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자락 구천동, 이곳에 관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지금은 고속도로로 덕유산 문턱까지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반이면 도달 할 수 있는 곳, 주변 공간은 이미 리조트와 모텔, 음식점, 노래방으로 채워진 곳이지만 돌이켜보면 80년대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 온 곳, 전국에서 땅 값이 가장 쌌던 곳, 손길이 닿지 않았던 가장 청정했던 곳이다.

지금은 휴양지로 개발 아닌 개발(dog‘s foot)이 되어 버린 지역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덕유산의 물줄기와 구천의 숲은 그 어느 곳 보다 청정하다. 이곳에도 교회는 있었고 언젠가 새롭게 치장되었음직한 돌로 축조한 교회를 살짝 훔쳐보았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마당 정면에 군인교회에 온 것처럼 ‘죽도록 충성하라’는 돌 비석 비문이 우뚝 서있다. 작은 자연석 하나씩 모아 정성껏 성처럼 굳건하게 쌓아 올린 교회 건물과 이 비문 두 가지만 보아도 이 교회의 신앙적 특질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그렇게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일까. 오히려 ‘죽도록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교회 옆 마당에 은빛 찬란하게 철탑으로 높이 올린 예쁘고 단아한 십자 종탑과 돌 교회 위에 차별성 색유리로 장식하여 올린 십자가 탑도 이 교회의 신앙적 특질을 훔쳐보는데 힌트를 주고 있다. 아마 십자 종탑은 옛날부터 서 있던 그 자리에 새롭게 세운 듯하다. 지붕 위 십자가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여 로마네스크 성당처럼 독립된 종탑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마침 이 교회의 창틀이 반원형 로마네스크 식 창문인 것이 흥미롭지만, 이것을 의식해 따로 종탑을 세운 것은 아닐 것이다.

본당 건물을 들어서면 크지 않은 로비지만 왼편 유아실 옆에 살짝 감춰진 친교실이 있고 로비에는 사무실에나 놓여 있을 법한 응접세트가 이층 계단으로 통하는 옆에 놓여있다. 감춰진 친교실은 누구나 들어가 보고 싶은 공간이며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될 기능성이 아주 높은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로비의 응접세트 소파에 교인들 중에 과연 누가 앉을 수 있을까. 힘없는 노인들은 오히려 그런 곳에 잘 앉지 않는다. 힘 있는 장로님용이거나 전시용으로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작은 나무 의자를 많이 갖다 놓거나 차라리 빈 공간으로 비워 놓는다면 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친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마음에 없는 높은 분 몇 분이 그 소파에 앉아 있으면 푸코가 지적했듯이 결국 권력자 몇 사람이 그 좁은 공간을 모두 점유하게 되는 것이며, 그 공간을 피하고 싶은 그룹과 계층도 있게 마련이다.

본당 제단 정 벽면에는 일반교회처럼 권위적인 대형 붉은 빛 나무 대형 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전체적으로 짙은 붉은 빛 갈색 톤의 성가구들이 제단을 점유하고 있으며 중앙 제대 위에는 다른 대형교회들처럼 야자수는 아니지만 파라다이스를 상징하는 나무가 올려져있다. 왜 이런 색으로 모든 가구를 칠했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우중충함을 시원한 고창의 흰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완화시키고 있다.

이 교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 지역주민이라고 할지라도 구천동이라는 청정한 휴양지와 어떤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인지 교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있다면 넓은 주차 공간의 마당과 활짝 열려진 로비 응접세트와 본당이다. 성수기에도 마당과 로비를 여행자들에게 개방하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유흥지에서 문을 개방한 것만으로도 이 교회는 90점이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비문도 좋지만 평일에는 감춰진 친교실 마저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라는 작은 안내판이라도 붙어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분명히 이 교회는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회를 개방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전도의 목적을 극복하고 휴가철만이라도 관광객들과 휴양객들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를 개방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한다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환경지킴이 프로그램, 반디불이 프로그램과 같은 생태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교회에서 덕유산으로 100미터 지나 초등학교가 있다. 규모에 비해 협소한 교문을 지나 학교 교실 창문에 운동장에서도 확인 할 수 있도록 학년 반 표시를 해 놓은 것은 이채롭다.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서도 개구쟁이 반이 어디인지 감시할 수 있도록 붙인 것인지 아니면 이 작은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형들을 위해 친절을 베풀기 위함인지 알 수 없지만 재미있다.

현관 중앙에 유리 표피로 세운 알록달록한 우주선 같은 계단 통로는 시멘트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퍽 자랑스러워 할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모양을 학교 건물에 세웠는지, 아름답고 청정한 구천동과 무슨 조화로움과 관련이 있는지 애매하다.

학교 건물 측 벽면에 스키를 타는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 학교가 무주 리조트를 선전하는 곳인지 아니면 스키를 특화시킨 학교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창문에 붙은 작은 표지부터 모두가 과시용처럼 보인다. 이 지역은 주민 수가 많지 않고 또 보존구역으로 덜 개발된 탓에 그나마 훌륭한 편이다. 전 국토를 차별성 있는 과시용 건물로 축조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차별성 있는 과시적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 정구 (성공회대학교)

이정구  jkl@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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