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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시절부터 바다를 꿈꾸었다바다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
박철 | 승인 2018.08.10 21:36

나는 어릴 적 꿈이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닷가에 사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바다를 동경하며 살았다. 강원도 화천 논미리, 첩첩산중 두메에서 여름이면 집 앞 개울에서 가재를 잡아 구워 먹고, 겨울이면 앉은뱅이 썰매를 타면서 놀았다. 요즘 아이들처럼 공부라는 걸 몰랐다. 학교 갔다 오는 일 외에는 시간을 전부 노는 일에 쏟아 부었다. 나는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았다. 동네에 있는 학교를 안 다니고 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고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았다. 일테면 왕따를 당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상상을 많이 했다. 나 혼자 담벼락이나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주로 내 그림의 주제는 소나무와 바다였다. 소나무가 좋았다.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 시골 이발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을 흉내 내고 있었다. 바다 그림에는 돛단배와 갈매기가 등장하였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바다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렸다. 꿈을 꾸어도 꿈속에서 넓은 바다를 보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냈다. 청소년 시절에도 나는 바다를 보지 못했다.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바다를 늘 내 마음에 담아 두고 살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바다에 대한 나의 도발(挑發)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칠 정도였다. ‘올 여름방학에는 기어코 바다를 내 눈으로 보고야 말 것이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유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말이 무전여행이지 덜컥 겁이 났다. 나 혼자의 여행은 어렵다고 판단되어 친구 둘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두 녀석은 순순히 내 의사에 따라주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저마다 자기가 선동한 것이라고 우길 것이다. 돈만 생기면 저축을 했다. 여행에 필요한 도구를 하나 하나 장만했다. 한 학기를 거의 무전여행에 대한 계획을 짜는 일로 소비했다. 세 녀석이 지도를 펴 놓고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여행코스를 정했다.

▲ 무모함으로 시작한 무전여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박철 목사

무전여행 기간은 15박 16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간이 부었었나 보다. 삼각텐트, 배낭, 담요, 코펠, 한 되짜리 소주병에 담은 마늘 짱아지, 고추장, 쌀, 약간의 돈을 준비해서 여행을 감행했다. 그 여행기를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다.

내가 처음으로 본 바다는 낙산사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였다. 마침 낙조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때 유행하던 카펜터즈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장작을 패고 있던 낙산사 동자승이 “경건한 법당에서는 라디오를 끄시오.”라고 해서 라디오 볼륨을 껐다. 

붉게 물든 바다가 얼마나 장엄하였던지 나는 바다에 완전 넋이 나갔다. 덕지덕지 여드름을 달고 청바지를 입고 있던 세 녀석이 바다를 보러 그 먼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낙산사 마당에서 저녁노을로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감동은 함께 동행 했던 죽마고우(竹馬故友) 라승구, 윤용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이제는 곧 환갑을 지나 60 중반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되어 있을 게다.
 
그해 여름, 우리 셋은 보름 동안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지냈다. 동해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루에 밥 한 끼만 먹고 마늘짱아지, 고추장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 새벽이 되면 텐트에서 나와 장엄한 해돋이를 보았고, 저녁이면 막 지는 해를 보았다. 시뻘건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내 몸도 바다에 빨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44년 전의 이야기이다.

해거름, 어쩌다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 바다를 보면 44년 전 낙산사에서 바라보았던 붉은 바다가 생각난다. 서해안 붉은 노을이 실루엣이 되어 반짝인다. 내 가슴 한복판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나는 영락없이 바다의 포로가 된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찬밥 더운밥을 가리지 않는다.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다. 바다는 태고의 원초적 신비를 담고 있는 곳이다. 바다에는 한없는 자유와 평화가 있다. 바다는 숨을 쉰다.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바다는 자연의 순리(順理)를 가장 이상적으로 담보하고 있다. 바다는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삶의 도장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바다의 영성(靈性)에 심취되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는 나를 부른 적이 없지만, 나는 바다를 찾아가고 바다와 함께 살고 있다.

서해 깊은 바다로 
지금 막 바다로 지려던 노을이
단 한 번 숨결을 쏘아
지상을 밝게 물들이는 순간
아아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그분의 노래를 듣는다
아, 이 한가롭고 막막한 세상에
저만치 비상하고 있는
갈매기처럼 자유 할 수는 없는가
가능하다면 조그만 어선이라도 빌려 타고
그렇게 자유의 바다를 향해서
나아갈 수는 없는가
시커먼 갯벌 위에서 몸이라도 뒹굴면
이 뻣뻣한 숨통이
막힌 숨을 토해내고 편해질 수 있는가.
- 박철 詩, “저녁 바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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