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 나타난 7번 유형인 느헤미야는 열정적인 지도자로서 돋보이는 인물이다. 대제국의 황제에게 총애를 받던 대신의 자리에서 일신의 행복에 안주해 살 수도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동포들의 형편을 듣고, 그들의 말할 수 없는 고생과 피폐해진 사정을 알게 됐을 때, 그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뢰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 7번 유형은 자신의 고통은 물론 남이 고통당하는 이야기조차 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들은 만족을 추구하기에 즐길 거리를 찾아 깊이 빠져들어 탐닉하며 고통을 잊으려 한다. 열정이 격정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행복보다 고국의 피폐한 상황을 알고는 그 고통을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대처하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지닌 열정이 사랑으로 나타나며, 고난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창의적인 생각과 신앙이 맑은 정신과 배합된다. 

“꿈은 혼자 꾸면 꿈이고, 여럿이 꾸면 현실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서 나오는 창의력이 여럿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함께 공유하게 되면, 그 꿈은 비전이 되고 그 비전은 실현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재건을 꿈꾼다. 현지답사를 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며 성벽과 성전 수축을 포함한 예루살렘 재건사업을 추진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느헤미야의 창의성이 번득이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면까지 살피며 관리한다. 피폐해진 상황에서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원하긴 하면서도 타성에 젖은 삶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그들은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불평불만을 드러낸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고충을 창의적으로 처리하며 지도자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 준다.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 신뢰받는 지도자는 고통분담에 탁월하다. 느헤미야는 민중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듣고” 의분을 느낀다. “그들이 울부짖는 내용을 신중하게 살핀 다음에,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어찌하여 같은 겨레끼리 돈놀이를 하느냐"고 호되게 나무랐다.

느헤미야는 지도자충의 반발과 음해를 차단하며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보이면서 말한다.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집과 재산을 이렇게 다 털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아멘’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느헤미야는 상상하기 어려운 개혁을 마무리하고자 스스로 총독으로서 녹을 받지 않기로 결단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무임봉사’를 실행하면서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고결한 지도력을 높인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창의적으로 실행한 지도자의 본보기다.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는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일을 하겠다는 느헤미야의 맑은 정신과 깊은 영성이 묻어나는 기도라 하겠다. 그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인기에 영합하거나 자만과 허영에 빠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스트레스도 자기과시도 이겨내는 절제의 힘이 있음을 본다. 맑은 정신을 살리는 경지에 이르면 중용과 절제의 미덕을 한껏 살리게 된다. 전통과 혁신의 조화가 빚어내는 창의성과 맑은 정신을 지닌 느헤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마음을 하나로 알고 살았던 것 같다. 

고통 받는 민중들의 삶과 고난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느헤미야가 그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은 신앙과 기도의 구체적 표현이나 다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지도력의 패러다임을 세우면서 동시에 지도력을 공유하려고 각 분야의 지도자를 세운다. 이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아닌 권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느헤미야가 드러낸 중용과 절제의 지도력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 나타났다. 그 상징적인 일이 초막절의 재발견이다.

그는 역사와 전통을 재발견함으로써 고난에 동참하는 공동체를 회복시켰다. 말씀의 나눔을 사랑의 나눔으로 발전시켰다. 절망을 희망으로 옮기는 변화를 일으켰다. 개인의 변화를 넘어 사회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킨 느헤미야는 ‘이 모든 것을 돌이켜 본 뒤에, 우리는 언약을 굳게 세우고, 그것을 글로 적었으며,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그 위에 서명하게 했다. 그는 스스로 결단할 뿐 아니라 모든 지도층이 함께 서명하도록 함으로써 공동체 결의로 언약을 세웠다. 

느헤미야는 이처럼 보기 드문 지도자지만 전통과 선민사상의 틀을 깨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갈등을 극복하고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등 위기에 대처하며 성취하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이방인들, 심지어 결혼 생활을 하던 사람들까지도 추방하도록 조치한다. 이는 마치 원리주의자의 열광주의적 행동과 같다. 열정이 지나치면 격정으로 나타나는 사례이다. 열성가적 기질이 강한 7번 유형은 위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좌절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럴때 남다른 활달함과 맑은 정신에 큰 에너지가 결합된 창의성으로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7번 유형은 어머니가 똑똑하고 적극적이어서 사랑은 하면서도 간섭하고 개입하는 까닭에 만 여섯 살을 전후해 어머니와 부정적인 관계를 경험한 기억이 있다. 특히 어머니에게 물건이나 애정, 꿈을 빼앗긴 경험이 있어서 박탈감을 잘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에는 푹 빠진다.

대가족 속에서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은 별 불편함과 어려움이 없이 자라났다. 꼭 부정적인 기억을 하라고 하면 피아노가 치고 싶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더니 보내달라는 피아노 학원은 안 보내주시고 그 당시 “YWCA 유치원”을 보내주었고, 아들을 바라시던 어르신들 때문에 어릴 적 내 머리는 늘 빡빡머리였으며, 유치원 복장은 남자아이들처럼 바지를 입히고 싶으셨는데 마땅치 않으셨는지 치마바지를 입히셨던 기억들이다.

그 후로 남동생 둘이 태어나고 나는 이모들이 좋아하는 삐삐머리나 두 갈래 땋은 머리로 지냈었다. 대가족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할머니, 이모, 삼촌, 언니, 오빠, 아빠, 엄마, 동생들… 그리고 때마다 서울에 오시면 지내고 가시는 일가들…. 불편함보다는 날마다 즐거웠다. 아빠의 깨알 같았던 의학서적들도 끼고 살았고, 세계사, 한국사 이야기들은 닳고 닳도록 읽어댔다. 매달 나오는 과학 월간지, 학생 월간지들도 꼼꼼하게 읽고 스크랩해 보관할 줄 아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똑똑하다고 칭찬만 듣던 나는 지적 교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시험지를 백지로 내거나(다 아는데 왜 쓰냐고…), 학교운동장에서 발표회를 할 때면 나는 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것을 선택하고는 했다. (그냥 발표회인데 나는 유난을 떨며 영어이야기를 한다든지….) 그 지적 상태를 지금도 유지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빠의 신앙이 희미해지면서 엄마와 우리 삼남매의 신앙생활도 타격을 입었다. 엄마는 교회금지령이 내려졌고 우리 삼남매도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어려운 중에 신앙은 더 자라나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 삶의 선택을 늘 존중해주셨다. 그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가 선택의 상황에서 결단할 수 있는 용기는 선택의 실패가 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싶다. 

남편을 만나고 어쩌다가 사모가 되어 목회자의 자리에 조력자가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첫 속회를 참석하러 가는 길에는 기도를 외워가야 했고(사모가 되어서 술술 기도하기에는 너무 놀았다). 성경암송대회, 성경퀴즈대회에서 우승하던 지적 자존심은 신앙생활을 조언하는 것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IMF가 터지면서 울산의 목회지에는 30명의 아이들이 사택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아이들과 지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큰 교회에 가서 쌀과 김치를 얻어다가 매일 고추장 넣은 김밥을 만들어 먹으면서도 아이들과 지내는 것은 매일 즐거웠다. 그 아이들과 공부방도 하고 소풍도 다니고 중창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아마 대가족속에서 살았던 경험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때 사모의 자리보다 고아원선생님을 했으면 더 잘 했을 듯….)

남편이 인도하는 예배가 좋았다. 함께 기도하면서 울고, 떼쓰고, 성경을 정독하고, 신앙서적과 상담서적을 읽어가면서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달란트를 발견해내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다고 생각할 때, 부정적인 생각들을 할 때, 격려하고 긍정에너지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목사의 아내로, 조력자로 살다가 드디어 지금의 한벗조합, 서울외노센터, 트립티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았던 나의 7번 유형의 성향들이 세공되어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임이나 조직에서 ‘혼자 꾸면 꿈이고 여럿이 꾸면 현실이다.’는 말처럼 함께 일을 이루어나가는데 긍정적인 에너지로 꿈이 현실이 되는 역사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7번 유형인 느헤미야처럼 맑은 영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낙천적이고 이상적이며 꿈이 많고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이 내게도 있다. 7번 유형이 새롭게 시작을 잘하는데 반해 끝마무리가 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들 한다. 활달하고 정력적이면서 진취적이고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추진하는 리더십을 가져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도 종종 듣는다. 그러나 7번 유형인 나는 맑은 정신의 덕목을 살려 남아있는 생애를 나도 행복하고 또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여전히 찾을 것이고, 여전히 현실이 되게 할 것이고 그렇게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박미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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