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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2회 입시 스트레스최선혜 단편 청소년소설 <비염>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1.06 12:09

연재 첫머리에 ‘아이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몇 회 다루기로 했는데 수능시험이라는 대사를 치렀으니 모르쇠 할 수 없어 ‘입시 스트레스’ 이야기를 한 꼭지 넣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그 어떤 교육 개혁 의지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블랙홀과 같아 이 문제를 뒤로 미루고서는 무슨 얘기도 공허하게 들리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나 학부모가 겪는 갈등이 따지고 보면 거의 아이의 공부 때문이기도 하니 그 힘겨운 공부의 종착점이라 여기는 입시는 아이가 겪는 성장통의 여러 원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나 알만한 소위 명문대학을 졸업해도 번듯한 직장을 갖기 어려운 열악한 노동 현실이 고통의 근원이겠지만 이 문제는 차차 다루도록 하고 우선 입시의 중압감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도록 합시다. ‘나만이라도, 내 아이만이라도’ 하는 생각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몇 가지 수치만 살펴봐도 입시 때문에 겪어야 할 아이와 부모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이 하나 대학 보내 졸업시키려면 약 1억 정도 들어간다고 보면 되는데 이렇게 큰돈을 들여서 졸업을 시키면 열에 일곱 여덟은 비정규직이 된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이 140만 원 정도 되는데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아이를 둘 기르면 한 푼도 저축할 수 없는 형편이란 게 뻔한 거잖습니까. 그들의 자녀가 대학을 다닌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가난이 대물림되어 평생 빚더미를 짊어지고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너무 우울해집니다. 이러니 공부가 명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어렵게 대학 공부에 젊음을 바치는데 정작 대학은 우리들 삶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 ‘큰공부’를 주기는커녕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수시 전형비로 벌어들인 돈으로 건물 하나를 세울 만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닙니다. 많은 대학들이 한 해 전형비로 50억 넘는 돈을 벌어들이고 어떤 대학은 90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영리회사처럼 광고를 만들고 일선 고등학교에 판촉물을 대량으로 뿌립니다. 이 나라 교육자는 학생 학부모를 고통의 늪에 빠트리는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자괴감을 아니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내 아이만’이라니요.

바라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우면 외면하는 게 살 길입니다. 이런 우울한 우리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러워집니다. 이런 얘기 들어봐야 가슴만 답답해지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아닐까요. 입시를 앞에 둔 아이들에게 ‘좋은 농부는 밭고랑을 세지 않는다’고 훈화를 했습니다. 다들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공부가 손에 안 잡힌다고들 하는데 혼자 눈 딱 감고 묵묵히 제 앞가림만 하라고 가르쳤던 겁니다. 딴 생각 하지 마라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고 겁주기까지 했습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하면 나중에는 전부 잘 되는 게 맞습니까? 이렇게 살벌하게 경쟁해서 학업성취도(PISA)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는 꼴찌이고 한국인의 자살률은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엄청나게 고생해서 이 나라 경제 규모(GDP)가 세계 13위 수준이 되었는데 사람들 고통은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지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데 유럽 나라들은 30% 정도밖에 안 된답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대학 등록금이 거의 공짜인데 왜 이렇게 대학엘 안 갈까요. 유럽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하는 건가요? 우리처럼 먹고살기 위해 죽자 살자 공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정말 연구하려는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을 한답니다. 대학을 안 나왔다고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으니 스펙 쌓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북유럽의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10% 정도밖에 안 되고 정규직보다 임금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러니 공부가 돈놀이처럼 황폐해질 리가 없지요.

이 정도 얘기만으로도 우리 교육이 얼마나 사람의 심성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우리가 왜 이렇게 우울해진 것인지 수긍이 될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다그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이 고통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합니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은 숨 막힐 지경입니다. in서울 못할 바에야 재수하라는 부모님의 권고가 숨 막히게 하는 올가미 같은데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대학 간판이 인생을 좌우한다는데 재수생에게 대학생 친구가 가당키나 합니까. 독서실 칸막이에 갇혀 산 지난 3년이,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데 이 짓을 또 해야 한다니 정말 죽을 맛입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알레르기 비염 코 막힘처럼 답답할 게 뻔하고 더러운 가래침과 콧물로 범벅이 된 재채기처럼 비웃음을 살 게 뻔한데 공부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공부 때문에 망가진 인생을 가족마저 더럽다고 피하는 비염 재채기로 그려낸 고등학생의 소설 창작 재능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가 들려준 아이들의 비통한 속마음이 읽는 이의 가슴을 칩니다.

<작품 일부>
  동생이 아침을 다 먹어 치웠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옆에서 동생의 가방을 들어 올려 주고 잘 다녀오라는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이었을까.
  “크에취!”
  비염과 싸워온 이래, 가장 큰 재채기가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어떤 간지러움이나 다른 신호를 느낄 새도 없이. 콧물, 침, 내 기관지의 모든 분비물이 뒤섞여 나왔다. 집을 나서려던 동생이 황망히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역시 의자를 붙잡고 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아빠는…… 글쎄, 신문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엉망이 된 아침상을 보며 나 역시 아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급히 휴지를 둘둘 뜯어 식탁을 닦기 시작했을 땐 이미 아빠의 신문지가 반으로 접힌 뒤였다. 아빠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편없이 구겨진 얼굴이 아빠의 불쾌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떨구었다. 마치 작년 그날처럼. 내 성적표 앞에 힘없이 죄인 행세를 했던 그때처럼.
  “코 좀 그만 쳐 풀어라!”
  더럽게, 라는 아빠의 뒷말이 조그맣게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이제껏 아빠가 저렇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빠는 진심으로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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