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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0일이 기념일입니까?"<전순란의 휴천재일기>
전순란 | 승인 2017.01.16 10:39

2017년 1월 9일 월요일, 맑음

아침식사 중 시우가 엄마 아빠 결혼식 앨범을 보여달란다. 하부이가 "시우야, 거기 너는 안 나왔어." 라고 하니 "나도 알아요. 형아면 몰라도, 내가 둘짼데 나왔겠어요?" 웃음이 나왔지만 묵직한 앨범 두 권을 내주며 "혹시 아니 너 나왔을지 모르니까 잘 찾아봐!" 했더니 앨범을 보며 "와, 엄마가 너무 이뻐 못살겠다." "정말 이쁘다. 기절하게 예쁘다."며 한 장 보고 방바닥에 기절하는 시늉으로 쓰러지고 다시 보고 또 쓰러진다. 조용히 앨범만 넘겨보는 시아에게 “넌 왜 암 말 없어?”라니 “예뻐요.”라고 간단히 한 마디.

작은놈 시우가 빵고 어렸을 때와 같다면 시아는 빵기 어렸을 적과 똑같다. 빵고가 이 엄마에게 얼마나 살갑고 쪽쪽거리고 하던지 “아가야, 너처럼 날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그 남자 따라 집을 나설 거야.”라는 고백을 내가 얼마나 자주 했던가!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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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다이아몬드 타령을 하던 작은손주를 위해 새끼손톱만한 다이어가 두개나 박힌 팔찌(1000원짜리 여자애 머리끈)를 사줬더니 그걸 끼고 하루 종일 놀다 보다를 계속하더니 뭔가 집히는 데가 있는지 "할머니, 이 다이아몬드 진짜예요? 가짜예요?"라 묻는다. "시우야, 그건 신비한 힘을 가진 다이아몬드여서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진짜가 되고,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가짜가 된단다."라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럼 진짜구나!" 하더니 얼마 후에는 책상에 던져놓고 관심조차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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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청담동에서 생전 처음 공중목욕탕 체험을 해본 두 놈이 아빠를 졸라 또 목욕탕엘 가잔다. 그곳 온탕이 넓어 수영도 물놀이도 재미있게 한 일이 제네바에서는 없던 일이어서 흥미로웠나 보다. “여기는 강북이라 거기처럼 큰 욕탕은 없단다.”는 말로 "시우야, 큰 뭐시기는 여긴 없다."라니까 큰 ‘뭐시기’가 뭐냐고 끈질기에 묻는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거시기’ ‘뭐시기’는 기본인데... 

시아는 “모처럼 한국 와서 겨우 말 좀 시작하니까 낼은 돌아가야 하네요.”라며 아쉽단다. 점심으로는 김치국과 생선전 파래무침 알타리무 등으로 토속적인 식사를 했다. 저런 음식을 먹는 습관들 또한 조국 언어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께다.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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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은 귀국후 아마 첨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시내를 나가고, 보스코와 나는 빵기네 세 식구와 ‘세월호 1000일’ 기억하러 광화문 사제단 미사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 시아와 시우는 추우니까 집에 남겠다 했는데 아범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집회에 가겠다고 결정을 하게 설득한다. 단 나가는 길에, 제네바에서는 비싸서 못 먹던 ‘와퍼 버거’를 사 달라 했다. 저녁으로 우리 모두 버거킹을 먹고 남은 반쪽은 나중에 먹겠다며 싸들고 미사에 참석했다.

맨 앞자리에서 시우와 시우는 아주 얌전히 미사참례를 했다. 추웠을 텐데 옆자리 수녀님이 주신 손난로에 재미 붙여 열중하던 두 꼬마, 신부님께 영성체를 한 시아. 영성체하는 형이 부러운 시우는 신부님의 강복을 대신 받았다. 미사가 끝나고 40여명 ‘바오로딸’ 수녀님들의 추모 노래와 작은 공연도 있었다.

뒤이어 침묵행진이 있었지만 꼬마들이 너무 추워해 우리는 그냥 돌아 왔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기도를 바치는데 시우 차례여서 “없어진 불쌍한 형들 빨리 찾게 해주세요.”라 하고, 시아는 “왜 형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그냥 들었는지 화가 나요! 도망쳐 버린 어른들도!”란다. 내일 아침이면 제네바로 떠나는 두 꼬마에게 가슴 아픈 오늘의 국내 정국이 일평생 바른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저 어린 것들에게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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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지하철의 '실종아동'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아빠의 설명을 부탁한다. 집에와 햄버거 남은 조각은 마다하고 김치국에 밥 말아 들기름 듬뿍 쳐 달래서 맛나게 먹는 꼬마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리 행복한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저 아이들의 기억만을 간직하고 사는 부모들 맘은 얼마나 처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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