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기원전 6∼2년에 아론의 후예로서 아비야 조에 속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1번의 유아기 기원은 아버지와 부정적인데, 요한의 잉태와 출생 당시 나이가 많았던 아버지는 늦둥이 아들에게 애정 표현과 교감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특별한 계시와 수태고지를 통해 태어난 자식이기에 허물없이 대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요한과 마찬가지로 1번인 나는 딸 둘을 낳고, 사고로 남아를 사산했던 가정에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기대하던 아버지는 실망하여 며칠 간 병원에 방문조차 하지 않으셨다 전해 들었다. 에니어그램 유형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유아기 기원이 무의식적으로도 작용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번은 대게 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사람 앞에 서면 긴장을 한다. 또한 이들은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요한은 제사장 반열을 이어가지 않고 주로 광야에서 은둔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렇듯 아버지를 부인하는 점에서 나의 경우, 내가 결혼 상대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동갑으로 위화감 없이 꽤 민주적인 가정을 꾸리셨다. 그러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고 순한 우리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유교적인 사회와 시대의 산물이셨기에 가정 경영이나 자녀 교육에는 뒤로 물러나 계셨다. 이런 점 때문에 아쉽고 섭섭하셨을 엄마는 자주 불만을 토로하며 잦은 언쟁을 하셨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어린 나는 이 현상을 나이 차이가 적어서 그랬던 것으로 해석하며 ‘나는 커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결혼해야지’하는 막연한 바람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크든지 작든지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 대목에선 나는 아주 확실한 결과를 얻었다. (참고로 나는 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세례 요한은 사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도 언급된다. 그는 죄의 회개를 외치며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 점은 1번의 개혁가적인 사명감과 책임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결국 그는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러 오시는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 세례 운동을 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정일치 시대에서 당시 상황은 요한을 강하게 정의를 주창하도록 내몰았다.

최고 지도자 계급인 사두개파 제사장들은 로마와 타협하며 살았고, 평신도 지도자인 바리새파는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다. 또한 열심당원들은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이었고, 헤롯당원과 세리 등은 로마의 앞잡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메시아가 오시기만을 갈망하는 처지였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개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은 그 어떤 유형보다도 1번들이 버티기는 어렵고 힘든 일이다. 요한은 결국 타락한 제사장 계급인 사두개파에서 떨어져 나와 에세네처럼 광야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경건과 순결을 지켰다.

에니어그램에서 말하기를 분별의 지혜와 책임의식이 강한 1번은 분에 넘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단순하지만 고급스럽고 장인정신이 깃든 아이템이나 공간 그리고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럭셔리한 것을 과시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또한 그러한 세태나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껴왔다. 그동안은 이러한 점을 단지 취향적인 면과 신앙적인 측면으로 해석해 왔는데, 이제 보니 나의 이런 점이 에니어그램적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종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무섭거나 근엄한 아버지 밑에 자라난 1번들은 대체로 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며,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그들도 완전해지려는 노력을 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바 있다. 이런 정의감에 입각한 완전주의 성향으로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할 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 14:4)라고 비판했다. 그 결과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참수형을 당하는 희생양이 되었다.

나도 ‘완전’이라는 1번의 함정에 걸려들어 아직도 자신을 몰아붙이고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긴장감을 줄 때가 종종 있다. 다행히 에니어그램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수년간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내려놓기’와 ‘비우기’ 연습을 해온 덕분에 많이 유연해졌다. 다시 말해 내 생각과 방법만이 옳다고 믿고, 그것을 주장하며 강요해왔던 것이 독선임을 에니어그램을 배우는 초기에 깨달아 회개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1번의 격정인 분노와 9번 날개에서 비롯되는 게으름을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다. 1번이 변화하여 성숙해지면 평정이라는 덕목을 살려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일도 즐겁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게 된다.

신학자 볼프강 스미스는 엘리야를 세례 요한으로 엘리사를 예수로 대입하며, 각각을 길을 예비한 사람과 성취한 사람으로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그럴듯한 평행이론이 떠올랐다. 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80년대에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1년 안에 덩치 큰 보수적인 집으로 시집을 가 외부 활동은 배제되고, 출산과 육아 그리고 집안 살림에 전념하도록 하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결혼 8년차에 이대부속유치원 어머니회에서 파생된 봉사모임인 “이싹회”에 가입하며, 00부인, 00엄마로 불리며 잊혀 졌던 내 이름 석 자를 찾게 되었고, 그 후 봉사활동이나 몇몇 NGO, NPO에서 간헐적으로 활동을 하며 사회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어느 단체나 직장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만, 1∼2년 전부터 공동체문화원에서 오랜 기간 접해 왔던 에니어그램과 기독교 영성을 접목해 공동체적으로 연구, 수련하며, 때때로 교육과 수련 프로그램을 열어 강사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집안으로 볼 때 나는 우리 세 아이들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각자의 역량대로 성취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세분화된 전문가들의 시대인 21세기에 자기 분야에서 유능한 지인들에 둘러싸여 전문적 직업이나 직함이 없는 나는 콤플렉스를 느끼며 깊은 의미에서의 정체성 혼란(‘나, 지금 뭐하고 있지?’,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실 때 어떤 미션을 주셨을까?’ 등)을 겪곤 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도달한 결론은, 에니어그램과 영성 수련에 정성을 쏟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들어섰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에니어그램 공부와 수련에 더욱 매진하여 1번으로서 부여받은 달란트를 온전히 성취하는 ‘성숙하고 온화한 개혁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경원(공동체 문화원 리더십 팀장)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