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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아직도 병신도?<정중규 칼럼> 교황청의 평신도성 신설 논의를 환영하며
정중규 | 승인 2015.03.06 11:10

지난 2월 12~13일 교황청에서 전 세계 추기경 164명이 모인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재로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 교황청 기구 개편과 관련하여 주목할 논의가 있었다. 바로 평신도평의회와 가정평의회, 교황청 생명학술원을 합쳐 새로운 성(省)인 ‘평신도가정생명성’으로 승격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제껏 주교성, 성직자성, 수도회성은 있었지만 평신도를 위한 성은 없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회 반세기만에 비로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하느님 백성’ 교회상에 한 걸음 다가서겠다는 교황청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교황이 교황청의 정체성을 일깨우면서 하느님 백성의 친교를 위해 교황청이 존재하는 것임을 재확인시킨 것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의 발표대로 이제 시작의 느낌이다.

피라미드는 허물어졌지만, 삼위일체적 친교공동체는 요원한 가톨릭교회

   
▲ 2월 12~13일 열린 추기경 회의에서는 교황청 개혁에 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CNS]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최는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우선은 현대사회의 세속주의(secularism) 흐름에 맞서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교회가 세상에 적응하는 이른바 세속화(secularization)의 길을 통해 세상 속에 투신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선 교회가 먼저 복음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보고, 지난 오백년간 가톨릭교회의 틀이었던 피라미드 방식의 트리엔트 체제를 넘어 삼위일체적 친교 방식인 초대교회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 ‘하느님 백성’의 교회로 쇄신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철옹성 같이 굳어버린 틀 속에서 쇄신을 추구하다 보니 자기 살을 깎는 것 같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과거의 유물로 돌려 창고에 가두려는 앙시앵레짐의 반동적 움직임은 그렇게 일어났고, 기어인 공의회 이후 반세기 후반기는 보수적 교황 시대로 보내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생은 그런 시대착오적인 반동적 움직임이 옳지 않았음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뤄진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한국가톨릭교회, 그 퇴행적 보수화

한편 로마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거슬러 보수화되니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한국가톨릭교회는 더욱 보수화되어갔다. 김수환 추기경의 은퇴와 서거 이후, 마치 고대 로마의 원로원 같은 염수정·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은 보수적 색채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바티칸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프란치스코 열풍’이 지난 교황 방한으로 한국가톨릭교회에까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갑자기 닥친 현실에 대한 부적응과 인지적 부조화로 여러 사안들에 대해 엇박자 모습까지 드러내기도 했었다.

문제는 한국가톨릭교회의 체질이 된 보수화가 교회 정체를 심화시키는 주요인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가톨릭교회의 한국사회 내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형적인 성장, 곧 신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믿고 살 맛’을 잃은 신자들은 곧바로 냉담자로 되면서 교회에서 멀어지고 만다(마태 23,15). 그야말로 앞에서 벌어 뒤로 잃는 꼴이다.

그러기에 이번 교황청 추기경 회의에서 교회 개혁의 일환으로 평신도성 신설을 논의했듯이, 한국가톨릭교회를 되살리는 길 역시 평신도가 교회 내에서 ‘믿고 살 맛’을 느끼며 온전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본다. 그런데 성직자가 교회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교권만능주의의 퇴행적 현실을 어찌할까. 성직자가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기에는 이미 광폭, 다양, 전문, 심대해진 현대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그것은 진정 평신도의 몫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하느님 백성’ 교회상 구현을 갈망하는 시대적 징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교회를 세운 2세기 전 평신도, ‘병신도’로 전락한 현재의 평신도

   
▲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 장면

거기에다 한국가톨릭교회는 평신도가 세운 교회다. 1836년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인 조선교회 창립기에 천주교 곧 서학(西學)을 받아들인 평신도들은 실학과의 밀접한 연관성에서 볼 수 있듯, 사회변혁 차원의 관심에서 학문 연구로 시작해 복음적 진리를 깨쳐 신앙을 갖고 다시 그것을 사회변혁적 실천으로 움직여나갈 태세였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약소민족의 아픔을 겪었을 뿐 아니라, 정치는 어지럽고 사회는 극도로 불안했던 그 시절, 역사의식이 강했던 그들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사상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교회 창립자들 가운데 실학자들이 많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 시대에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혁명가와도 같은 시대적 이단아로 떨어지는 길이었으니 순교를 각오해야 했고 결국 그 시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박해 받고 제거(순교)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번에 시복된 124위 신앙선조들을 비롯하여, 초창기 우리 평신도들은 ‘명도회’ 같은 모임을 봐서도 알 수 있듯 소위 ‘사회적 영성’에 온전히 열려 있었으며 탐구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초대 천진암 강학회 회원들이자 교회 창설자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형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 주문모 신부, 강완숙 등 한국교회사를 빛낸 이들은 모두 그 시기 인물이다. 그 시기의 순교자들이 영성적인 면으로나 활동적인 면으로나 후대의 순교자들보다 더 눈부신 이유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

   
▲ 1910년 3월 9ㆍ10일께 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와 면회를 갖고 있는 안중근(맞은편) 의사. 주위에는 일본군과 간수들 5명이 안 의사를 둘러싼 채 앉아 있고, 왼쪽에는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ㆍ공근 형제가 함께하고 있다.

이런 한국가톨릭교회의 평신도들이 ‘병신도’ 상황으로까지 몰락한 것은 순전히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잘못된 지도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영신주의적 신앙관에 입각한 내세주의에 의해 급속도로 순치당하면서 말 그대로 순한 어린 양 떼가 되어버린다. 동일한 순교인데도 불구하고 앞의 것이 사회변혁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뒤로 갈수록 내세지향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어쩌면 암담했던 조선 말기, 살 길이 막막했던 그들 민중들에겐 차라리 ‘죽어 천당 가는 것’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되니 진정 가슴 아픈 목불인견의 참혹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수만 명 순교자를 낸 그 시대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열매란, 선교지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창립 선조들을 모두 외면하고 오직 선교사 중심으로 선정된(복자 때는 선교사 범 라우렌시오 주교를 늘 앞세웠다) 103위 성인군단을 배출시킨 것 외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지경이다.

그 폐단은 박해가 끝나고 종교자유가 주어진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 오히려 최고조에 달했으니 역설적 비극이다. 안중근 같은 깨어난 평신도가 교회 지도층에 부담스러운 존재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죽어서 천당만 가면 된다’는 식의 구원관을 지녔던 선교사들에 있어 사회변혁을 위한 행동 그 실천은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뮈텔 주교를 비롯한 선교사들에 의해 휘둘린 그 시절 한국가톨릭교회는 민족 현실에 어두운 눈 먼 이방인처럼 되었고, 기어인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 뮈텔 주교가 독립운동하는 신자의 명단을 일제에 넘겨주었다거나, 안중근 의사 집안에 세례를 준 빌렘 신부를 성무 정지시키고 그마저 교황청에서 반대하자 이번엔 아예 본국으로 추방해버렸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목불인견의 과거사다.

선교사들에 의해 뿌리내린 교회 분위기는 그 후 백 년간 현대 한국가톨릭교회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그런 추세는 70~80년대 시절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곤 요지부동의 대세가 되었고 지금도 확고부동의 현실이 되어있다. 보수의 뿌리는 그만큼 뿌리 깊은 것이다.

2세기 전 영적 활력 되찾으려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평신도 소리 외면 말아야

   
▲ 남미 민중들의 고난의 역사 그 소중한 결실인 프란치스코, 원주민 전통 모자를 쓴 교황. [CNS]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맨쇼 하듯이 고군분투하며 교회 개혁에 앞장서고 있지만, 참된 교회 쇄신은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곧 평신도들이 시대의 징표를 깨달아 온전히 껴안을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 실증이 남미 교회다. 1960년대부터 군사정권과 미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밑바닥에서부터 민중들이 생존을 위한 피맺힌 절규를 부르짖으면서 그 현장에서 해방신학이 나오고, 그 몸부림의 소중한 열매가 프란치스코 교황, 그 교황이 지금 바티칸에서 세계 교회 쇄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가톨릭교회 역시 2백여 년 전의 평신도 영성 그 영적 활력을 되찾아 처음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중심인 평신도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삼중직(사제직·예언직·왕직)을 교회와 사회 속에서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교회는 실질적인 권한부여를 하고, 그를 위한 새로운 틀을 교회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가톨릭교회가 3세기로 접어들면서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우리신학연구소’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등이 교회 쇄신을 이끌어 내는 활약도 기대해 본다.

거듭 말하지만 하느님 백성이 교회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유기체인 교회는 모든 지체의 소리를 어느 것 하나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평신도들의 갈망을 교회가 유기적으로 껴안을 때, 교회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생명력을 온전히 회복할 것이다.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느님의 소리(Vox populi, Vox Dei)다.

<필자 소개>

정중규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이자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대표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정중규  mugeo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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