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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의 시대에 은총을!(시편 113:1~9)2016년 11월 6일 창조절 열째주일 설교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 승인 2016.11.05 23:13

*영상설교: youtu.be/yAc4cGAQnfo

 

■ 주간 단상 : 진정성

1)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대통령이 10월 24일에 이어 11월 4일에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열흘 만에 두 번이나 사과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2) 어제 서울 도심 집회 20만 명 행진 : 박근혜 퇴진 

그럼에도 어제 5일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는 시민 20만 명이 모여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유례가 드문 대통령의 연속 사과에도 시민들의 분노는 풀리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

3) 말의 진정성 

그것은 말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과에서 국민은 진정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 가정,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말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불임의 비극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가정마다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 과잉으로 못산다하여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였다. 산아제한 캠페인 포스터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은연중에 셋 이상 아이를 낳는 부모는 좀 미개인 같은 눈초리를 받았고, 90년대 중반까지 셋째 아이 출산할 때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보통 4~5명 자녀를 두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1~2명 낳아서 똘똘하게 키우는 것이 교양 있는 가정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출산율 급감으로 우리 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부부가 2명은 낳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이 1.3명이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인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면 노동력이 줄어들어서 돌봄을 받아야 할 노인은 늘고 봉양해야 할 노동력은 줄어들어서 고령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서둘러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출산해야 할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거나 한참 늦추는 현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요한 원인이 현재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정도로 경제적인 여건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우리 사회에 위험 신호인 것이다.
한국 사회가 불임의 시대를 살고 있고 이러한 현상이 치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걱정스럽다.

2. 하나님을 찬양하라!

1) 이스라엘의 노래 :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편 113편을 통해 이스라엘은 기쁨으로 노래했다. 이런 노래는 그냥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감격이 넘치는 노래다.

82년도에 한신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입학식에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불러서 영문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갔더니 장학금을 주었다. 당시 등록금이 60만원이었는데 전액 장학금이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가 장학금을 받고 집으로 오니 힘들게 농사지으면서 소 키워 등록금 마련하시던 아버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하다. 그 후로 나는 4학년 졸업할 때 매학기 장학금을 받아서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내게 장학금은 그것이 유일한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이스라엘의 기쁨은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그냥 콧노래가 나오고 춤이 덩실덩실 춰지는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오늘 시편을 노래하고 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1~3절)

2) 찬양의 내용 : 한나의 노래 (7~8절)

오늘 시편에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중심 내용은 7절 이후에 나오는데 이것은 삼상 2장에 기록된 한나의 노래를 인용한 것이다.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는 마을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 예로부터 쓰레기나 오물은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다가 쌓아둔다. 마을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주로 이런 곳에서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로 극빈자들, 병자들, 죄인들이 이런 데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다시 권리를 회복하여 마을 공동체와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기쁨과 감격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 기쁨을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다는 감격적인 노래다.

서양 중세의 편지 (엘가나와 부인들)

사실 이 노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를 시편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한나는 사사시대 엘가나의 아내로서 별로 흠이 없는 여인이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로 온갖 설움과 고통, 멸시를 감수해야 했다. 옛날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엘가나는 브닌나라는 아내도 있었는데, 아이를 낳은 브닌나는 아이가 없는 한나를 무시하고 가슴 아프게 했다. 엘가나는 이런 한나를 가엾게 여기고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아이가 없는 설움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줄 수는 없었다.

특히 온 가족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갈 때마다 브닌나는 한나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래서 한나는 억울하고 속상해서 먹지도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남편 엘가나가 아이 없으면 어떠냐고,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느냐고 따뜻하게 위로했지만 그것이 한나의 아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는 제사 드리러 갈 때마다 성전 한 곳에서 괴로워하면서 통곡하였다. 얼마나 한나가 가슴이 미어지는 기도를 했는지 제사장 엘리는 이 여자가 술이 취했나 하고 들여다 볼 정도로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기도를 드렸다.

지금 우리는 한나의 고통을 실감하기 어렵다. 남녀평등이 많이 이루어졌고 불임이 여자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이 의학적으로 판명되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진짜 같다는 위로도 통할정도로 아이들 키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과 4~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불임은 여성에게 치명적인 고통의 원인이었다. 불임의 모든 책임을 여성이 져야했고, 남편이 공식적으로 다른 여자를 통해 아이를 낳아 와도 아무 소리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 당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3)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오랫동안 불임으로 눈물 흘리던 한나가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과 감격, 오늘 시편은 그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이처럼 잉태치 못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멸시와 눈물 속에 잠겨있었던 한나에게 잉태의 기쁜 소식을 주셨을 때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시편은 맨 끝에 이런 노래를 덧붙이고 있다.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먼지 더미와 오물 더미 근처에서 사는 것처럼 고통의 삶을 살다가 다시 온 가족의 사랑 속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사람 사는 삶을 회복시켜주셨다는 찬양이다.

3.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1) 한나의 눈물의 기도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한나(10세기 프랑스 찬송가 삽화)

한나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잉태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한나는 자신의 처지와 불행에 체념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파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나의 위대함은 자신의 고통을 그대로 싸안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눈물로 기도했다는 점이다. 나의 고통과 아픔을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니 반드시 헤아려주시고 채유해주셔서 나로 하여금 온전한 삶을 누리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한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생명의 하나님께서 불임으로 피폐해진 한나의 삶 속에 빛을 비춰주셨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옛날의 한나와 기도를 기억하며 다시 노래로 부른 것은 자신들도 국가의 멸망, 재난, 죽임, 포로 등 겹겹이 싸인 고난 가운데에서 무엇을 어떡해야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을 호소하고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그 믿음을 원했고 오늘 시편 노래에 한나의 노래를 재인용함으로써 한나의 잉태가 역사의 불임 시대를 살고 있는 후대의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 믿음이 이스라엘을 살렸다.

2) 중요한 것은 이 기도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꾸준히 구하는 신앙이다.

우리가 볼 때 한나는 금방 잉태한 것 같지만, 한나가 사무엘을 잉태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고난과 회의, 의심과 불안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했을 때 이루어진 성과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손의 약속을 받고 이삭을 낳기까지 25년을 기다려야 했다. 믿음은 한 순간의 감정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주님의 은총을 준비하는 삶이다.

지난주일은 종교개혁기념주일이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의 의제를 공개적으로 내걸었던 것이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다. 유럽교회는 지난 주일부터 내년 10월 31일까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그 첫 번째 행사로 10월 31일에 로마 가톨릭과 세계 루터교회가 공동 기념식을 스웨덴에서 열었다.

프란치스꼬 교황과 루터교 신학자이면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인 올라프 목사가 공동협의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선의의 경쟁관계이지만, 500년 전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목숨을 건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겪은 사이다.

로마 교황과 루터는 서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악마라고 하면서 투쟁했기에 이렇게 만나서 종교개혁을 같이 기념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로마 교황과 WCC 대표가 만나서 종교개혁을 같이 기념하는 결실을 이룬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1952년부터 60년 이상 가톨릭과 WCC가 ‘신앙과 직제’ 회의로 서로 교류하며 대화해온 것이 어느 시점에서 은총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3) 믿음의 준비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데 까지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한다. 모두가 삶을 누리다가 결실하는 행복과 소임을 다하도록 하나님께서 돌보시기 때문이다. 이 불임의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라. 과거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식도 과학도 발달하지 않아서 오로지 교회 와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간구하는 믿음이 마지막 결실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믿고 바라고 기다렸다.

지금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으며, 그만큼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는 믿음은 축소되고 있다. 이것이 불행이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라. 그곳에 주님의 은총이 임하고 불임의 시대에 잉태의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이훈삼 목사(성남 주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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