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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를 뚫고 나온 풀<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8.6.13>
안상님 | 승인 2015.02.25 15:02

나는 지난 2일 선거 막바지에 부산 사하지역을 방문했다. 부산 시의원으로 출마한 여성 후보를 지원하러 간 길이다. 그 후보는 지금 제일 어려운 지역을 가가호호 방문 중이란다. 이제는 연설도 소용없고 그저 집집마다 들러서 악수를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는 선거 전문가들의 제안을 따른 것이다.

부산 지역에서 호남향우회라 하면 바로 고난과 동일시되는 어휘가 될 정도로 어려운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인데 그래도 선거 때만 되면 그 분들이 극성스럽게 밑바닥을 훑어야 얼마라도 표를 건진다는 것이다. 포항을 거쳐 울산에서 하루 밤을 자고 대구를 거쳐 마지막으로 부산에 다다랐다. 기차에서 바로 연결되는 지하철을 타고 오후 5시가 넘었는데 마중 나온 사람을 기다리고 전화 걸고 하면서 후보가 돌고 있는 동네까지 가느라 6시가 넘었다. 그래도 어두워지기까지 부지런히 다니기로 하고 우리는 일행을 따라 나섰다. 부산에서는 제일 후진 동네인데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서 발로 뛰는 만큼 표를 거둔다는 설명을 거듭 들으면서 우리는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올라갔다. 폭이 20cm도 안 되는 길도 있고 발을 띄어 놓기도 어려운 길인데 용케도 비집고들 다닌다. 5평도 못 되어 보이는 집도 있는데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자 부엌과 방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피난민들의 언덕이었다니 그 때 하꼬방 집들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모습이겠지만 한번 들어가면 도저히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길은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뻗어있다. 제법 크게 3층으로 올린 집도 있는데 모두 무허가 주택이어서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양성화를 공약해 왔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을 완전히 시멘트로 더덕더덕 붙여서 고정시켜 논 동네이다.

집집마다 들여다보면서 한 표를 부탁하고 다니는데 그 좁은 길 틈사이로 화분들이 놓여있고 상추가 제법 소담스레 자란데도 있다.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이는데 화분들을 빼곡히 늘어놓은 데도 시멘트 사이로 풀들이 자라고 있다. 대추나무 하나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 그 밑에 상이라도 갖다 놓으면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저녁상이 되겠다. 그 밑으로 내려다보니 아주 낭떠러지 같은데 역시 시멘트를 부어놓은 것 같다. 어느 집 앞에는 아주 커다란 선인장 화분이 놓여있는데 한 아름이나 되는 품이 십년은 훨씬 넘어보였다. 저 주인은 얼마나 오래 동안 또 얼마나 소중히 저 선인장을 길러왔을까? 거기 시멘트만 보이는 동네에서 저렇게 채소나 화초를 가꾸는 마음은 얼마나 땅을 그리워할까? 또 시멘트 틈사이로 조그만 구멍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싹을 틔우고 시멘트 사이에서 자라나는 그 생명의 힘을 뉘라서 막으랴?

그 새 일곱 시가 넘어 마지막 비행기를 놓칠세라 부랴부랴 공항으로 떠난다. 이 선거운동 판에서 나는 얼토당토않게 풀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다니? 아마 다른 사람에게는 그 풀들이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았으리라. 비행기 안에서 신문에 눈을 두고도 그 앞에 풀들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른다. 참으로 나는 구제불능인가 보다. 이러니 선거에만 온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하는 후보의 길은 꿈도 꾸지 못하나보다. 며칠 전에 쌘 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일이 생각난다. 그 때 목회학박사 과정을 공부하느라 6주간을 그 학교에 가 있었는데 공부하다 싫증이 나면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었다. 길이 아스팔트 이였는데 이상하게 불쑥 나온 데가 있었다. 누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발로 꼭꼭 누르는데 아스팔트가 쪼개지면서 새파란 이파리가 삐져나왔다. 아니 이게 웬 일이야? 네가 이 두꺼운 아스팔트를 뚫고 나왔단 말이야? 그 옆으로 큰 나무 등걸이 있었다. 거기서 뻗어 나오는 새순이었나 보다. 나는 그 옆의 아스팔트를 들어냈다. 그 곳에 빼곡히 쌓여있던 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 생명의 강인함이여! 그 어린 순이 밀고 나온 힘이 너무나 신기하고 신이 났다. 그래 너희들 그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사람들이 너희가 자랄 자리도 남겨놓지 않고 길을 만든다고 마구 아스팔트를 부어놓았구나! 마치 그들에게 사죄라도 하는 심정으로 한참이나 아스팔트를 뜯어냈다. 그들의 영토를 늘려주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침 거기는 주차장의 끄트머리라서 도로 훼손죄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종로 뒷골목을 걸으면서도 길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화분들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저 화분을 가꾸는 사람들은 확실히 나처럼 꽃을 좋아하나 보다 하고 동지의식을 느끼는 모양이다. 또 축대 틈 사이에 달려있는 씀바귀나 작은 풀들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너도 이 세상에 할 일이 있어서 그렇게 사느라고 애쓰는구나. 너도 산소를 만들어서 이 탁한 공기를 정화하고 있구나. 씨를 만들어 새들의 먹이도 되게 할 텐데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가겠지? 그래도 죽지 말고 잘 살아라. 너는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 거야. 네가 죽어서 썩으면 또 다른 풀을 위한 거름도 될 테지. 나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건 너와 마찬가지야. 하나님은 우리 모두 서로 도우며 살아가도록 창조 하셨대. 너는 식물이고 나는 동물이니까 움직일 수 있는 우리가 너희를 잘 건사해 주어야 하는 대. 혼자서 이런 이야기를 노닥이다 보면 우주 속의 티끌 같은 자신을 보며 새삼스러이 감사의 마음에 젖어든다.

안상님  sangni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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