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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모자라던 날 1<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1.8.31>
안상님 | 승인 2015.01.06 12:04

눈을 뜨니 5시 40분이다. 오늘 아침 1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들었으니 4시간 넘어 잔 셈이다. 조금 더 자고 싶은데 서울에서 11시 약속이니 일어나야겠다. 기독교장로회 여교역자회에서 몇 달 전부터 날자를 비워 노라고 야단을 하던 기관실무자 세미나에 참석중이다. 어제 여기를 오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나? 어제 아침에는 전날 박순경 교수 석방을 위한 기도회 모임을 한 뒤치다꺼리를 하려고 802호(종로5가 기독교회관-아시아여성신학교육윈)에 갔었다. 항의 행진하던 피케트, 현수막, 예배순서지, 성명서, 서명 용지 등을 정리해서 치워놓았다. 대책위원회를 여의도에 있는 여신협사무실로 옮기기로 했으니 주섬주섬 그 동안의 사무용품이며, 봉투, 노트 등을 챙겨서 이사짐을 꾸렸다. 12시가 되어 급히 점심을 먹고 여신협 사무실로 향했다. 시간이 급하니 전철을 타고 대방역에 내려서 택시를 탔다. 어제부터 은행에 가지 못해 돈이 없으니 어디서 은행에 들려야 하는데 늦을 것 같다. 내일이 토요일인데 용문에 그냥 갔다가는 오다가다 은행에 갈 시간이 없겠다. 여의도 종합상가에서 내려 외환은행에 들렸다가 여신협에 갔다.

어제 기도회에서 내일부터 여신협에서 대책위원회 일을 한다고 광고를 했더니 여신협에서는 아침부터 대책위 문의 전화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야단이다. 우선 신민당 여성위원회 일로 나와 함께 일하러 온 사람을 그리로 데려가서 오늘 대책위원회 일을 좀 맡아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을 처음 길에 혼자 보낼 수 없어서 같이 갔다가 용문의 세미나에 참석하려니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다. 2시까지 강남 고속터미널 옆 집합장소인 교회에 도착하려면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 바로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올림픽대로가 막혀있는 걸 보더니 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올라가 강북로로 가다가 반포대교에서 다시 건너 내려오면서 터미널 앞에 2시에 도착했다. 요사이 교통 사정으로는 기적같이 맞춘 셈이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1시간이 넘게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총무가 물건을 놓고 왔다고 기다리고 나중에는 버스를 내주는 그 교회 목사가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당회장실로 불러 들여서 였다. 인사를 하려면 밖에 나와서 하면 되지 굳이 들어오라고 해서 시간을 없애나 싶었다. 할 수 없이 들어가 보니 그 목사는 커다란 당회실의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아서 참가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묻고 나오라고 해서 책을 주면서 받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아서 그 책을 받지 못했지만 그 분위기가 여성이 차별당하는 현장 같아서 영 달갑지 않았다. 아마도 전 같았으면 그렇게 자기 책을 기증하는 목사님이 한없이 존경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성의식이 생기면서 남자가 좀 도도하게 굴면 당장 성차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책을 기증하는데 그렇게 한문자까지 물어보며 서명을 해주는 거야 친절한 행위라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여기 온 사람들이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서 왔는지를 아는 나로서는 도무지 마땅치 않은 일이다. 결국 용문역을 지나 장로교여교역자회관에 도착한 것은 5시가 넘은 후였고 그제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주제 강사가 남자여서 오기 싫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성학 기초강의를 어디서 주워듣고 지껄이고 있다. 적어도 한국기독교 장로회의 기관실무자 중에 그 남자 강사보다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발제라면 또 모르겠다. 남자가 본 기관실무자 여성에 대한 의견이라면 또 받아드릴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제가 기장 여성의 오늘을 진단하는데 왜 남자가 필요하냐는 공격형 질문이 나왔다. 현장 발제에서 젊은 층의 이야기는 왜 선배들이 후배들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느냐? 다른 교단은 막 자라는데 기장 선배들은 무엇하고 있었느냐는 공격이다. 참 세월 좋은 이야기이다. 내가 그 맘 때에는 여성의 권리라는 소리도 들어본 일이 없이 집안에서 살림만 하다가 스스로 꿈틀거려서 40이 넘어서야 겨우 집밖에 나왔다. 맨날 제주머니 털어서 일하던 세대에게, 사무실에 책상 놓고 월급 받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그 선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본 일도 없이 너희는 여태 무엇 했느냐고 들이대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서 세계 2차 대전 말기의 찌들은 세월을 지나 해방 후의 혼돈 속에서 6·25로 다시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무슨 지탄의 말이 필요하냐? 우리에게는 생존 자체가 기적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런 것은 우리 세대의 분노일지 모른다. 억울한 세대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겨를도 없이 생활여건이 전연 다른 세대들에게 몰려서 규탄 받으면 거기에는 단절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예부터 시집살이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한을 풀을 사이 없이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기는 상실감으로 상처받고 오그라드는 마음이 어찌 며느리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으랴. 그러니 악순환은 계속되고 사람들의 삶은 엉망이 되어온 것이 아닐까? 이런 떨떠름한 느낌을 짓씹으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시간이 밀려서 밤 1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물론 오늘도 프로그램은 계속되는데 나는 미리 가야한다고 양해를 구해 놨다. 새벽에 떠나더라도 첫날만은 참석해야한다는 것이 총무의 요청이었다. 기장 여교역자회에는 내가 여교역자가 아니었기에 줄곧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누가 넣었는지 그 회에 이름이 들어있기는 해도 여교역자는 역시 전도사나 목사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에서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내가 기관에서 일한다고 해도 내가 창립멤버이거나 내 돈 넣으며 해온 일들이라 실무자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하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하니까 내가 무엇이라고 그렇게 오라고 성화를 하는데 외면할 것인가 싶어서 이번에는 열 일 제처 놓고 참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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