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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을 칭찬하시다니!(누가 16:1~8)2016년 6월 12일 성령강림다섯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06.12 20:15

*영상설교: youtu.be/T2FJQLz9WQA

 

1. 예수님의 비유 

1) 비유를 좋아하신 예수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설교도 하나의 의사 전달이다. 이야기 식으로 하는 설교도 있고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설교도 있고, 부흥회 식의 설교도 있다. 설교는 근본적으로 글이 아니라 말이다. 말은 듣는 순간 스쳐지나가고 흩어지기에 나는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설교는 피하려고 한다.

설교 중간 중간에 가능하면 청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시청각 기계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림, 영상, 음악 등을 이용하는 설교를 하고 있다. 콕 집어서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 자 성격과 기호, 그리고 청중의 성향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활용될 수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약 1/3이 비유라고 한다. 무척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기록까지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니라."(마 13:34)

사실 비유는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을 청중이 보다 정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만, 어떤 경우는 비유가 더 어려운 때도 많다. 직접 말하면 쉬운데 에둘러 말하면 오히려 더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하는 경우가 생겨났고 신학에서도 예수님의 비유 해석은 중요한 과제가 되어 왔다.

2) 알레고리 해석

비유 해석 중에 재미있기는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알레고리 해석 방법이다. 알레고리란 은유적 해석법이라는 뜻인데,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품 하나하나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는 방법이다.

빈센트 반 고흐,'착한 사마리아(1890년). 올해 창립기념주일 주제 포스터였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대해서 기독교 최대 신학자 중의 한 명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레고리 방법으로 해석하였다. 강도 만난 사람은 인류의 첫 사람 아담, 강도는 사탄, 착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 강도만난 이를 태우고 간 나귀는 예수님의 성육신, 여관은 교회, 그리고 여관 주인은 사도 바울을 뜻한다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사람은 사탄의 공격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교회를 통해 치료받고 구원받게 되며, 곳곳에 여러 훌륭한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돕고 있다는 정도의 뜻이 된다. 이러한 해석이 기독교 교리 상 크게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정말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냐는 것이다. 알레고리 해석은 많은 경우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진짜 뜻과는 거리가 먼 해석에 이르기 쉽다.

강도를 만나 빼앗기고 다쳤거나 아니면 그냥 넘어져서 다쳤거나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그가 지금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일 뿐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든지 아니면 그냥 길에서 구급약으로 응급처치를 했든지 별 상관이 없다. 그를 도와주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모든 인물, 모든 소품에 다 의미를 부여하면 비유의 핵심을 놓치고 산만해지거나 엉뚱한 해석에 이를 수 있다.

3) 비유해석의 원리 ; 초점(Focus)

예수님의 비유에는 정말 주님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초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유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변경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마을 앞 언덕이 어떻게 생긴 것이냐고 묻는 어린 자녀에게 지질학을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면 동화적으로 설명한다. 옛날에 거인이 저 멀리 있는 큰 산에서 삽으로 흙을 떠서 나르다가 흙을 좀 흘렸는데 그때부터 여기에 언덕이 생겼다는 식이다.

거인이 삽으로 뜨다가 흘린 것이나 손으로 퍼서 옮기다가 놓쳐서 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부수적인 요소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해석을 피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신 의도와 핵심 초점이 무엇이냐를 찾는 것이 올바른 비유 해석의 열쇠다.

2. 사기꾼이 옳다니!

1)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얀 루이켄(1649~1712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칭, 영국, 궁수들의 성경 삽화)

성경에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주인의 돈을 함부로 쓰다가 발각되어 쫓겨날 위기에 빠진 청지기(피고용인)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주인 재산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 살 길을 찾았다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이다.

부정을 저지른 이 청지기는 꽤 넓은 저택에서 산다. 집안 살림살이나 옷 등 행색이 군색하지 않다. 탁자 위에는 채무 관련 서류들이 펼쳐져 있고, 탁자 오른쪽 아래에는 돈궤로 보이는 궤짝이 있다. 그는 월급 외에 부정한 방식으로 축재를 했고, 그 소문이 돌아서 주인에게까지 들어가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그 빚을 삭감해주어 채무자에게는 이득을, 채권자인 주인에게는 손해를 끼친 것이다. 그리하여 후에 자신이 쫓겨났을 때, 채무를 줄여준 이들이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다. 그는 공문서 위조, 배임, 횡령 등 죄질이 나쁜 경제사범이다. 거짓을 행하여 신뢰를 상실한 도덕적 잘못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인에게 손해를 입혔으니 법적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2) 당황스러움 :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예수님

그런데 주님은 명백한 죄를 저지른 이 사람을 의롭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오히려 칭찬하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굳이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이런 말씀을 예수님 하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아하고 당황스럽다. 구약의 예언자 전통이나 예수님의 평소 언행에 따르면 이런 부정직하고 사기꾼은 당장 잡아다가 심판을 내려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오로지 자기 유익을 구하고 그것이 발각되어 위험에 처하자 더 뻔뻔한 죄를 저지른 악인을 주님이 정죄하기는커녕 칭찬을 하셨다. 이런 말씀 읽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멘붕이 온다.
도대체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무슨 뜻을 전달하려고 하신 것인가?

3. 위험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실천

1) 불의한 청지기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성경은 이 사람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청지기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악하고 비열한 사기꾼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도덕한 청지기가 지혜롭게 처신한 것 딱 하나는 자신의 위험을 감지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 대안을 찾고 실천했다는 점이다. 주인이 불러서 이야기했는데도 못 알아차린다든지, 위험을 알긴 했는데 이리저리 재다가 결단의 기회를 놓쳤다든지 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이 청지기는 즉시 자신의 살길을 찾아 행동에 옮겼다는 점이다.

사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전달하고자 하신 것은 위험이 코앞에 와 있는데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하거나 우유부단하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부정직하고 사기꾼 같은 이 청지기도 그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말씀이다. 위험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2)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

주님이 전하신 복음의 중요한 특성은 임박성이다. 그래서 신앙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목이 터져라 이렇게 외쳤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 3:9)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계산해보고, 이래저래 재볼 겨를이 없다, 이미 심판의 도끼가 우리들 삶을 향해 내리쳐지고 있으니 이 사실을 듣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세례 요한의 뜨거운 외침이었다. 예수님도 바로 이러한 정신적 환경에서 살았고 바로 그 세례 요한으로부터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를 것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장례를 치르고 와서 따르겠다는 청년의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주님은 한 마디로 거절하신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태 8:22~23)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특성은 지금, 여기 내 코앞에 닥쳐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우리를 마구 몰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복음의 특성이다. 복음의 긴박함과 우리의 느슨함 사이에 긴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주님을 따르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일분일초가 급하신데 우리는 참 여유가 많다. 이 하나님의 조급함과 인간의 여유로움 사이에서 그리스도 복음은 질식하고 있다.

3)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도의 준비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부분)'(1534~41년, 1370*1220cm, 바티칸)

우리 모두는 청지기와 같다. 내가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중요한 사명을 부여 받은 사람들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주인은 청지기들을 일대일로 평가하신다.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 절대적인 평가를 심판 또는 구원이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는 모두 그 때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그 날을 바라보면서 살아야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 심판의 날이 우리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해버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21세기 들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러니 기독교 복음이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시대 전체가 느긋한데, 낙관적 발전론으로 별로 시급하거나 긴박함이 사라졌는데, 코앞의 결단을 요구하는 기독교 복음이 무슨 효용성이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과 시대를 다시 한번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재앙이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나는 사실 너무나 낙관적이고 느긋한 우리 시대를 긴장으로 몰아넣는 재앙이 닥칠까봐 두렵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 특히 신약의 복음서를 쓰고 읽었던 초대교회는 역사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살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을 쪼개고 구름타고 내려오셔서 악을 심판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하늘로 들어 올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21세기의 과학적인 우리들이 똑같은 신앙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고 치자.

피터 브뤼겔, '죽음의 승리(부분)'( 1563년경, 162*117cm, 프라도 미술관)

역사의 종말은 그렇다 치고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게 느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은 개인적 성격의 하나님 나라, 곧 개인의 죽음이다. 지난 2천 년 동안 개인의 종말인 죽음을 맞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평균 수명이 30년 이상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100세가 된다고 해도,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셈하는 것을 준비하면서 서둘러 대안을 실행에 옮기는 청지기의 지혜는 여전히 중요하고도 유효한 것이다.

4) 오늘 밤 당장 주인인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저울에 달고 셈하자 하신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청지기는 분명 사기꾼이고 파렴치하지만 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딱 한 가지,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 그것은 임박한 심판을 인정하면서 구원을 향해 즉각적으로 결단하고 실행하는 삶이다.
나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구원의 문은 집요하게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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