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일 자체가 즐거울 리가 없고 그런 망상은 현실 적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다들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기에 흠뻑 빠져, 날 새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며 창의적 발상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잖아요. 우리 속에 헛된 욕심만 가득하여, 그런 참다운 기쁨을 볼 줄 몰라서, 그런 게 어디 있냐고 까막눈이 된 게 아닐까요.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우리 시각은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소외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나중에는 자아를 상실하는 생의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는 어떤 일로 행복하며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봐야 합니다.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게 먼저이겠지요. 홀랜드 직업적성 검사는 인간의 흥미적성유형을 Realistic(실재형), Investigative(탐구형), Artistic(예술형), Social(사회형), Enterprising(기업형), Conventional(관습형)으로 분류합니다. 나는 어떤 직업에 잘 맞는 적성을 갖고 있을까요. 

 

실재적 유형은 말수가 적고 남성적이며 솔직하고 소박하며 단순한 성격 유형입니다. 추상 개념을 다루는 일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손으로 만지고 만들고 하는 일에 재미를 잘 느끼고 기계 장치를 조종하는 기술직에 잘 맞는 성격 유형입니다. 탐구적 유형은 늘 생각이 많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며 추상적 사고에 익숙해질 가능성이 높은 성격 유형입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 사고 활동에 잘 적응하는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유형은 감수성이 풍부하며 자유로운 성격 유형입니다. 얽매이는 걸 싫어하며 독특한 개성을 추구합니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활동이 활발합니다. 

 

사회적 유형은 이타심이 많아 남을 잘 도와주고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정이 많아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헌신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적 유형은 통솔력이 있어 자신의 주장대로 남들이 따라오기를 바랍니다. 야심이 강하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강한 의지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유창하게 말을 하려고 하고 지배력을 보입니다. 관습적 유형은 꼼꼼하고 빈틈이 없으며 묵묵하게 자신의 소임을 차근차근 해내는 스타일입니다. 책임감이 강해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원리 원칙을 강조하고 보수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의의식이 싹트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아정체감을 유지하는 일도 성장 발달의 어려운 과제인데 이제 어른이 되면 적성을 파악하고 그에 잘 맞는 전문성을 길러야 하는 다음 과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고달프게만 보지 맙시다. 인류 문명사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며 탈피의 고통 없이 날아오를 수 없다는 뻔한 얘기는 하도 많이 들어와서 감동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숙제를 재미있게 풀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행복해 하는 사람을 찾으세요. 그 사람 곁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행복은 전파되고 공감이 되면 그 다음은 저절로 다 됩니다. 내 일이 즐거우니 생산물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그러면 내가 만든 게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지요. 그런 사람 만나봅시다.

 

‘와타나베 이타루’를 아십니까. 일본의 시골 빵집 주인입니다. 시골 빵집 주인이 뭐가 대단하다고 이렇게 유명해졌을까요. 시골 빵집인데 전 세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니 참 대단한 빵집 주인입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빵집 얘기를 책으로 내어서 우리도 그 사연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입니다. 시골 빵집이 너무 거창하지요. 무슨 빵집이기에 이리 거창할까 궁금하실 겁니다. 

 

‘이타루’ 빵집의 종업원은 일 주일에 나흘만 일한답니다. 일 년에 한 달은 장기 휴가를 떠난답니다. 이런 빵집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많이 못 벌어도 이런 직장에서 일하면 평생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타루’의 빵집은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인건비와 재료비로 다 들이고 약간 남은 이윤도 출자한 만큼 직원들이 나누어 갖는답니다. 이 정도 되면 책 제목에 ‘자본론’이라는 거창한 용어가 들어갈 만하지요. 

 

마르크스는 자본의 성장은 곧 착취라는 것을 설파했지요. 모든 비인간성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인 게 맞습니다. ‘이타루’는 “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일 없이도, 누군가가 혹사당하지 않고도 생물이 각자의 생을 다한다.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패하지 않는 경제, 축적시킬 수 있는 경제가 부의 집중과 노동 착취를 낳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타루’ 빵집의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나누면서 마음이 풍족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자연 생태계처럼 돈이 쌓이지 않고 잘 삭아 순환하기 때문에 늘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게 아닐까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는 건 누군가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행복관에 빠져 있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사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기에 행복한 빵집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타루’의 빵집 이야기가 너무 논리적이라 가슴이 울리지 않는다면 카페 ‘마니’를 들러 보는 건 어떨까요. 책이 많이 읽혀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도시 생활에 지친 부부가 시골로 내려와 빵집을 엽니다. 주변 자연 환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곳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일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카페 ‘마니’를 찾아와 며칠 묵으면서 부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를 얻게 됩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시골로 내려가 펜션을 연 분이 꽤 됩니다. 그런데 웬만큼 여유가 되어야 이런 꿈이라도 꾸지, 서민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페 ‘마니’보다 ‘이타루’의 빵집이 더 아름답습니다. 카페 ‘마니’는 참 예쁘긴 한데 현실 속에서 잘 이루어질 수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잠시 묵어갈 수는 있겠지만 거기 가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들 도시의 삶이 너무 척박하고 비정하여 떠나고 싶지만 어디 가더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 쉽게 결단을 못합니다. 가진 것 별로 없어도 여유 있게 일할 수 있는 시골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타루’의 빵집 같은 곳 말입니다.

 

『해피 해피 브레드』의 환상과 ‘이타루’의 현실이 만나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마음만 착하면 언제든 내려가 일할 수 있는 곳. 욕심 부릴 일이 없어 편하게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곳,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자연친화적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참 먼 길이었습니다. 한 해 저물녁에 이 이야기를 그만 거둘까 합니다. 그동안 구시렁대는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마주하게 되는 마음의 짐을, 왕따로부터 시작해 직장 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로 풀어내 보려고 했습니다. 아이와 부모, 학생과 선생님이 속닥속닥 얘기 나누며 마음이 따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의 오만과 무지를 반성하는 심정으로 고백한 것이라 너그럽게 보아 주셨을 것이라 믿으며 두루 평안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