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신학을 통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신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을 재정립하기 위해 마련된 ‘에큐신학마당’이 첫 강연을 시작했다. 첫 강연자는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광선 교수가 초청됐다.

1931년 일제 강점기 하에서 태어난 서광선 교수는 목사로 순교한 아버지와 해방, 한국전쟁 등 인생을 담담하게 고백하면서 평화와 통일에 나서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 지난 5월 31일(일) 신촌 트립티에서 '에큐신학마당'이 진행됐다. 첫 강연자로 서광선 교수는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에큐메니안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른바 ‘88선언’의 작성자로 알려진 서 교수는 평안북도 강계 태생으로 할아버지는 함흥에서 의병대장을 지닌 구한말 장군이라고 한다. 일제에 의해 사형 당했고, 할머니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자식들과 함께 자결을 선택했다. 그러나 막내아들이었던 서 교수의 아버지 서용문(1905~1950) 목사만은 남겨 두었다고 한다.

압록강 두메산골의 시골로 보내진 서 교수의 아버지는 한 아주머니에 의해 성경을 접했고, 신학 공부를 위해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서용문 목사는 가난한 전도사였지만 일제에 대한 비판에도 거침없었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해 매주 끌려가 매를 맞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서 교수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켰듯이 일본에 대해 잘 알아야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한국의 모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친 서용문 목사는 일제에 저항하고자 했다.

▲ 서광선 교수. ⓒ에큐메니안

일제하에서 항일설교를 많이 했던 서용문 목사는 해방이 되자 반공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선친을 걱정하던 교인들은 소련군의 진주에 남쪽으로 피난가라고 종용했고, 월남하기 위해 평양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조선그리스도연맹 강양욱 목사에게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았지만 무신론자(북한 공산당)와 타협할 수 없다며 거부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선친은 반공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서 교수도 인민군에 징용될 것을 걱정해 교회 마루를 뜯고, 몸을 숨기도록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됐고, 하루 종일 마루 밑에 숨어있어야 했던 서 교수는 답답함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인민군에 잡혀갔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징용은 면했다.

당시의 일은 서 교수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신체검사소에 들어가자마자 군의관은 청진기 한번 대보지 않고, “너 아프지? 기관지염에 폐병이 있다. 얼마 안 되어 죽는다.”며 불합격증을 찍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사소를 빠져 나오면서 ‘형 대신해서 군대에 갔다올게’라고 했던 동생과는 마지막 이별을 해야 했다.

맥아더가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탈환한 후, 행방불명 됐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경험한 전쟁은 끔찍했다.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면서 본 수많은 시체는 “평생에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선친 서용문 목사는 대동강 하류 강둑에 다른 목사들과 함께 묶여 총살 당한 채로 버려져 있었다.

순교자 집안이 된 서 교수의 가족들은 서울로 피난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해군 통신병이 된 서 교수는 미국의 동기생으로부터 미국 유학을 권유받는다. 미국으로 건너간 동기생이 서 교수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것. 1956년 8월 15일 대학 입학으로 명예제대 한 서 교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 참가자들이 서광선 교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강연 후, 간단히 질문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경험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 서 교수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었다. 인민군에서 징용되어 전쟁으로 죽은 동생, 반공목사로 찍혀 인민군에 의해 죽은 아버지, 기적적으로 태어나고 살아남은 자신, 그는 “45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2배나 인생을 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며 평화와 전쟁 반대를 말하기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서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신앙과 학문, 실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이성과 자유를 통해 신학적 상상력이 닿는 곳까지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문학, 철학, 역사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특히 본회퍼가 미국에 소개되던 시기에 <옥중서간>을 읽으면서 순교자 아버지를 이해하기도 했다. 또한 몰트만, 마틴 루터 킹, 월남전 반대, 신학 공부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실천도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의 이러한 삶의 배경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참고인’으로 잡혀갔을 때의 형사의 질문처럼 ‘왜 나는 평화와 통일을 주장하는가?’에 맞닿아 있다. 그를 잡아간 형사는 강의노트를 보며, “(순교자 아버지를 둔)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끔찍한 전쟁을 경험한 그가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고백에 기인한다. 또한 이 고백은 80년 5.18광주민중항쟁을 통해 깨달은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88선언’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이번 에큐메니안 신학마당은 동연 출판사, 트립티, 본사 공동주최로 격주 일요일 오후5시 신촌 트립티에서 진행된다. 14일 두 번째 강연자는 서울대 이찬수 교수로 ‘유일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라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이어 이정배(감신대), 김흡영(강남대) 교수가 강연자로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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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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