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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향기, 생명의 자기표현
박철 | 승인 2018.06.02 00:11

20대 청년시절 어느 날, 나는 하릴없이 서울 장안동과 면목동 사이를 흘러가는 개천가를 거닐고 있었다. 살랑살랑 초가을 바람이 불고 저녁노을이 개천가 뚝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적당한 기분이 되어 개천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생활하수와 산업폐수가 흘러가는 시커먼 오물 더미 위에 작은 들국화 한 송이가 오롯하게 피어 있었다. 어떻게 씨앗이 예까지 날라 왔으며, 또 어떻게 폐수더미 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을까? 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몸을 기울여 그 꽃에 코를 갔다 댔다.

아, 그런데 그 작은 들국화에서 연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렇다. 아무리 세상이 썩고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할지라도 환경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한 송이 꽃과 같은 사람이 되면 된다.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피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후로 개천가 폐수더미에 오롯하게 피었던 들국화에 코를 갖다 대는 심정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게 되었다.

ⓒ박철 목사 제공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화제를 중심으로 하고, 농부는 농사와 관계된 일을 화제로 삼고, 정치인들은 나라 안 밖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일을 화제로 삼는다. 이처럼 직업이 삶의 맛을 내고 색깔을 낸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고약한 시궁창 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도 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느낌을 주고, 그래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나쁜 느낌을 주고, 그래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前者)와 같은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좋은 느낌을 주고, 위로를 주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고 있는 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사실 그 거죽은 비슷하다. 특히 동양 사람의 생김새는 모두가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때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역한 냄새가 풍겨난다. 일부로 꾸미고 단장하고 칠하지 않아도 은근한 향기가 발산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생기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인격에서 그 품성에서 발산되는 향기이다. 그 반면에 후자는 무엇을 열심히 꾸미고 단장하는데도 추하고 메스꺼운 냄새를 풍겨 그 곁에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박철 목사 제공

향기란 무엇인가? 생명의 자기표현이다. 풍부한 내면적 정신적 생명력을 지닌 나무와 꽃은 향기를 풍긴다. 만일 그 꽃이 시들고 썩었다면 향기 대신에 악취가 날 것이다. 고귀한 생명의 표현일수록 그 향기도 고상하고 그윽하다. 사람의 삶이 내뿜는 이웃과 친구에의 영향력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가진 돈, 지식, 재주, 그가 꾸민 간판 밑에서가 아니라 그의 내적 생명, 곧 인격 자체에서 풍겨나는 향기라야 한다.

삶이 고상하고 무게가 있을 때에 그 향기도 좋다. 천박하고 저급하고 경솔할 때에는 거기에서 시시한 냄새가 날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함은 사람이 더러운 냄새를 풍기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산다는 말이다. 인생의 의미라는 것도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 정신을 갖고 사는가 하는데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참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선 나 스스로의 내면적 성숙과 생명력을 지녀야 함과 같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과일이 열려있는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길이 나 있다. 사람들이 저절로 그 향기에 이끌려 모여들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향기가 나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위해 아량을 베풀 줄 아는 너그러운 사람,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인격을 동화시켜 그래서 언제나 은은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다. 나는 오늘 햇살이 좋아서 숲속을 거닐었다. 수많은 들꽃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과연 인생의 향기를 풍기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살고 있는가? 내 손길이 닿는 곳, 발길이 머무는 곳에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살고 싶다. 내 발걸음은 소풍가는 어린이처럼 가볍다. 들국화향이 들판에 짙게 풍기고 있다.

나는 목사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과 같이,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자 미상의 이런 시(詩)가 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굉장한 향기가 발산됩니다.
나그네가 묻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의 대답은 "아니요."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그것도 아니요."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이요."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박철 목사 제공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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