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나흘째

아침 새벽 5시에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ABC로 출발하다. 해가 뜨기에 뒤를 돌아보니 마차푸차레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차푸차레는 안나푸르나 히말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겨우 6,993M에 불과하지만, 현지 주민들이 이 산을 신성시, 입산을 금지하고 있어서 아직 아무도 정복한 사람은 없다.

▲ 아침 해가 떠서 구름을 물리치고 산 정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정의팔

마차푸차레 능선이 가파르고 엄청난 수직 기복을 이루고 있어 주변 봉우리보다 낮지만 특별히 이목을 끌고 있다. 이중의 봉우리가 물고기 꼬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휘시 테일(Fish's Tail)”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이스캠프’란 등산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설치되는 근거지 캠프를 일컫는다. 하지만 왜 오르지도 못하는 마차푸차레 밑에 있는 로찌에 베이스캠프란 이름을 붙였을까? 모든 것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게 만드는 마차푸차레를 뒤돌아보면서 끝없는 탐심을 없애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 맑게 개여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산들 ⓒ최정의팔

길가 산에 나무가 없다. 풀과 꽃만 무성할 뿐. 때마침 우기가 시작되어 온갖 야생화가 꽃을 피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들꽃들의 청초한 모습이 눈길을 계속 끌게 한다. ABC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라 힘들지는 않았다.

해가 뜨니 장엄한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설산의 위용을 자랑한다.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설산을 직접 보는데 불편함이 없다. 계속 맑은 것 같은 날씨였는데, 어느새 구름으로 인해 안나푸르나가 보이지 않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능선을 “안나푸르나 생투어리(Annapurna Sanctuary)”라고 부르니 성소를 계속 보면 신비감이 줄어들 것 같아 숨은 것 같다.

쉬엄쉬엄 사진도 촬영하고 쉬면서 가다보니 9시가 되어서야 ABC에 도착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는 다른 일반 로찌와 별 차이가 없다. 숙소가 있고 음식을 팔기도 한다.

베이스 캠프 오른 쪽에 멀리 태극기가 보인다. 한국 등산객 중에서 조난자를 기리는 비석이라고 한다. 구름 속에 안나푸르나가 숨어 있으니 오래 머물 수가 없다. 10시 30분에 하산을 하기 시작해서 12시 반에 MBC에 도착하였다.

▲ 맑게 개였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이 덮혀 한 치 앞도 보기가 어렵다. ⓒ최정의팔

▲ 드디어 도착한 MBC 입구 ⓒ최정의팔

MBC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시15분경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올라올 때보다 여유가 있어서인지 주위경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마차푸차레에 있는 눈덩어리가 보이고 높은 산위에서 직각으로 떨어지는 폭포도 눈에 들어온다. 설산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이제 많이 불어서 굉음을 내며 바위사이를 휘돌아 내려간다.

또한 산에 짐을 등에 메고 올라오는 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평지에서 메고 움직이기 쉽지 않은 각목을 세 개씩이나 지고 오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대우랄리에서 찌아를 마신 후 다시 하산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오다 보니 6시가 넘어서야 숙소인 히말라야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각 목을 세 개씩이나 등에 지고 나르는 청년 ⓒ최정의팔

▲ 들기도 힘든 풀바구니를 등에 지고 나르는 아가씨들 ⓒ최정의팔

저녁을 먹은 후 이야기 나눔 시간에는 모두 ABC를 무사히 올라갔다온 것에 감사를 표했다. 함께 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일정상 너무 성급하게 내려올 수밖에 없어서 안나푸르나 생투어리(성소)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분이 있었지만, 들꽃이 너무 좋다고 하거나 안개에 젖은 하늘 정원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분도 있었다.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감동을 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후에 귀국해서 많은 추억이 일어나리라 기대된다.

트레킹 닷새째

어제는 새벽 5시부터 무리해서 움직였기 때문에 오늘은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했다. 아직도 네팔음식을 입에 대기는 싫고 설사를 계속하지만, 몸 컨디션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죤 셀파가 끓여준 발아현미죽으로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히말라야 호텔에서 출발하여 따라, 샤히, 가지만 등과 함께 후발대로 천천히 내려갔다. 가이드 가지만은 한 때 풀릇을 불었다고 하는데 고음 음성을 잘 내서 노래를 잘 한다. 따라가 가지만에게 네팔노래를 배우면서 내려오게 되었다. 가지만, 샤히, 따라 등 세 명이서 네팔 노래를 부르고 필자는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도 제 나름의 멋이 있다. ⓒ최정의팔

도반을 거쳐 뱀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어퍼 시누아로 출발했다. 내려오는 도중에 돌에 핀 꽃, 굽어진 계단, 휘어진 담벼락 등 길거리에 가까이 놓여 있는 다양한 물체나 식물에 관심을 갖고 촬영을 했다. 전에 열두 걸음 명상 사진촬영을 한 적이 있다. 주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촬영을 할 많은 소재가 발견된다. 마음이 닿는 곳을 촬영하면 후에 그 사진들이 다시 말을 걸게 된다.

결국 성소는 어느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를 대하는 우리 마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ABC에 성소가 있는 것은 그 곳을 올라가는 동안 우리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기 때문에 성소를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르여가 읊은 시가 생각난다.

그곳,
안나푸르나 말고 / 마차푸차레 말고 / 촘롱 말고 / 도반 말고 / 시누아도 아니고 / 뱀부도 아니고 / 머끼웅도 아니고
그곳은 바로 너 / 그곳은 바로 너의 가슴 / 그곳은 바로 너의 가시 / 그곳은 바로 우리의 비밀 / 그곳은 바로 우리들만의 비밀
그곳이 바로 생추어리 / 바로 너 / 바로 너야말로/ 나의 생츄어리

▲ 하산하는 뒷길은 계단식 논과 어울려 아름답다. ⓒ최정의팔

어퍼 시누와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로 백숙을 주문했다. 필자는 배탈이 나서 속이 좋지 않았지만, 백숙에 들어있는 죽이 여간 맛이 있지 않았다. 가격은 많이 비싸서 한 마리에 9만 원이라고 한다. 계산을 한 미놋은 아무리 로찌라고 해도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올라갈 때 백숙 값이 4만원이었으니 거의 배가 넘는다. 미리 값을 물어보고 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하지만 이날 백숙은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이튿날 아침에도 남긴 백숙을 먹었으니 워낙 큰 닭이라 그렇게 비싼 것이었다고 생각을 돌려먹기로 했다.

▲ 가이드 가지만은 노래를 잘 불러 네팔 노래를 배우고 함께 불렀다. ⓒ최정의팔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 나눔을 하였다. 잠을 잘 자고 바람과 햇빛이 좋아 값없이 받는 행복을 느꼈다는 분, 평안한 일정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분, 노래하면 천천히 내려오면서 섬세하게 주위를 살피게 되어 좋았다는 분, 찬송하고 네팔노래하고 사진 찍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내려왔다는 분 등 대부분 트레킹을 즐기고 있었다.

이야기 도중에 바글릉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수르여가 “바글릉 학교 학생들,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즐겁게 드러내고 서로 공유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죤 셀파가 “학교 경영을 합리화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샤히 교장은 나름대로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우리와 동행한 포터들과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했으나 관습을 존중하여 마지막에 함께 찌아를 나누는 것으로 결론을 맺게 되었다.

트레킹 엿새째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가니 놀랍게도 포터들과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미놋이 로찌 주인에게 부탁하여 식탁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로찌 주인은 포터들이 먹는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우리는 전날 남은 백숙을 함께 먹고 음식도 함께 나누었다. 가이드인 가지만은 백숙을 즐겨 먹고 포터인 지번도 닭고기를 잘 먹는다. 니르더스와 꺼르너는 아직 한국음식에 대해 낯설어한다.

식사를 함께 하니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더라면 훨씬 더 가까워졌을 터인데….  대부분 로찌에서 포터들이 제공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값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이것은 모두 나의 독단적인 생각뿐일까?

▲ 포터들과 친해져서 길거리에서 신나게 벌어진 춤판 ⓒ최정의팔

어퍼 시누아에서 7시 반에 출발하여 로우 시누아에서 사과 한 개씩 사먹고 촘롱을 향하였다. 11시경에 가게에서 찌아를 사먹는 동안 가지만이 노래하고 이어 꺼르너가 노래와 춤을 추게 되었다. 이 때 마야가 불려 나가 춤을 추게 되면서 함께 어울려 춤판을 벌리게 되었다. 대낮 길거리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신명나는 놀이를 하게 되었다. 가게 주인도 신나는 네팔 음악을 틀어준 이 순간만은 가이드, 포터, 등산객, 가게주인 등 구별 없이 한 울타리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촘롱에서 점심을 먹은 후 지누단다로 출발하였다. 도중에 따라가 쓰레기를 정기적으로 줍는 유네스코 자원봉사자 이야기를 했다. 등산로가 깨끗하게 유지되는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이 들면서 필자도 쓰레기를 줍기로 결심했다. 한동안 쓰레기를 주우면서 내려오니 샤히도 줍는다. 이렇게 모은 쓰레기를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올라올 때 울타리보호막을 치던 출렁다리 공사가 다 마무리 되어 사람들이 통과할 수 있다는 소식이 왔다. 이 다리를 건너면 대략 한 시간 정도를 줄일 수 있어서 출렁다리 횡단에 공포를 느끼는 따라가 심각한 고민을 한다. 따라 상황을 알고 있는 일행들은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계곡을 지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 순간에 따라는 시간 절약을 위해 출렁다리를 건너기로 결단을 내렸다. 출렁다리 공사는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지만, 양쪽 보호막이 거의 완성되어 건널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는 샤히 뒤를 잡고 무사히 다리를 건넜으나 억눌렸던 공포심으로 인해 울음을 터트렸다. 필자 자신도 가이드만 뒤따라갔기 때문에 따라를 보호하지 못한 미안함이 많이 생겼다.

▲ 보호망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최정의팔

6시경에 머끼웅 도착하여 지프차를 타고 너야풀에 도착하여 가이드, 포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대기하던 봉고차로 바글릉으로 향하였다. 바글릉 팰리스 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10분, 호텔에서는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느라 불야성이다. 밥을 시켜 가져온 한국 반찬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이야기 나눔을 하고 긴 하루를 마감하였다.

최정의팔  smc@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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