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박철 목사의 <아름다운 순간>
내가 가야 할 길길은 마침내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철 | 승인 2018.04.06 23:34

삶의 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어린아이는 뜨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몸집이 작은데도 큼직한 그림자가 앞서 가고 있다. 그것이 그의 미래이다. 정오가 되면 해는 남중(南中)하고 그림자는 어른의 발밑으로 완전히 빨려들어 가게 된다. 완성된 인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다가올 날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흘러간 세월에 대해 향수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현재를, 동시대인을, 친구를, 형제를 믿는다. 그러나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등 뒤에 그림자가 생겨나서 점점 길어진다. 이제부터 그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추억들의 무게를 발뒤축에 끌고 다닌다. 그가 사랑했다가 잃어버린 모든 사람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보태지는 것이다.

▲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박철 목사 제공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편안한 길, 넓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좁은 길, 험한 길을 애써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결국 종착지는 하나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어딘가 바보처럼 보이고 뭔가 손해 보며 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까닭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밝은 길이 어둡게 보이고, 나아가는 길이 도리어 물러나는 길로 보이며, 평탄한 길이 울퉁불퉁 험하게만 보인다.

▲ 이스라엘 마사다에서. 돌담 위에 까마귀가 날아가지 않고 맴도는 것이 신기했다. ⓒ박철 목사 제공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선비는 길에 대해 들었을 때 이를 열심히 실천할 것이다. 중간치 선비는 이를 반신반의할 것이고, 가장 수준이 낮은 선비는 길에 대해 듣자마자 크게 비웃을 것이다. 만약 이런 수준 낮은 선비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길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바른 길을 좆아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 삶의 의미와 진실을 목적삼고 찾아가는 길이라면, 결코 쉽게 찾을 수 없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거짓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시나브로 계절은, 봄 한복판에 들어섰다. 일제히 꽃들이 피어나고, 졌다. 이제 온 산천초목이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을 받아 활기차게 약동하는 계절이다. 이 풍성한 계절, 내가 가야 할 길을 더욱 옹골지게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박철  pakchol@empas.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윤인중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