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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운동, '원수사랑'으로 악을 이기라”[한완상 박사 인터뷰] “장공은 내 삶과 신앙에 중요한 스승”
편집부 | 승인 2014.11.06 14:53

본지에서는 오늘(6일) 열리는 장공 김재준 목사 탄생 113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강연할 한완상 박사를 미리 만나 보았다. 그는 장공과 스승-제자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청소년 시절 장공의 강연과 글로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후 한 박사는 인생의 갈림길과 고비마다 장공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등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본지는 6일 강연할 한 박사의 강연문(장공사상의 적합성 – 오늘의 위기와 장공애(長空愛)의 힘)을 보고 인터뷰를 청했다. 그는 한신이나 기장과 무관하고 목회자도 아니지만 신학자 못지않은 신학적 통찰을 통해 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했고 대안을 김재준 목사의 호인 ‘장공(長空)’에서 찾았다.

한완상 박사는 이 시대를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라고 보고 그럴수록 악이 창궐하는데 이에 적합한 대안으로 장공사상의 성육신 신학과 비움의 신학을 꼽았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이웃사랑’을 넘어선 ‘원수사랑’을 실천하라고 제자들과 이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라 해석하며 그것을 ‘장공애(長空愛)’라고 표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원수사랑의 구체적인 실현방법으로 중동의 테러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활동을 벌이는 단체를 소개하며 궁극적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폭력의 악순환의 구조를 무너뜨려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장공애, 원수사랑의 실천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하 인터뷰 전문이다.

   
▲ ⓒ에큐메니안 이의진 기자
장공은 내 신앙과 신학, 삶과 철학에 너무나 중요한 자원을 주신 분

Q. 먼저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의 관계랄까요. 그 인연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A. 장공과 나와의 관계는 자주만나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내 신앙과 신학, 내 삶과 철학에 너무 중요한 자원을 주신 분이다. 나는 한신 출신도 아니고 기장 출신도 아니고 신학을 하지도 않았다. 장공과 그의 제자들과 같은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였기 때문에 오히려 기장 목사로서 제자로서 갖는 인연보다도 특별했다. 내 삶에 걸쳐 나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주신 분은 장공이라 말할 수 있다.

장공을 처음 만난 것은 1950년대 초였다. 기장과 예장이 갈라지기 전이었는데 험악한 분위기였다. 당시 장공이 대구에 자주 내려오셔서 YMCA 강당에서나 교회 수요예배에서 강연을 하셨는데 그 때 처음 만났다. 나는 그의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말씀을 통해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장공은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이단이다, 신신학이다’라는 비판을 받을 때였다. 당시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교권주의자와의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장공의 의연한 대응에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이다. 천정과 원고를 번갈아 내려다보면서 설교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강원용 목사도 대구에 여러 번 내려와 강연을 했는데 두 분의 스타일이 매우 대조 되었다.

고등학생시절 나는 대구의 기장계열 교회(기장출범이전) 장로님이 운영하는 ‘육영학사’라는 곳에 머물렀는데 그 곳에 비치된『낙수(落穗)』 그리고 『낙수이후(落穗 以後)』를 통해 장공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책을 통해 만난 장공은 실제로 만난 장공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일대일로 만난 것 보다 글이 주는 힘이 훨씬 영향이 컸다. 보통 필자를 직접 만나면 실망하기 쉬운데 글 속의 장공은 나를 충격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이후 장공을 옆에서 지켜 본 결과 그의 삶이 주는 감동은 더욱 컸다.

그의 글은 살아있다. 하나는 충격이고 하나는 감동이다. 이 두 요소를 갖고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충격이라 함은 장공이 성서절대무오설을 비판하면서 ‘성서에는 원본이 없다. 사본을 베낄 때 오류는 불가피하다.’라는 글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설파했다. 다시 말해 성서무오설을 비판하면서 인간자유의 소중함을 드러내고 그런 존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준 것이다. 뱃속신자였던 나에게 장공의 메시지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엄청난 패러다임의 충격이었다.

장공을 만난 이후 나는 ‘탈학습(脫學習)’에 들어가게 된다. 탈학습이란 1953년도 케제만이 자신의 스승 불트만을 떠날 때 했던 강연에 나온 말이다. 나도 장공으로 인해 그 동안 쌓아왔던 신학과 신앙으로 부터 탈학습을 시작한 것이다.

장공의 글의 또 다른 요소인 감동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고난에 대한 해석이었다. 매우 탁월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량,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이야기는 근본주의 신학과 겉모습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속죄론적인 십자가이해는 죽어 천당 가는 것으로 이어지지만 장공의 속량에는 하나님 사랑이 끝없이 깊고 길고 넓고 크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무량애(無量愛) 무원애(無怨愛)를 이야기하면서 장공은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그 어떤 변호를 하거나 변호인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죽음 자체가 변호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라고 갈파했다.

나는 장공의 신학이 ‘비움(케노시스)의 신학’으로 연결됨과 동시에 성육신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고민하는 한 청소년에게 엄청난 탈학습의 기회를 주고 다메섹의 전환을 준 것이다.

장공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 인생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한 나는 서울대 사회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전쟁 직후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접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치료하는 ‘사회의사’를 꿈꾸게 되었고 고등학교 YMCA 선생으로부터 슈바이처의 삶과 사상을 소개받으면서 그와 같은 ‘사회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하다 사회학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접한 사회학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실증주의사회학이었고 나는 그것이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장공과 함석헌 선생의 글을 통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제대 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에서의 유학시절 나는 세 가지 혁명을 목격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민권운동과 히피를 중심으로 하는 저항문화운동, 반전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는데 그 메카인 애틀란타 등 남부지역에서 직접 접하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있었던 킹 목사를 보면서 내가 꿈꾸던 ‘사회의사’의 실제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무렵 한국에서 아카데미운동을 벌이던 강원용 목사로부터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대학 교수 제안도 이미 받은 터라 나는 고민과 갈등에 빠졌다. 고민 끝에 장공에게 고민을 담아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썼는데 그의 빠른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한 박사는 대학에 가라’였다. 사회의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후학들을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의사로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모교 사회학 교수직 제의를 받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서울대로 가게 됐다.

1968년 그 편지를 받고 시간이 흘러 1970년에 한국에 와 보니 장공은 본격적으로 민주화투쟁에 앞서고 있었다. 1974년 장공이 캐나다로 망명가기 전 집에 찾아오셔서 ‘제3일 잡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동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선뜻 ‘좋습니다. 영광입니다.’라고 답하려 했으나 동행한 강원용 목사가 “한 박사는 아낍시다.”라고 말해 제3일 에 동인이 되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짐작은 했지만 장공에게 빚진 심정이었다.

이후 나는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겪고 출소한 후 1981년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 되었다. 장공은 북미지역 민통련의장으로 활동 했고 나도 그를 도와 상임부위원장으로 일했다. 1983년 장공이 귀국하신다고 매우 좋아하셨다. 당시 10명가량 민통련 간부들과 식사를 했는데 그것이 귀국 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 김대중씨 내외가 함께했는데 그때 ‘장공 귀국 후 김대중 씨가 그가 세워놓은 도덕적 리더십을 채울 수 있겠는가’라는 걱정이 일었다. 장공의 이야기는 혁명적이기는 하나 그 근저에 순수한 인간애와 공의가 있었지만 김대중 씨의 발언과 행동은 정치적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고 미국 곳곳에 있는 중앙정보부의 감시 때문에 매우 걱정이 되었다. 그만큼 장공의 도덕적 리더십은 간디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Q. 70년 귀국 후 기독자교수협의회와의 의미 있는 만남 중 장공의 후학들과의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었으며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기독자교수협의회는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 움직임에 비판하고 유신체제에 저항한 유일한 지식인 집단이었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WCC와 KSCF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관여했던 이들은 서남동, 안병무, 문동환, 문익환, 김관석 등의 신학자들과 조요한, 김용준, 이문영, 현역학, 노명식 등의 일반학자들이 활동했다. 이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종말론적 기독교지식인 공동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폭압적 유신정권의 종말에 희망을 가지고 그런 신학과 신앙을 갖고 뭉쳤던 종말론적 공동체였다. 이후 방금 언급한 이들이 70년대 해직되고 민중신학의 효시가 됐다.

권력의 정당성이 없는 정부가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 권력의 효율성을 경제성장을 통해 이루려고 산업화를 급속히 추진했다. 그 결과 노동3권에 대한 처절한 무시가 이어졌고 결국 전태일 사건이 일어나게 됐다. 기독자교수협의회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접하고 심각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안병무, 서남동 두 신학자는 전통적 신학적 입장을 과격하게 바꾸게 됐고 전태일의 사건을 통해 그의 유지를 이어가려고 했던 이들은 산업선교회 쪽으로 투신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이들이 지원하고 지지했다.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 결과 ‘하나님의 현존으로 봐야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민중의 구체적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이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존주의 신학자였던 불트만(나치에 침묵하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 케제만이 53년 역사적인 예수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을 따랐던 안병무도 그의 신학에서 벗어나 민중의 고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민중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보면서 ‘민중신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독자교수협의회 총무였던 나는 동료교수들과 함께 1975년 3.1절 앞두고 2월초 공안당국의 눈을 피해 안병무 박사 집에서 모의를 통해 그해 3.1절 기념행사를 새문안교회에서 열었다. 그 자리에서 안병무 박사는 원래 ‘민족과 교회’라는 제목으로 주제 강연을 했고 나는 동료교수들의 강권으로 성명서 낭독을 맡게 되었다. 그 즈음 동아일보 백지 광고사건이 터졌을 때여서 지원하는 차원에서 그 성명서를 안병무 교수와 논의 없이 ‘민중’이라는 주제를 삽입해 ‘민족, 민중, 교회’로 개명해 싣기도 했다. 어찌 보면 ‘민족, 민중, 교회’라는 이름의 연설이 민중신학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서남동 목사는 서구신학의 트렌드에 민감했고 새로운 신학의 안테나 역할을 했다. 이후 전태일 사건과 민중의 고난 현장을 보고 현직에서 쫓겨나 고난의 현장에 참여하면서 역사적 예수, 하나님 나라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그때 나는 1974년에 창작과 비평에 ‘서민예수와 그 상황’이라는 글을 썼는데 서 박사의 동감을 얻기도 했다.

이대 기독교학과 교수였던 현영학 선생은 탈춤에 관심이 많았다. 현 교수는 탈춤의 해학 속에서 영감을 얻어 역사적 예수 안에서 탈춤의 해학을 찾아냈다. 그는 예루살렘 입성할 때 나귀를 타고 가는 예수의 모습을 로마의 승리지상주의를 비웃은 것으로 이는 ‘민중적 해학’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전태일 사건 이후 이분들의 사고의 전환과 민중신학으로의 전환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장공이 뿌린 씨앗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상은 굉장히 다양하다 구약신학자이지만 조직과 실천신학 모든 것을 섭렵 하셨다. 그중 장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신학적 이해나 신앙을 하나로 연결시켜 삶으로 육화하는 것이었다. 즉, 예수의 육화사건이 장공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자원이 된 것이다.

   
▲ ⓒ에큐메니안 이의진 기자
Q. 박사님께서는 장공의 신학사상―성육신 신학과 비움의 신학―이 지금도 유효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장공의 제자들은 그의 신학을 ‘성육신 신학’이라고만 이야기 하지 ‘비움(케노시스)의 신학’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성육신 신학은 잘못 이해하면 영지주의나 가현설로 가기 쉽다. 성육신 신학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예수에서 육화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역사적 예수의 선재성을 강조하다보면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해 플라톤의 이원론에 빠지기 쉽다. 더 극단적으로 나가면 초대교회를 괴롭혔던 영지주의로 갈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성육화의 입장에서만 장공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오히려 본체는 하나님 이지만 자기를 비워 인간의 모습으로 왔고 십자가 처형으로 죽으시는, 자기를 비워 내려오는 케노시스의 예수가 정확한 이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장공의 호에서 시작됐다. ‘길게 비운다. 길게, 넓게, 깊게 자기를 비운다’는 것이다. 스승의 호가 갖는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제자들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장공의 삶을 ‘장공애(長空愛)’라고 표현한다.

장공은 신학적으로 강의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장공애를 몸소 실천하셨다.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처절히 추방당하고 마녀사냥 당하고 조선신학교의 폐교 위기를 겪으면서 장공이라는 호에 값하는 삶을 사셨다. 60년대부터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면서 장공애를 실천하셨고 70년대에는 망명생활을 통해 사랑과 생명과 정의와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사셨다.

시대의 물음에 적합하지 않은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지금 장공의 사상과 신학이 왜 더 적합하고 유익한가?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패악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심각한 상태이다. 노동에 의한 소득과 자본자체에 의한 소득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하나의 예를 들면 주식 배당에서 얻는 소득 중에 75%를 상위 1%의 자본가들이 독식한다. 이러한 사례는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둘째, 세월호 사건이다. 기술적이고 일차적인 원인이 아닌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세월호 사건을 보면 ‘국가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 마디에 꼼짝 않고 몰살을 당할 수 있는가? 이는 공권력이 공공성을 상실한 것에 대해, 정부의 무능에 대해서 지적을 해도 아무런 반응 없는 무감각과 무소통의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 것이다.

으뜸 가르침으로서의 종교가 ‘가만히 기다리라’고 명령한 주체가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교회에서 목사가 신호만 하면 ‘아멘’과 ‘할렐루야’가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기다리라’고 하면 제일 잘 따를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종교와 교육에 대한 물음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국민들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세월호 사건은 전태일 사건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이요 역사의 분수령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너희의 복음에 공공성이 있는가, 그 복음이 감동적인가, 변혁적인가, 하나님 나라 운동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적대적공생관계를 깨는 것은 ‘원수사랑’

셋째, 내년이면 분단 70년을 맞는 한반도의 상황이다. 수천 년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민족이 강대국의 편의에 의해서 분할되고 그 이후 열전 3년, 냉전 62년을 지나면서 엄청난 고통의 값을 지불하면서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고 미워하는 나라는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밖에 없다.

일본은 20년 만에, 소련과는 휴전이후 38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중국과는 39년 만에 국교 정상화할 뿐 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우방국이 되었다. 왜 동족에 대해서는 그리 미워하고 사탄으로 보고 주적으로 여기는가?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 복음이 적합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정말 크리스찬인가? 분단의 현실가운데 냉전세력의 핵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50년대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를 파면시킨 교권주의자들이 바로 냉전근본주의자였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살아 북한을 더 미워하는 일에 복음이라는 미명하에 똘똘 뭉쳐있다는 사실을 보고 장공을 생각 안할 수 없다. 장공의 신학과 신앙이 이런 상황에서 더욱 절박하게 적합한 것이다. 신학은 적합성이 없으면 죽은 신학이다. 적합성은 상황이 긴박하게 요구하는 근본문제 해결에 응답하는 것이다.

지금도 분단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학과 교회가 대답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냉전근본주의세력이 권력을 잡게 되면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남북관계의 적대적공생관계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와 교회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상대의 존재가 서로의 체제를 강화하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을 깨야 된다. 그것은 예수가 가르쳤던 ‘원수사랑’으로 가능하다.

삐라를 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남북이 서로의 체제 유지를 위해 돕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깨려면 ‘장공애’, 원수사랑의 실천으로 가야한다. 오늘날의 불평등한 세계상황, 세월호 이후의 한국상황, 분단70년의 맞는 민족상황을 볼 때 장공의 신학은 지금 더욱 적합하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운동의 적합성 또한 명확하다. 로마의 권력체제에 대항했던 갈릴리 청년 예수의 하늘나라운동을 보면 분명히 적합성이 나타난다. 로마식 이데올로기와 문화, 생활양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을 예수가 제시한 것이다. 이를테면 밥상공동체가 그렇다. 예수의 밥상공동체는 그 당시 인종과 계급, 성, 문화, 종교, 종파의 벽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열리고 평등한 공동체였다. 예수의 스타일은 유대 전통의 지배계급의 생활양식과 다르고 로마의 힘과 무력, 법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무상치료도 그렇다. 중병환자를 고치고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았다.

   
▲ ⓒ에큐메니안 이의진 기자
부활사건 안에 존재하는 역사적 예수

Q. 박사님께서 제안하신 ‘제3일 운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십자가, 자기비움, 장공애, 이웃사랑을 넘는 원수사랑, 발선, 우아한 패배, 이런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한지요.

A. 장공의 ‘제3일’의 동인 못된 아쉬움에 한 이야기 이다. ‘제3일 운동’은 부활운동이다. 예수의 부활의 역동성을 양극화와 세월호 사건, 분단의 시대를 끝낼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가 묻고 고민해야한다. 부활의 동력을 역사 변혁으로 어떻게 끌고 올 것인가 천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활신앙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부활신앙처럼 탈역사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사건을 변혁과 전환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부활은 비움(케리그마)의 본질이지만 그 안에 역사적 예수가 없는가? 있다. 갈릴리 예수의 밥상운동과 치유, 가르침의 운동은 부활이후에도 거세게 뻗어 나간다. 일예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앞에 부활예수가 나타났는데 몰라보다가 밥을 함께 먹으며 알아본다. 이는 부활예수가 제자들에게 눈뜸을 하게 해준 계기가 된다. 하나님 나라운동의 핵심 프로그램이 밥상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부활예수와 갈릴리예수를 분리할 수 없다. 더욱 명확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수 처형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어부생활을 하던 제자들에게 예수가 손수 생선과 빵을 구워 밥상을 차리고 기다린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운동과 연결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활예수는 로마식 사형집행을 당했는데 도대체 메시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 자리에서도 원수 사랑을 몸소 보이셨다.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골고다까지의 과정이 가르침의 과정이었다. 원수사랑에 대한 가르침의 프로세스였다. 돌아가시기 직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것을 보고 로마 장교가 회개하고 예수가 의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게 장공애의 효과이다. 왜 이것을 장공의 제자들이 소리 높여 삶으로 실천하고 외치지 않는가.

장공애는 자랑스럽게 여길 역사변혁의 동력

과정신학하는 이들은 이것을 이해하는 것 같다. 원수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자체가 하나님의 현존이다. 그 안에 하나님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과정신학자들은 범재신론을 이야기하는데 그 증거가 로마의 장교를 근본적으로 감동시켜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내재해 작동하시는 힘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나타나는 유일한 사건이냐?’라는 질문이나 종교다원주의로 봐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여기서 종교혼합주의의 문제는 심각하게 다뤄야한다.

그러나 나는 원수사랑을 예수의 독특하고 고유한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보고 싶다. 다른 어떤 종교의 성인도 예수와 같이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다.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상 원수사랑의 기도는 역사적 고난의 한복판에 피어난 꽃이기 때문에 나무 밑에서 명상한 것과는 다르다. 이 점이 기독교 신자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인의 배타성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사변혁의 동력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한다. 추상화하지 말아야한다. 장공 또한 그랬다.

장공은 기독교신자가 된 이후 돌아가실 때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통한 비우심에서 오는 감동을 가슴에 품고 사셨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배타성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 속에, 장공애 속에 기독교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공애는 자기 비움과 육화의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힘인데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길 역사변혁의 동력이라고 본다. 그것이 ‘제3일 운동’에서 증거 해야 할 삶이다.

Q. ‘제3일 운동’에 입각해서 볼 때 오늘날 소위 에큐메니칼 진영의 문제점과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기독교 안팎 특히 기독교진보진영에 대한 고언을 하자면 첫째로 교조주의적환원론을 극복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회악을 계급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을 극복해야한다. 소위 환원론은 경계해야한다. 장공이 진단했듯이 극단적인 좌파전체주의나 극단적인 우파전체주의는 대게 환원론에 입각하고 있다. 환원론적 진보주의에 대해서는 획을 그어야 하고 그럼에 있어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과정신학에서 그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는 구체적인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을 보면 계급환원론에 너무 젖어있어서 구체적인 민중의 고통에 대해 외면한다. 역사적 분수령인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오늘의 국가와 시장이 얼마나 민중의 고통을 증가시키는가? 뻔뻔하고 소통을 않는 국가가 시대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있다. 모든 기독교 안팎의 진보세력이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마지막으로 분단70년이 준 민족고와 민중고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앞장서서 고통을 해소하는 일에 하나님 나라운동의 차원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

아직과 이미 사이에 놓인 하나님 나라운동,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예수의 제3일에 터지는 부활운동으로 하나님 나라운동은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갈릴리운동이 부활로 꺾인 게 아니라 로마권력에 대안적 역사공동체 운동으로 더욱 번져갔다. 그렇게 하나님나라운동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완성되지는 않았다. ‘이미’와 ‘아직’사이에 악의 세력이 번성하게 되어있다. 존립이 사라지게 되면 악의 세력은 극악하게 자기 힘을 키우게 된다. 그 증거가 20세기 나타난 두 전체주의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버티기 시작하는 악의 세력 또한 존재한다. 이런 현실에서 악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지금여기 장공이 주는 빛이 있다. 장공은 “혁명의 깃발이 자유와 해방이라 하더라고 폭력혁명을 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우상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이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깃발은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자유와 행복, 정의, 평화, 생명의 깃발을 드는 많은 악의 세력이 생겨난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나라 깃발의 본질과 혼돈하지 않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발악하며 거짓 깃발을 흔드는 가짜를 주목해야한다. 내가 쓴 책 ‘지식인과 허위의식’에서 말한바 이데올로기의 깃발을 조심해야한다.

악을 이길 방법은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사도바울의 발선(發善)을 통해 가능하다. 로마서 12장 20-21절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중략)…원수 머리위에 숯불을 쌓는 것과 같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은 놀라운 메시지이다. 사도바울은 산상수훈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도바울식으로 예수의 복음인 원수사랑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절박한 이야기이다.

숯을 머리위에 얹으면 얼굴이 붉어진다. 이것은 입히고 먹이고 원수사랑 실천을 통해 악의 화신 안에 얼어붙은 양심과 선심이 녹아서 수치심을 느껴 얼굴이 붉혀지는 것이다. 이렇게 원수가 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발선이다. 발선은 원수사랑을 통해만 오는 것이다. 우리는 발악에 너무 익숙하다. 경쟁의 구조 속에서 발악해야한다. 발선의 기회를 은총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것은 교회가 줘야한다. 원수 안의 악이 발선을 통해 사라지게 되지만 사랑을 베푸는 사람 속에도 남아있는 악 또한 발선을 통해 없어진다.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안에 있는 악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장공이 자주 쓰는 4자성어로 애자무적(愛者無敵)이다.

결론적으로 원수사랑 보다 더 진보적인 가치는 없다. 가장 진보적인 동력은 원수 사랑이다. 이것만이 오늘의 국가의 공공성 훼손과 시장의 공정성 훼손, 교육과 종교의 공공성 상실의 현실 속 예수의 복음을 올곧게 세울 수 있다. 원수사랑은 공공성과 감동의 회복이고 마지막으로는 변혁성의 회복이다. 한국교회에서 복음이 사라진 것은 그 복음이 예수 믿고 죽어 천당 가는 것 같이 사사롭고 값싼 축복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복음은 감동성이 없다. 공공적인 것은 감동적 변혁을 일으키고 복음 있는 곳에 혁명적인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진보진영이 실천해야할 지점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선재적 사랑 실천 연합’(preemptive love coalition)이라는 기독교 단체가 활동 중인데 그들은 ISIS(아이시스.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라고도 불림)의 활동지역에서 어린이 심장병환자를 수술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수니파에 속하는 이들의 자녀들에게 치료를 함으로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고 한다. 반대파인 시아파 사람들의 요구에 그들의 자녀들도 치료해주었고 기독교 신자들이나 무종교인들의 요구에도 응했다. 그렇게 지난달에 1천 번째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치료받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더 이상 ISIS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IS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국가의 폭격보다 이 단체의 의료행위가 더 두려운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선재적 사랑’이 무서운 것이다. 미국의 ‘선재적 공격’을 통해 ISIS 자신의 무력 사용을 정당화했고 추종자들을 모으는 동력으로 삼았는데 원수사랑실천의 착한 행동, 발선의 행동은 그들의 폭력적인 힘을 근원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원수사랑 실천을 강조하는 한국식 선재적 사랑실천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원수사랑, 장공애의 실천을 통한 사회역사 변혁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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