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문화 주대범의 <교회음악산책>
흑인영가 이야기 3 : “한계를 모르는 믿음”<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8>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4.10.12 19:48

지난 주, 인천아시안게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한겨레신문의 김양희 기자는 <환영받지 못한 금메달>이란 글을 썼다. 전반부를 그대로 인용한다.

“앨리스 코치먼은 높이뛰기 첫 시도에서 1.68m를 넘었다.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경쟁자인 도로시 타일러(영국)도 같은 높이를 뛰었지만 두번째 시기에서 성공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여자 선수들 중 맨 처음 나온 금메달이었다. 영국 왕 조지 6세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백악관에 초대돼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만났다. 조지아주에서는 수킬로미터의 축하 행진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곳, 올버니시의 기념행사 분위기는 달랐다. 시장부터 악수를 거부했고 행사장 정문 앞에 모인 인파들끼리 충돌하면서 도망치듯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가야만 했다. 코치먼은 흑인이었다.

코치먼은 전세계를 통틀어 흑인 여성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량상 더 일찍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 1944년 올림픽이 취소되는 바람에 늦어졌다. 영국 국왕도, 미국 대통령도 코치먼의 금메달을 축하했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절반의 환영만 받았다. 올버니 시장을 포함해 시민들 다수가 백인이었다.”

백색인종들이 흑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도말(塗抹)하려해도 그 원력(原力)은 더 강성해진다. 앨리스 코치먼은 당시 이렇게 이야기 하였단다. “우리는 차별받았지만 나에게는 문제가 안 됐다. 나는 이미 올림픽 승자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온전히 그들 몫이었다”

   
▲ 성찬기
지난 주간, 나는 휴대용 성찬기를 만들었다. 정읍의 요양병원에서 외롭게 지내시는 목수 출신 최억희 집사님은 “눈이 보여야 성찬을 받지요.” 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입에 넣어드리는 목사님의 손을 움켜잡고 성찬을 받았다. 우리가 살아서 성찬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순간 울컥했다.

21세기 새찬송가에 흑인영가 “함께 떡을 떼자(Let Us Break Bread Together)”가 추가되었다. 버지니아의 흑인 노예들이 비밀결사 새벽모임을 알리는 노래였단다.(Lindajo H. Mckim, 1991) 합창곡으로는 Ed Lojeski가 편곡한 곡이 유명하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리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자. 주님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들의 정직하고 겸손한 신앙 행위에는 백인들을 원망할 겨를이 없었다.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의 은총 가운데서 그저 자신들의 신앙을 떠오르는 태양처럼 끝없이 고양시켰다. 예배 찬트 중 <KYRIE>는 이웃을 용서한 자만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이다. 이 <키리에-주님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는 영가를 연구·수집한 루터교 목사 Ewald Bash가 편집한 흑인영가 <요나>의 후렴구로도 유명하다. 인도자와 회중이 번갈아 부르는데, 회중은 계속 <키리에>를 부르짖는다.

이 <Let Us Break Bread Together>는 합창보다 독창이 더욱 우리 영혼을 일깨운다. Jubilant Sykes의 바리톤도 좋고, Leontyne Price나 Jessye Norman의 천부적이고 정열적인 소프라노도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준다.

남자 앨토 가수로는 Derek Lee Ragin이 압권이다. (‘카운터테너’라고 하여 여성의 소프라노 파트를 노래하는 남자 가수들도 있고 ‘카스트라토’라 하여 중세 교회 때 남자 아이를 거세하여 여성 파트를 노래하게 한 적도 있다.) 여하튼 Ragin이 모세 호간의 피아노 반주와 뉴월드 앙상블과 함께 부르는 이 노래를 나는 뭐라고 표현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따로 있는데, 바로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이다. 나는 그녀의 연주 장면을 보지도 못했고, 젊을 때의 목소리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가수로서 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그를 원하는 무대에서 최고의 흑인영가를 들려주었다고 천명할 수 있다. 그녀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베르디를 노래하기도 했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두 개입니다. 그 두 곡 모두 흑인영가이지요.”라고 고백할 정도로 콘트랄토(앨토)이면서도 폭넓은 음역과 풍부한 성량으로 감동적인 흑인영가를 통해 그녀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그녀는 1957년 한국을 방문하여 휴전선 전방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가 흑인영가를 불렀으며, 버마에서는 불교도들 앞에서, 인도에서는 힌두교도들 앞에서, 심지어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당에서도 그들과의 종교를 초월하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대, 당시 총장이었던 김활란은 “당신은 위대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또한 당신은 여성들의 지도자로 존경 받고 있습니다. 커다란 불평등에 대항해서 성공을 거둔 당신은 인류를 위해 봉사한 크리스천의 전형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라고 경의를 표했다.

1897년 필라텔피아에서 출생한 그녀는 6세에 연합침례교회 어린이 합창단원으로서 성가대를 시작한 이래 한 주도 빠짐없이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고, 소프라노부터 베이스 파트까지 모두 익히는 그의 열정이 그녀 특유의 비상한 음역을 개발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당시 지휘자 알렉산더 로빈슨은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능력있는 지휘자로 그의 소질을 계발시켰고, 그녀 자신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음악을 공부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 아버지는 8세 때 피아노를 사 주셨고, 자신은 저금을 해 4달러짜리 고물 바이올린을 사서 레슨 받을 형편이 아니므로 두 악기를 독습하였다.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 댁으로 이사해 어머니의 세탁일을 도우며 상업학교를 다니고 교회에서 음악을 익혔다. 그는 이미 성인 성가대에 스카웃되었는데, 소프라노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느껴 앨토를 노래했다. 그러나 정식 성악 레슨을 받기도 전에 그는 소프라노도 겁을 내는 High C(높은 도)를 자유롭게 발성할 정도로 천재적 기량을 보였다. 

15세가 되었을 때, 그녀의 교회에서는 후원회를 조직했고, 그 기금으로 피터슨이란 선생에게 처음으로 정식 성악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슈베르트도 배우고 이브닝 드레스도 선물 받았다. 또한 알프렐 힐이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성가합창단에 입단하였고, 5달러의 출연료를 받으며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독창을 했으나, 그 때마다 흑인이 열차를 타는 문제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음악학교로의 진학을 시도했으나 흑인이란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 후 아그네스 슈나이더에게서 본격적으로 콘트랄토를 배우기 시작해, 브람스도 배웠으며, 포켈티어에게 오랫동안 사사하며 오페라의 아리아들도 부르기 시작했다.

빅터 레코드사에서 ‘하늘 하늘(Heaven, Heaven)’, ‘깊은 강(Deep River)’ 등을 취입하는 등(이 음반은 당시로서는 경이롭게도 75만 장이 팔렸다) 열심히 활동하던 중, 1923년에 필하모닉 쏘사이어티 독창 경연에서 우등을 하고, 1925년에는 뉴욕 루이슨 스타디움 콘써어트 콘테스트에서 우승함으로써,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을 갖게 되어 본격적인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1930년 베를린 연주 이후 스칸디나비아 반도 연주를 갔을 때, 당대 최고의 작곡자였던 핀란드의 얀 시벨리우스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 때 시벨리우스는 ‘당신에게는 내 집의 지붕이 너무 낮군요’라는 표현으로 그 감동을 전했으며, 1935년, 지금도 매 해 열리는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노래했을 때는 ‘100년에 한 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라는 찬사를 토스카니니로부터 받았다. 또한 공산국가였던 소련에서 공연을 했을 때도 그녀는 앵콜곡으로 금지된 종교곡인 흑인영가를 부를 수 있었다.

   
▲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
1939년에는 워싱턴 DC의 헌법기념관 공연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자 링컨기념관 계단에서 노래했는데 7만 5천 명의 청중이 몰려와 그녀의 흑인영가를 경청했다. 그녀가 결국 26년 뒤인 1965년에, 그 헌법기념관에서 고별 연주회를 갖기 시작해 4개 대륙을 순방한 뒤 카네기 홀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갖고 은퇴하게 되는데 역사는 정의의 편이었고  또한 그녀의 편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는 수없이 호텔을 쫓겨나며, 백인석과 흑인석이 구별된 연주장에서 감히 백인들에게 같이 노래하자고도 못하는 상황을 꿋꿋이 이겨냈다. 내가 즐겨 듣는 음반은 그녀가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취입한 것들인데, 그 노래 속에는 그녀의 인생 역경과 담담한 신앙과 삶에 대한 신념이 흘러넘친다.

마리안 앤더슨이 콘트랄토이면서, 정규 성악 교육을 받기 전에 이미 ‘높은 도’를 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앨토의 음역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그녀는 그걸 알지 못했다.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하여 많은 째즈 트럼펫 주자들도, 백인들이 버린 고물 트럼펫을 주워들고는 트럼펫의 음역을 배운 바 없으므로 자기 방식대로 더 높고 높은 소리를 불어대었다. 그 결과 백인들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를 뛰어 넘는 고음을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번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긋고 산다. 이 정도 예배 참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 구원의 영광을 볼 것이란 막연한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소시민적으로 가족에게는 다소 헌신적이나, 이웃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쉽게 한계를 정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희망에 대해서도 자포자기의 삶이 당연하다고 자위한다.

<한계>를 뛰어넘어 놀라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 무식한 흑인들과 그들의 노래가, 이제 우리도 무지막지하게 <예수 정신>에 몰입하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코 구원을 보지 못할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흑인영가는 <신앙>이며 <진실>이고,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결코 <껍데기>가 아니다. 그 진실과 가능성은 드보르작 뿐 아니라 베토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고, 브람스,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불려진 영가가 현재 알려진 바로 6,000곡 정도라 하니 이 이 아메리카 흑인들의 가능성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가?

한국개신교회는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보듯, 그리스도인들의 가능성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눈에 끼인 들보 같은 <껍데기>를 떼어내자. 경제 논리로 포장된 <껍데기>를, 이기심과 배타심의 <껍데기>를, 우월감 혹은 패배감의 <껍데기>를 벗자. 본질을 찾자. 그리고는 순진무구하며 솔직하게 함께 흑인영가를 부르자.

참고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흑인영가집 중에서 나는 “시온의 노래(Songs of Zion, Abingdon Nashville, 1981)”의 편집을 가장 존중한다. 실려져 있는 250곡의 흑인영가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흑인영가를 위한 해설도 자상하기 때문이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