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1970년~1979년) ~ (2)

2) ‘서울대생 신민당사 난입사건’-1
1971년 2학년 새 학기, 동숭동 법대 교정은 공릉동 교양과정학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교련반대”, “학원사찰 중지”, “언론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학교 전체가 고시공부 모드였다. 교문을 들어가면 왼쪽에 단층의 휴게실이 있고, 그 앞으로 낡은 2층 건물이 남북으로 길게 솟아 있었다. 입구에 4·19 민주혁명의 상징인 자유의 종이 매달려있는 현관을 들어가면, 1층에는 학생과와 학장실 그리고 교수연구실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위층에는 가운데에 작은 열람실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두 개의 도서관이 차지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실내에는 칸막이가 되어있는 책상 150석씩 차지하고 있었다. 대학도서관이라고 하기 보다는 대입준비를 위한 독서실 분위기였다. 남쪽 도서관은 대체로 2~3학년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북쪽 도서관은 4학년들과 졸업생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지정석(指定席)은 아니었지만 한 번 앉은 학생이 읽던 책들을 나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 일 수였기 때문에, 거의 지정석이나 마찬가지였었다.

2학년이 된 나는 교양과정학부 시절 <후사연>의 일들은 잊고 마음을 새로이 하여, 수업이 끝나면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까지는 대체로 남쪽 도서관을 이용하여 “개천에서 난 용(龍)”이 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나 시국(時局)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그해 4월 어느 날, 3학년 장기표 선배가 나를 불러냈다. 대통령 선거 참관인단에 법대 대표로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양과정학부 <후사연>모임을 방문한 그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후사연>의 심재권 회장이 서울 12개 대학 대표들로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을 구성하여 그 회장을 맡고, 4·27 대통령선거를 참관하기 위한 참관인단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문리대 <후사연> 회원인 나병식(작고,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상임이사, 당시 국사학과 2년)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관인단’의 일원(一員)으로 강원도 홍성으로 가 투표상황을 참관(參觀)하였다. 문교부가 인정한 공식 참관인들이어서 그랬는지 우리는 투표소 안에 마련된 참관인석에 앉아 투표현황을 참관할 수 있었다.

그 지역 중년의 남자들이 우리에게 접근하여 위협적으로, “투표는 안 하고 남의 마을에 와서 무슨 XX들이냐?”라고 쌍소리를 섞어가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려도 누구 한 사람도 그들을 저지(沮止)하는 사람이 없었다. 산골마을이라 노인들이 다수인 이곳에서 우리는 젊은층들이 노인들을 부축(副軸)한다는 구실로 투표 박스 안에 노인들과 같이 들어가 노인들의 손가락을 잡아 투표한다(일명 ‘피아노 투표’)든지, 젊은 사람과 노인들이 한 사람씩 사이를 두고 줄을 서서, 젊은 사람이 투표하고 나와 뒤에 들어가는 노인에게 기표할 번호를 가르쳐 주는 식(‘릴레이 투표’)의, 희한(稀罕)한 방식들로 부정선거를 자행(恣行)하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위의 위협적인 분위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이를 지적(指摘)하는 것은 물론 시정(是正)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치 않아, 우리는 그냥 바라만 보면서 무기력한 치욕감(恥辱感)을 맛볼 수밖에 어쩔 도리가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하여, 박정희는 김대중보다 100만 표를 더 얻어 삼선(三選)에 당선 되었다.

▲ 1971년 5월 석방당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김경남, 손호철, 정우량, 한석태, 정계성, 우양구, 이근성(왼쪽에서부터)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은 곧 바로 “참관인단 보고대회”를 열고, ‘4·27 대선이 부정선거’임을 공표(公表)하였다. 국민들의 분노도 치솟아 올라, 5월 총선을 보이코트하자는 여론이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런 와중(渦中)에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수 Y씨가 당선이 확실시 되는 자신의 지역구 서울 상동구를 여당인 <공화당> 인사 J씨(당시 <대한축구협회>회장, 박정희의 처조카?)에게 팔아넘기고 다른 지역구를 옮겨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었다.

그러자 ‘서울대 참관인단’들 가운데 40여명이 <신민당> 당사를 방문하여 이를 항의(抗議)하고, 총선을 보이코트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독재정권은 이들 중 손호철(<서강대>교수, 당시 정치학과 2년), 이근성(<인터넷신문프레시언> 상임고문), 김호경(<법무법인 김엔장> 상임이사, 당시 정치학과 2년), 한석태(<경상대학> 교수, 당시 정치학과 2년), 정우량(전 <월간중앙> 편집위원, 당시 국사학과 2년), 정계성(<법무법인 김엔장> 대표, 당시 법학과 3년), 우양구(미국주재, 당시 행정학과 2년), 필자(당시 법학과 2년) 등 8인의 학생을 구속하고 이 사건을 ‘서울대생 신민당사 난입사건’(이하 ‘신민당사 난입사건’)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독재정권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였던 각종 간첩단 사건 등 반공법 위반 사건을 제외하고는 일반 형법에 의거(依據)하여 학생들이 한 사건에 이처럼 집단으로 구속된 것은 60년대 ‘한일회담반대시위’ 사건들 이래 처음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示威)는 말할 것 없고, 법조인들이 변론인단을 구성하여 무료변론에 나섰다.
 
검찰이 ‘업무방해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신민당> 대표 K씨는 변호인 심문에서 “학생들과의 평화로운 대화였다”고 증언했다. “학생들에게 겁박(劫迫)을 당해 업무가 방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변호인의 심문에,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학생들과의 대화를 하면서 나는 수치심(羞恥心)을 느꼈다.”고 진술한 <신민당> 대표 K씨의 증언에, “수치심은 곧 혐오감”이라고 한, 군 법무관 출신의 K검사의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오랜 동안 세간(世間)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는 수치심은 곧 혐오감이고, 강박으로 인한 혐오감으로 업무방해를 받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그는 평화적 대화라는 “피해자” 측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폭력적인 수단으로 당사를 점거하고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억지 논리를 전개 하였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좌익(左翼), 용공(容共), 종북(從北)’으로 밀어붙이지 않은 것 만 해도 아직은 이성적(理性的)인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검찰은 폭력에 의한 ‘건조물 침입죄’(형법 319조)와 ‘업무방해죄’(형법 313조)를 물어 전원에게 유죄를 구형하였다. 재판장 양헌(梁憲) 판사는 구속한 지 한 달 만에 보석(保釋) 판결을 내려 학생들을 석방하였고, 결국에는 ‘최소한 선고유예(宣告猶豫)’만이라도 하는 검찰 쪽 요구를 받아드리지 않고 무죄판결(無罪判決)을 내렸다.

그러나 그 후 양 판사는 강압(强壓)에 의해 판사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변호인단 대표 변호사였던 이병린(李炳隣) 변호사도 누명(陋名)을 쓰고 낙향(落鄕)하고 말았다.

한 달 후인 6월 경, 이범렬, 최공웅 판사 등 세 사람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에는 검찰의 이런 보복적인 조치에 항의하여 전국 지방법원 판사들의 집단사퇴(集團辭退)로 시작된 지방법원 판사들과 지방 검찰청 검사들 간에 갈등으로 번졌고, 이어 고등법원과 고등검찰 간의 갈등, 그리고 마침내는 대법원과 대검찰청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사법부가 독재정권에 무릎을 꿇고 굴종(屈從)하는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고 만 것이다.(‘제1차 사법파동’)

계속되는 시위로 말미암아 위수령이 내려져 서울 시내 10개 대학이 휴업을 당하고 각종 서클이 해체되었다.(10월 15일) 그리고 2000여명의 학생들이 연행되고, 그중 각 대학 시위주동학생(주로 학생회 간부 및 대의원들) 174명이 제적되고, 그들 중 결격자(缺格者)(상대 김문수와 같은 병역면제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강제입영되었다.( 10월 17일)

그리고 <민주수호전국학생청년연맹> 위원장인 심재권(<새정련> 국회의원, 당시 상학과 3년), 장기표(전 <전태일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당시 법학과 3년), 조영래(작고, 변호사, [전태일평전] 저자, 당시 사법연수원 1년), 이신범(당시 [자유의 종] 편집인, 법학과 4년) 등 4명이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11월 12일)

석방 된 나는 무죄판결로 인(因)한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확정판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 두 번 다시 심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제적(除籍)도 강제군입대도 면할 수 있었다.

<필자 소개> 김경남 목사 1949년 (66세) 전남 완도 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법대, 한국신학대학 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한국민주화기독교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무주<푸른꿈고등학교> 교장,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본부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경남 목사  gisoo9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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