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문화 주대범의 <교회음악산책>
흑인영가 이야기 2 : “검은 것과 하얀 것”<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7>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4.09.25 15:33

예쁜 백인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경우가 있다. 아름답지만, 예수님이 꼭 찍으셨던 <음심>의 단계로 모두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태생적, 문화적 간극이 관념화되었기 때문이리라. 흑인 여자들의 경우는 훨씬 심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히딩크 감독의 연인인 엘리자베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의 고착된 관념과 심각한 편견이 보편적이리라 생각은 하지만, 매력을 가진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이웃의 문제로 본다 해도 나는 솔직히 흑인들에게 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님의 섭리이며 창조 질서일 터인데 우리는 소가 닭 보듯 살아왔다.

   
▲ 자작나무 합판을 붙이고 또 붙여 <헤드폰 걸이>를 만들어 보았다.
자작나무 합판은 좋은 스피커통을 만들 때 쓰이는 훌륭한 소재이다. 흰 것과 검은 것이 겹겹이 붙어 치밀하고 강한 목재로 탄생한다. 자작나무 합판을 붙이고 또 붙여 <헤드폰 걸이>를 만들어 보았다. 오늘 아침에는 흰색으로 살짝 칠했다. 백지는 하얗지만, 내용을 담는 것은 검정 잉크이듯, 아름답지만 하얀 헤드폰 걸이는 엑세서리이며 부차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검정 헤드폰이 결국 나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인간답게 살지 못함에 항거하는 <Black & White>를 노래한 서양 가수는 꽤 여럿이다. 김도향이 부른 <검은 것과 하얀 것>도 인상적이다. 

백인들과 동등하게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이지만, 그저 힘들면 함께 노래했고…, 노래하면 검둥이 몸뚱이 속에 눈부시도록 화사한 영혼이 들어앉았다. 흑인영가를 통해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와 해방, 나아가 구원을 보게 하신 주님의 은총은 참으로 놀랍다.

흑인 노예들의 열렬한 신앙적 열정의 산물로서 태어난 흑인영가가 언제부터 생겨나 불리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노예 생활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불렸을 것이란 유추는 쉽게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의 통설은 이 노래들이 공중적인 노래로서 함께 불리기 시작한 것은 남북전쟁 이전의 무형교회(기독교 신앙이 금지되었던 흑인 노예들의 비밀 예배 장소)에서였으며, 이 영가들은 이 무형교회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예배의 한 부분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교육과 신앙이 차단된 그들에게, 그 비밀예배나 교회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구전(口傳)으로 간직한 바로 그 노래들이었다. 새로운 땅에 끌려온 노예들이 목화밭 너머의 새로운 종교를 어설프게 접한 후 살짝 종교적 표현을 시작하던 초기에, 설교 같은 것은 영 불가능하니 이 영가들이 복음 선포 대신 불려졌을 것이다. 

당시 이 노래들을 일컬어 민요, 환호송, 애가, 노예들의 노래, 신앙가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그 깊은 종교적 감정 때문에 흑인영가란 이름이 보편화된 것이다.

지난 산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흑인영가들은 그들의 삶이나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들의 삶과 환경이란 매우 열악하고 비참했다. 그들이 늘 겪는 생과 죽음, 고난과 비애 뿐 아니라  사랑과 정의, 은총과 희망, 공의와 자비를 갈구하는 이 영가들은 육체 뿐 아니라, 마음까지 깊이 지친 불행한 사람들의 노래이며, 혹독한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역설적인 심미적 표현인 것이다. 

또한 음악은 언어보다도 더욱 앞선 것일 수 있으므로 언어를 빼앗긴 아프리카 사람들로서는 신앙을 고백하는 일 외에도, 특별한 인생의 경험 - 탄생, 결혼, 죽음 등의 중요한 사건들을 음악을 통해 의식(儀式)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음악에 있어서 언어나 멜로디보다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들 고유의 리듬일 것이다. 영가 리듬의 복잡성은 민속학자들이 악보로 옮기기에 무척 어려운 요소였다. 대부분 4/4박자이지만 거의 2/4박자의 느낌을 준다. (3/4박자의 영가는 매우 드물다.) 

‘분절법(artikulation)’이라고 일컫는 영가의 리듬 형태는 수시로 당김음을 사용하는 등 영가들의 독창성을 드러낸다. 그 리듬에 다양한 멜로디가 거친 비브라토로 얹혀지게 되는데, 그 멜로디는 크게 세 가지의 형태로 구분되며 발전한다. 

첫째는, 독창자가 주요 내용을 부르고 회중이 후렴으로 화답하며 부르는 ‘응창’ 형식이 있는데, 대표적인 노래로 <주기도문>이나 <요나> 같은 노래를 꼽을 수 있다. 둘째는, 완전한 악구 대신 짧고 간단한 선율이 빠른 리듬 속에서 박수와 몸을 흔드는 동작과 함께 불려지는 형식을 들 수 있는데, <He’s Got the Whole World>나 <내게 강 같은 평화> 등이 그 예이다. 세 번째는 <깊은 강>,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와 같이 느린 박자에 음역이 넓은 긴 선율의 형식인데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호소력이 있어 예술성이 아주 높다. 

그들은 장조와 단조를 다 사용했으나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4도(Fa), 7도(Si)음을 뺀 5음계를 주로 사용했다.(찬송가에 실려 있는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나  <신자되기 원합니다>를 참고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 음계적 특성 중에 3도(Mi)와 7도(Si)음을 반음 떨어뜨리는 기법도 왕왕 관찰된다.

흑인영가에 있어 주된 매개체는 물론 인간의 목소리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훌륭한 악기인 목소리를 통해, 독특한 구조와 리듬,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드는 멜로디의 영가가 불려지는 동안, 듣는 이들은 같이 응창을 하기도 하고 화음을 넣어 노래하고, 외침, 박수, 발박자, 발구르기, 몸 흔들기, 춤 등을 동원하여 강렬한 교감을 도모하게 되는데, 서로 어떤 규칙에 얽매임이나 제약됨이 없이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면서도 그들대로의 일정한 정형을 창출해 나갔다.

이런 영가의 발전은 수평적 멜로디에 수직적인 조화를 이루는 화음을 사용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주요 3화음(으뜸, 버금딸림, 딸림화음)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불협화음도 가끔 쓰이곤 하였다. 또한 어떤 노래는 반주 없이 단일 멜로디로만 불릴 때도 있고 다양한 반주와 화성으로 이루어진 노래들도 있었다.

흑인영가들의 가사는 대부분 신·구약 성서에서 왔으며, 일부는 자연의 세계와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얻었다. 구약을 통해 그들은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노래했고, 신약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고난과 죽음, 부활에 더욱 심취하였다.(그 대표적인 예가 <가라, 모세>, <여호수아 성을 쳤네 여리고>와 <산 위에 올라가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를 꼽을 수 있다.)  종교적 경험이 풍부했던 그들은 <깊은 강>이나 <하늘>같은 자연의 세계를 통해서도 깊은 신앙을 표출하였고, 자신의 생활의 경험을 통해 <슬리퍼> 같은 하찮은 사물이나 <마차>, <열차> 등을 소재로, 해방를 희구하고 갈망하는 많은 노래들을 불렀다. 

   
▲ Fisk Jubilee Singers 1882
흑인영가의 발전은 노예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870년대, 테네시주 네쉬빌에 있는 Fisk대학의 ‘Fisk Jubilee Singers’에 의해 초기 흑인영가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다. 흑인영가가 흑인만의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원한 예술 형태가 되도록 승화시켰고,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장르로 발전시켰다. 

주빌리 싱어즈의 성공은 다른 흑인 학교나 단체들이 비슷한 그룹을 만들도록 크게 기여하여 R. Nathaniel Dett의 지도를 받은 ‘Hampton Institute Singers’ 등 대학, 고등학교, 교회의 흑인영가단을 탄생시켰다. Wyatt Tee Walker는 “우리는 괴로운 과거의 신성한 흑인음악의 원형을 보존한 ‘Fisk Jubilee Singers’와 그 시대의 다른 흑인대학 합창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세기가 다 될 무렵 많은 재능있는 흑인 작곡가들이 훌륭한 선생님들과 전문성을 갖춘 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여 그들 민족의 민속음악을 영감의 원천으로 하여 흑인영가의 전통을 서구적 형태로 보전하게 된다. 물론 이 일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이 흑인교회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백인 교향곡 작곡자들도 흑인영가에 매료되어 그 특색을 활용한 선율에 기초하여 교향곡과 기악곡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체코의 드보르작과 미국의 조지 거쉬윈이 가장 대표적인 작곡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흑인영가를 기초로 하여 Folk Song, Jazz, Blues, Country Music, Popular Song, Swing White Rock, Soul Music, 복음송가(Gospel Music) 등의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이 음악들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도 흑인영가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비폭력 운동이 벌어질 즈음에는 흑인영가 또한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여 ‘자유 노래(Freedom Song)’가 탄생된다. 쉽게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가 대표적인 노래인데, 이러한 노래들을 통해 ‘정의의 하나님, 억눌린 자의 편에 계시는 주님’을 강력하게 선포하게 된다.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의 나라가 흑인영가라는 단순하고 작은 노래들을 통해 이 땅 위에 확장되는 역사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흑인영가들을 내용에 따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들에게 천국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인가? 이런 신앙의 현실이 내세 지향적인 많은 노래들을 낳게 된다. ‘깊은 강(Deep River)’, ‘황금 신발(Oh, Dem Golden Sleeper)’, ‘이 세상의 근심 걱정 벗어버리고(Soon Ah Will Be Done)’, ‘오라 주님의 병거(Swing Low, Sweet Charidt)’, ‘어서 가(Steal Away)’, ‘주여 그 슬픔을(My Lord What a Mourning)’, ‘방황하는 나그네(Wayfaring Stranger)’, ‘눈물 없는 곳(No Tears in Heaven)’, ‘마차를 타라(Ride the Chriot)’, ‘천국, 천국(Heaven, Heaven)’, ‘오 아름다운 성(Oh, What a Beautiful City)’ 등의 영가들이 그들에게 가장 귀한 신앙의 주제였고 가장 바라는 현실이었다. 

또한 그들의 삶은 끝없는 노동이었다. 어느 나라나 노동요(勞動謠)가 있고 우리나라도 가락국의 구지가(龜旨歌)를 필두로 많은 노동요가 있지만 흑인영가에서 이 성격은 삶 자체로서 두드러진다. 앞에서 열거한 노래들도 많은 노래들이 노동요이지만, 응창(應唱) 형식을 가진 ‘주기도문’, ‘주님은 온 세상을 손에 쥐셨네(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 ‘요나(Jonah)’, ‘누가 네 문을 두드려(Somebody’s Knocking at Your Door)’, ‘주를 찬양하여라(Come and Praise the Lord Our King)’, ‘산 위에 올라가서(Go Tell It on the Mountain)’ 등의 노래라든지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내게 강 같은 평화(I’ve Got Peace Like a River)’ 같은 많은 노래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과 해방을 갈구했고 많은 노래로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가라 모세(Go Down, Moses)’, ‘오 자유(Oh Freedom)’, ‘여호수아 성을 쳤네 여리고(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나는 때로 고아처럼 느끼네(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성자들이 행진할 때(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이 작은 나의 빛(This Little Light of Mine)’, ‘빛을 비추라(Hold Out Your Light)’ 등의 노래 외에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온 ‘여기 오소서(Kum Ba Yah)’ 같은 노래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염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고 나중에는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처럼 적극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그들이 누려야 할 삶의 일부를 저당 잡혀있음이 사실이니 그들의 구호는 오늘 내일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들 특유의 순수한 신앙을 노래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신자되기 원합니다(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은혜로운 곳은 길르앗(There Is a Balm in Gilead)’, ‘주와 함께 살고 싶소(I Want Jesus)’, ‘혼자서 그 길을 가네(You’ve Got to Walk that Lonesome Valley)’, ‘더 가까이(Just a Closer Walk With Thee)’, ‘함께 떡을 떼자(Let Us Break Bread Together)’ 등의 노래들은 우리가 언제 어느 곳에서 불러도 늘 은혜로운 찬송이고 믿음의 격려와 용기를 더하여 주는 좋은 찬송들이다.

흑인영가는 삶이다. 바로 민중의 삶이며 그 목숨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흑인영가 특유의 5음계는 우리의 가락과도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 또한 그것은 패배한 자들의 노래가 아니고 오히려 신앙적으로 승리한 이들의 노래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 호에서는 그들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산책에 나서 보자.


필자소개

   
▲ 주대범 장로
1955년 서울에서 출생, 교육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개인적으론 작곡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10년 한 후, 출판사를 운영 했었다.

교회합창곡도 작곡하고, 글도 쓰면서

누가 부탁하면 목수 일도 하고, 시각디자인도 한다.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생활을 39년째 하고 있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