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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1회 아이의 폭력적 행동유하순 단편 청소년소설 <불량한 주스 가게>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4.12.29 14:11

감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삭막하고 인정이 메말라 사람한테서 훈훈한 온기를 느끼기 힘들게 되었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을 극심한 경쟁에 내몰고 물질이 만능이라고 부추기는 세상이니 누군들 그렇게 안 되고 배기겠습니까.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데 마음 여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아이들이 어른 뺨치게 잇속이 빠른 걸 보면 참 밉다가도 ‘저 아이들이 다 왜 저렇게 되었겠어’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눈빛을 나누고 볼을 부비고 할 일이 많지 않았던 아이들은 타인과 감정을 잘 나누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들도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너무 바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젖먹이 때부터 남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남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내 감정도 잘 표현하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아이들이 직면하게 될 갈등 상황을 잘 형상화 하여 공감이 잘 되는 성장소설이나 영화를 스토리텔링 소재로 사용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처음에 다룰 갈등 상황은 ‘폭력적 행동’입니다. 소개해 드리는 작품을 가족들과 함께,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겠습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단편소설 위주로 소개를 하겠습니다. -필자 주-

   
 
아이가 부모 보는 앞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집안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아이나 부모 모두 쉽게 치유되는 않을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되고 다시 친한 관계로 회복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학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폭력의 경우에는 다른 교칙 위반보다 더 엄격한 처벌이 따릅니다. 대부분 정학 처분이 내려지거나 거듭될 경우에는 강제 전학 또는 퇴학 처분을 받습니다. 이런 처분이 내려질 때 보통 위탁기관 대안교육을 받게 하는데 제 경험으로는 학교 폭력으로 위탁 처분을 받아 대안학교로 보내어진 학생이 잘 선도되어 행동의 변화를 보인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좀 야박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중도 탈락률을 낮추기 위한 격리 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나쁜 문화의 전파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이해할 만도 하지만 이렇게 낙인이 찍힌 아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교육 처방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래도 이런 구제 절차라도 있지만 학교 밖에서 벌어진 폭력에는 바로 사법 처리가 뒤따릅니다. 만 14세가 되지 않은 형사미성년자인 경우에는 형서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지만 그 나이가 지나면 보호관찰 처분을 받거나 더 심하면 소년원에 가게 됩니다. 씻을 수 없는 낙인이 찍히고 마는 것이지요. 인생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폭력은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이 막중해야 하는 건 맞지만 요즘 아이들이 폭력적 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고 그런 행위가 대수롭지 않게 인식되고 있으며 별 죄의식을 갖지 않는 요즘 현실을 도외시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애들이 싸우면서 크는 거지 하는 안이한 생각도 문제이지만 일벌백계하듯이 격리시키는 것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면밀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가해 학생이 짊어지고 온 심리적 장애에 대해서도 정성껏 보살피는 처방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잔소리 한다고 의자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는 폭력적 행동을 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자식의 이런 행동을 목격하고 부모가 이성을 잃지 않기란 참 힘들 겁니다. 다행히 그 순간은 잘 참아내었다 하더라도 부모는 속으로 화병을 앓게 되겠지요. 이러나 저러나 불행감은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가 되고 가족은 해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 아이의 이런 행동은 그렇게 유별난 게 아니랍니다.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 폭력적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경험이 많은 교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 ‘그런 행동을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아이가 어쩌면 더 문제일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억눌려 있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억누르기만 하면 나중에 강박증이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평생 히스테리를 앓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풍선 효과처럼 엉뚱한 곳으로 폭발하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폭력적인 행동을 어떻게 교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보다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비행을 문제 삼기보다 어른의 관점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작금의 우리 교육이 비인간적인 경쟁심리를 막 부추겨 놓고서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윽박지르는 꼴은 아닌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너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뼈에 사무치도록 하며 자란 아이가 메마르고 각박한 정서를 갖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패거리를 만들고 그 패거리를 지키기 위해 폭력까지 마다하지 않는 건 그 아이들의 생존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 나름으로는 살기 위한 발버둥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아이를 ‘아비 없이 자란 놈’이라고 보면 그 아이가 어찌 되겠습니까. 무심코 보낸 시선이나 한 마디 말이 그 아이에게는 아픈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폭행은, 따듯한 말 한 마디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호소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 아이와 따스한 말 한 마디 나누면 아이는 나 좀 봐달라고 호소할 필요가 없게 되지요. 혼내면 더 절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들게 됩니다. 이런 이치만 알아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면 저럴까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완전히 달리 보입니다. 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시선이 아이의 마음에 가 닿는 걸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다 해결이 됩니다. 처음이 참 어렵습니다. 그 낯선 처음을 맞이하기 전에 다른 데에서 다른 시선으로 같은 상황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면 그 갈등의 순간이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이 기적 같은 공감(共感)으로 평생을 착하게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그 기적이 엄마의 불행으로 찾아옵니다. 엄마가 이상하게도 식탁 의자를 걷어차기까지 하는 아이의 막돼먹은 짓에 맞서지 않습니다. 실상은 병이 나서 그럴 힘이 없는 건데 아이는 엄마가 정 떨어져서 그런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혼자 아이를 키우다가 병이 나는 엄마의 불행이 기적 같은 기회가 됩니다. 아이는 자기에게 가게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엄마가 자기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사실 수술 받으러 입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엄마가 가 버린 뒤 비로소 아이는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뭐든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제 스스로 발견한 것이라야 참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요. 진짜 엄마를 발견한 아이가 어떻게 변해갈지는 구구하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겁니다. 엄마와 아이 마음이 통하는 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 나게 합니다.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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