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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기획연재] 제11회 공부 싫어하는 아이은이정 장편 아동소설 <난 원래 공부 못해>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5.03.30 12:03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로 고민을 하는지 물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공부 문제랍니다. 어릴수록 친구 문제 비중이 좀 크긴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학업 진로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청소년 고민 1순위가 학업 진로 문제이며 해가 갈수록 공부 문제 고민의 비중은 더 커졌다고 합니다. 앞에서 왕따, 학교 폭력 등 친구 관계 문제로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이런 문제들도 다 공부 문제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때문에 아이들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들은 왜 공부를 싫어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공부 좋아하는 애도 있냐고 대뜸 반문할 게 뻔합니다. 사실 어른인 자신도 공부하기 싫어하면서 애한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게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다들 그러고 있습니다. 부모가 공부를 즐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가 공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겠습니까. 공부 때문에 신경질 나는 경험만 했으니 공부가 싫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 만무하고 이렇게 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없습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도 어른이 시키니까 억지로라도 하는데 나이가 들면 어릴 적에 부모의 강압이 컸을수록 반발이 커질 가능성 큽니다. 그때 가서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 왜 재미있는 걸 즐기면서 몰입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을까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때부터 선행 학습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학부모나 선생님들께서는 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들이려고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아이는 어떻게 제 스스로 공부에 몰입하게 되는지, 마음을 살찌우는 공부는 어떤 공부인지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요즘 공부 잘 하게 만들어 준다는 실용 서적들이 많이 읽히고 있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가 주인공인 이런 아동소설을 부모님들이 꺼릴 것이라 짐작됩니다. [난 원래 공부 못해]라는 제목부터 거부감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진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팔리기만 바란다면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겠지요. 아이 공부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님들이 먼저 이 작품을 읽었으면 합니다. 수많은 권장도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좋은 책을 가려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책 읽는 아이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제 스스로 책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책읽기가 억지로 하는 숙제가 되어버리면 아이는 책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기에 의욕은 많지만 아이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계산기로 수학 문제 푼 거 맞지?”
  담임이 계산기와 찬이를 번갈아 보며 차갑게 물었다.
  “네,”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지?”
  “네.”
  “그럼 무릎 꿇고 앉아서 반성해.”
  담임이 검지를 길게 펴서 교실 문 앞 바닥을 가리켰다.
  찬이는 점심시간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급식실에 가지 못했다. 담임이 빵하고 우우를 가져다주었다. 빵하고 우유를 받아 든 찬이가 먹을 생각이 없는지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담임 앞으로 걸어갔다.
  “선생님 너무하세요.”
  “뭐가?”
  담임이 나를 슬쩍 올려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점심은 먹게 해 주어야 되잖아요.”
  “맞아. 하지만 찬이는 지금까지 나를 속였어. 점심을 먹게 해 주고 싶지 않아.”
  책상 위에 놓인 담임 손이 가늘게 떨렸다. 담임이 주먹을 쥐었다.
  “찬이는 원래 공부 못한다고 말했잖아요.”
  “원래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어. 노력하면 돼.”
  “노력해도 안 되면요?”
  “노력을 더 하면 돼!”
  담임이 짧게 말을 뱉고 입을 꾹 다물었다.
  “선생님은 찬이가 어떤 아이인지 아세요?”
  “무, 무슨 소리야?”
  “찬이가 구구단을 얼마나 외우는지 아세요?”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잘 외우는 줄 아는데.”
  대답에 자신이 없는지 담임이 말끝을 흐렸다.
  “다른 아이들 말고 찬이요‘”
  “사, 사학년이면 누구나 외우는 거잖아?”
  “알파벳은요?”
  “그만 해! 알았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담임이 창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한 학급에 18명밖에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 4학년 ‘진경’이네 반에 이제 갓 교단에 서게 된 젊은 여선생님이 새로 옵니다. 반 아이들은 새로 온 선생님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진경’이는 관심도 없고 도무지 정이 안 갑니다. 바로 이전 선생님이 간다만다 말도 없이 가버리는 바람에 시골 작은 학교로 오는 선생님들을 불신하게 된 것입니다. 새로 온 선생님은 처음 교단에 서는 분이라 의욕이 넘치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지만 ‘진경’이가 보기에는 잠시 저러다 곧 그만둘 게 뻔합니다. 이전 선생님들도 다 그랬거든요.

초짜 선생님은 안 해도 될 일을 새로 벌이면서 학생들을 괴롭히고 자신도 힘들어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한테 교육과정에도 없는 영어 단어와 한자 외우기를 시키니 애들이 죽어납니다. 선생님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게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니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겁니다. 점점 더 학급 분위기는 삭막해지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미워하게 됩니다. 특히 산자락에 있는 농장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찬이’는 원래 공부를 못하는 아이인데 새로 오신 선생님 때문에 만날 벌을 서고 견디기 너무 힘듭니다. 그런 ‘찬이’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진경’이가 나서게 되고 선생님과의 갈등은 깊어집니다.

처음 올 때부터 뭘 모르고 의욕만 앞설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견디기 힘들 만큼 갈등이 깊어졌을 때 좋은 기회가 옵니다. 선생님이 ‘찬이‘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겁니다. ’찬이‘는 4학년이 되어서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울 만큼 학교 공부가 부진한 아이인데 집에서 가축을 돌볼 때에는 웬만한 어른 못지않게 일을 척척 해냅니다. 아기 염소를 엄마가 자식 대하듯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모습은 정말 너무 성숙해 보입니다. 선생님은 충격을 받습니다. ’찬이‘에 비하면 자신은 참 철없는 헛똑똑이입니다.

산자락에서 가축 기르며 사는 건강한 농장 일꾼 ‘찬이’에게 영어 단어, 한자 외우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꼭 필요한 공부인가요. 그런 공부가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는 하는 건가요. 사람을 등급을 매기고 줄 세우기 위한 것일 뿐인 게 아닌가요. 이 작품을 읽으면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작품 읽히면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외면하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녀 공부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께 이 작품을 꼭 읽도록 권합니다.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 인식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견디는 이웃들이 도처에 보이거든요. 내 자식만은 저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힘이 되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부모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부모가 이런 경쟁에 몰입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부모의 무한한 자식 사랑이 자식 세대를 점점 더 숨막히게 만든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잠시만이라도 물러나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절실한 때입니다. 이 작품을 꼭 한번 읽어 보세요.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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