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천국과 새로운 계급사회

우리 옛말에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 된 “우리 나이”라는 나이 계산법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어머니 뱃속에서 있었던 9개월이 지나 태어나면 바로 한 살짜리 어린이가 된다. 조선 말기 인두세를 거둘 때, 부인들이 아이를 임신하면 바로 식구가 하나 늘어난 것으로 계산해서 인두세를 올렸던 것이 “우리 나이”의 유래다.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베트남 사람들도 “우리 나이”라는 개념이 없다.

최근 가브리엘 주크만(Gabriel Zucman)이란 사람이 <숨겨진 국부 The Hidden Wealth of Nation>이란 책에서 세계 금융자산의 8%에 상당하는 약 7조 6천억 달러가 조세천국에 숨어 있다고 추정했다. 7조6천억 달러는 전 세계 74억 인구 중 소득중하위층에 속하는 37억명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천국이라는 낱말은 서양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말로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데가 지옥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지상에도 지리적으로 천국으로 인정하는 곳이 있고, 그곳에는 종교적 가르침과는 달리 부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하니 예수께서 무어라 하실지 모르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 하셨으니 말이다.

우리도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OECD는 2013년 탈세를 합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부패가 심한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한국도 3대 입주 기업이 많은 국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조세천국은 진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사실은 이 지구상에 인간이 건설한 지옥과 비슷한 곳이 아닐까.

미국에서 사회적 공론 과정을 넘어 정치적 공론의 주제가 된 것이 극심한 소득의 불평등에 따른 기회의 박탈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조차 상상도 못하는 소득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1%의 부자들이 미국 자산 증가액의 95% 이상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다수 시민들은 그런 사람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고 있지만 새로운 귀족사회를 형성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몰리는 곳이 런던이라고 한다. 공중에서 촬영한 저택의 모습은 중세 때 봉건영주들이 살던 거대한 성이 자리 잡았던 공간과 같은 정도의 큰 땅을 차지하고 있다. 정문에서 경비를 하는 사람들이나 가정부나 정원사 청소를 하는 사람들도 제한된 공간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사회를 영어권에서는 금권사회(plutocracy)라 한다. 연관된 낱말이 부호 정치가, 금권주의자, 금권민주주의, 배금주의 내지 황금숭배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 한자어로는 재벌(財閥)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벌(閥)이라는 문자는 대문(門) 앞에 창(戈)을 든 사람(伐)이 가로막고 있는 형상이다. 이웃이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더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섭지 않으면 무장한 경비병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일반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다수가 세습적으로 재산을 상속 증여받은 사람들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만사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싶을까.

우리는 카프카의 소설 <성채>의 주인공 “K"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측량기사인 주인공 “K”는 성채의 주인이 위계의 최상위에서 여러 하급단계를 거쳐 내린 지시에 따라 멀리 성채가 보이는 지역에서 측량을 하려다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받은 소식은 “일을 훌륭하게 처리했다”는 누구의 전언이었다. 당연히 성채의 주인이나 그 직속 부하는커녕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1926년에 쓴 글이지만, 현대 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미리 예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사시던 로마제국 치하의 유대나 갈릴레아, 사마리아 땅의 일반 사람들도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위로는 신적 존재인 황제가 있고, 아래로는 로마 총독과 봉분 영주들이 있고, 일선에는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산헤드린이란 최고회의가 있어 율법을 앞세워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간섭하고, 낙인이 찍히면 어디서 누구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인지도 모르면서 집단적인 돌팔매질이나 절벽에 밀려 떨어져 죽을 위협 속에서 살았을 것이니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었으면 최고회의 위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한 밤중에 예수를 찾았을까? 2011년에 나온 <새 아메리카 성경 New American Bible>의 복음사가는 니고데모를 유다인의 지배자(a ruler of the Jews)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관대한 분이라 대화 중에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를 “이스라엘의 스승”(the teacher of Israel)이라 부르셨다(John 3:1-10 참조). 그리나 우리는 니고데모가 최고회의에서 예수를 변호하는 발언을 했고, 장례까지 치를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최상위 부자 1%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루그만 교수도 인정했듯이 우리는 1%에 속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 사실이라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만몬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자원봉사활동을 할 때도 더 큰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한다면 우리 자신의 삶의 자세도 더 포용적이 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 스스로 먼저 변모되려는 노력 중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무슬림 수니파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 앉아 무엇을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집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둘이서 한 참을 찾다가 물었다. “그런데 열쇠를 어디서 잃었습니까?” “집에서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집 안보다 여기가 더 밝아 잘 보이니까요.” -끝-

박상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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