를 회상했다. “1998년, 첫 목회지였던 농촌교회에서 교인들은 모두 한탄하는 한숨을 내내 내쉬었다. ‘우리가 머지않아 죽으면 이 교회는 아무도 없게 될 텐데, 전도사님은 그때 어디로 가신다요?’” 그는 이 기억이 “한국 교회 전체의 축소판”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 결과는 농촌 교회의 위기를 수치로 입증했다.
기장 교단의 농촌교회 중 장년 10명 미만이 11.5%, 10~19명**이 29.2%로, 전체의 40% 이상이 출석 교인 20명 미만이었다. 연령 구성 또한 심각했다. 60세 이상 교인이 71.4%, 70대와 80대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아이들이 없는 교회, 새 신자가 3년 동안 한 명도 없는 교회가 60%가 넘는다. 농촌교회의 ‘미래 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사실상 절망에 가까운 현실을 드러냈다.
‘순회목회·이중직·교회 합병’이 현실적 대안으로
신 목사는 농촌교회의 위기가 단순한 ‘교세 감소’가 아니라 ‘운영 불능’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이후 22% 이상이 교인 수 감소를 경험했고, 그 중 다수는 30~40%가 줄었다. 이제 목회자 개인의 헌신으로 버틸 단계는 지났다.”
실태조사에서 응답한 농촌 목회자의 83.7%가 사례비만으로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52.6%가 이중직을 찬성, 43.1%는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결국 95%의 농촌 목회자가 이중직에 긍정적이다. 이건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교회 합병(32.6%)과 순회목회(41.6%)가 향후 10년 내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농촌교회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이 아니라 ‘정책’이다.”
“농촌 목회자의 70%가 지쳐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조사에 따르면 농촌 목회자의 71.3%가 “지쳐 떠나고 싶다”고 답했지만, 동시에 71.8%가 “목회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신 목사는 이 역설을 이렇게 해석했다.
“농촌 목회자들은 절망 속에서도 사명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의지’로만 버티게 할 수는 없다. 교단의 구조적 지원이 없으면 10년 후, 절반의 교회가 사라질 것이다.”
그는 농어촌교회 생존을 위한 실천방향으로 ▲ 재정 자립형 마을 목회, ▲ 도시교회 연대 강화, ▲ 전문인력 양성과 교단 네트워크 구축 등을 제안했다. 특히 기독교농촌개발원 완공 이후 이 기관을 “농촌 목회 전문 인력 양성과 재정·교육 거점으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대교체가 없다면, 농목은 스스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신 목사는 후반부에서 교단 내부의 관성적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위원회는 회의로만 존재하고, 결의는 실천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결의도 종이 위에서 사라진다.”
그는 기장 농목의 1세대와 2세대를 거론하며, “선배 세대는 헌신했지만 이제는 물러서야 한다. 다음 세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옛 추억을 반찬 삼아 먹는 이들은 즐겁게 뒷방으로 물러가야 한다. 새 시대는 더 개성 있고 생동하는 후배들이 열어갈 것이다.” 그의 발언은 회의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문덕 목사, “양치기 윤리학으로 책임의 신학을 복원하자”
이날 신민주 목사에 앞서 한문덕 목사(향린교회)는 「양치기 윤리학과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신학적 발제를 진행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서사를 ‘책임의 윤리’로 재해석하며, “성서의 윤리는 복종이 아니라 책임과 자유의 윤리”라고 말했다.
“가인은 도시와 제국의 질서를 상징하는 농부였고, 아벨은 자유와 창조의 윤리를 대표하는 양치기였다. 교회는 이제 가인의 윤리가 아니라 아벨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한 목사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복종 윤리의 신앙, 체제 순응의 신앙”에 있다고 진단하며, 양치기의 윤리학을 통해 책임과 저항, 자유와 창조를 동시에 회복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발제는 신민주 목사가 제시한 현실 진단에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철학적 전주곡으로 작용했다. ‘왜 농촌교회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한문덕 목사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해법은 신민주 목사에게 있었다.
“신학과 정책의 결합이 농목의 새 길을 연다”
이번 세미나는 단순한 연구발표회가 아니라, 기장 농목의 ‘새로운 10년’을 여는 선언문적 자리였다. 한문덕 목사의 신학은 농촌 목회의 가치와 방향을 정당화했고, 신민주 목사의 보고서는 그 신학을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번역했다. 결국 두 발표가 만나면서 하나의 결론이 생겼다.
“농촌교회는 쇠퇴가 아니라 소멸의 위기에 있다. 그러나 신학이 방향을 세우고, 정책이 현실을 움직일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난다.”
익산에서 열린 이번 기장 농목 신년목회 정책세미나는, 한문덕 목사가 제시한 ‘양치기 윤리학’의 신학적 통찰 위에, 신민주 목사가 제시한 농촌교회의 구체적 현실 분석과 정책 대안을 올려놓음으로써 ‘생존을 넘어, 재건을 향한 신년의 길’을 열었다.
신민주 목사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쇠퇴기는 반드시 지나간다. 그러나 대비하지 않으면 소멸이 온다. 우리는 지금,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이번 세미나는 기장 농목이 ‘준비하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