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저예산으로 116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알찬 흥행’을 거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역사 속 인물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는 영화 <동주>를 통해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이 됐다. 이와 더불어 문학계도 윤동주의 시를 다시금 주목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초판본의 표지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오리지널 디자인’시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편, 윤동주의 시를 다시 읽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통해 ‘윤동주를 다시 읽는’ 책도 출간됐다. 시인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리더십교양학부)의 책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가 바로 그것이다. 진보 기독인 온라인 네트워크인 ‘길목’은 11일(수) 향린교회에서 김응교 교수를 강사로 초청, ‘윤동주와 곁으로’라는 제목으로 월례강좌를 열었다.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리더십교양학부, 시인). ⓒ에큐메니안

이날 강좌에는 김 교수의 책을 읽은 기성세대들뿐만 아니라 어린 청소년들도 대다수 참석했다. 김 교수는 윤동주의 동시에 가락을 붙여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청소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김 교수는 강좌를 통해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는 그의 타자를 향한 따듯한 시선을 강조했다. 이는 윤동주가 디아스포라(그리스어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였다는 점, 또한 가문을 통해 이어 받은 민족정신, 신앙심에 기반 해있다. 28살에 생을 마감한 윤동주는 22년 4개월은 중국에서 생을 보냈다. 4년 남짓한 국내 체류기간 동안 그가 한국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시 <별 헤는 밤>에 잘 나타난다.

김 교수는 “윤동주는 난민이었어요. 1932년에 만주국이 수립되지만 윤동주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에게 위탁받은 만주국민 이었습니다. 매우 복잡한 소속이죠. 윤동주에게 있어 정체성은 평생의 질문이자 시의 주제였습니다.”

또한 김 교수에 따르면, 윤동주는 동시 시인이기도 했다. 윤동주는 다양한 동시들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동시들은 밝고 명랑하지만은 않다. 동생이 오줌을 싸서 이불에 말린다는 내용의 동시 <오줌싸개 지도>는 앞부분은 재미있지만 뒷부분을 보면 화자는 결손가족 꼬마다.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오줌싸개 지도>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 얼어 죽는 사람을 걱정하고(동시 ‘눈’),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넣을 것이라고는 두 주먹 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을 격려하고 싶었던(동시 ‘호주머니’) 소년 윤동주. 김 교수는 “윤동주는 슬픔과 재미있게 살아왔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한 “윤동주는 아잇적부터 슬픔을 받아쓰는 작은 대언자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동주의 또 다른 동시 <반딧불>에서는 이러한 그의 성품이 드러난다. <반딧불>에서 반딧불은 보름달이 제 몸을 조각내 떨군 조각들이다. 비록 보름달은 그믐달이 됐지만 세상에 떨궈진 조각들만큼 세상은 밝아졌다.

반딧불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반딧불>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에요. 윤동주가 어린 시절부터 썼던 시들을 보면 어둔 세상을 향한 따듯한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1940년 작 <팔복>그리고 5개월 후에 쓴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윤동주 '팔복'

김 교수에 따르면 <십자가>에서 윤동주가 그린 예수는 슬픔과 함께 살아왔기에 괴로웠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짐으로 영원히 슬퍼하기를 선택했다. 윤동주 또한 괴로웠던 사나이 ‘처럼’ 그 행복을 택했다.“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했던 복과는 달리 신약에서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복을 말씀하십니다. 윤동주의 <팔복>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슬퍼하는 자에게 있는 복’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윤동주의 시 <팔복>은 대부분 풍자시, 절망시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윤동주는 슬픔과 함께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 정치인, 시민들이 윤동주처럼 ‘모둔 죽어가는 것’부터 살핀다면 그 순간이 바로 혁명일 것”이라며 “영원히 함께 애도하는 ‘행복한 몰락’에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 윤동주는 그저 교과서에 실린 시, 혹은 팬시상품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령은 기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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