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제 67차 NCCK 총회에서 주제 강연한 것이다. 향후 2년간 ‘평화를 위해 있는 힘 다하라’가 NCCK의 기본 방향이 될 것이다. 이홍정 총무께서 관련 성서와 함께 본 주제를 택했고 그 정신에 합당하게 필자가 주제 강연을 준비했다.(필자 주)

주지하듯 조선을 발판삼아 중국 대륙과 아시아 전체를 삼켰던 일제 야욕으로 한국을 비롯한 지역 내 수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세계대전 종료 후 독일이 그랬듯이 일본이 분할통치 되었어야 함에도 미소 양국의 한반도 진입을 계기로 이 땅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민족 상호간 적대한 세월이 70년을 훌쩍 넘었다. 이를 일본이 전략적으로 노렸으니 참으로 억울하고 통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 치하에서 이 땅을 떠나 오늘의 예멘人처럼 객지서 난민 되었고 이/저곳서 옥고를 치뤘으며 제 목숨을 잃은 선혈들 숫자가 그 얼마였던가? 친일부역자들이 반공을 앞세워 독립 운동가들을 내쳐 홀대했던 것이 70년을 넘긴 분단의 역사였다.

이들이 만든 분단체제 하에서 우리는 이념의 노예였고 외세에 종노릇하며 지냈다. 과도한 원심력 탓에 민족 존엄성과 자주성을 훼손시키면서 분단체제에 길들여졌던 까닭이다. 우리들 기독교인들마저 편승하여 복음을 분단 체제 속에 감금시켜 평화의 힘을 땅속에 묻었으니 무슨 더할 말이 있겠는가? 용서와 약속, 그것은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방식이겠다.

그렇기에 슬픈 과거를 용서하여 구원치 못하는 기독교, 그래서 하느님의 미래마저 빼앗는 기독교는 이 곳, 이 시대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1.

더러는 그의 사상을 오해했으나 함석헌의 『뜻(성서)으로 본 한국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나가게 하는 근기(根氣)를 제공한다. 제 2 이사야의 고난을 예수 십자가로 풀어낸 성서기자들을 원용한 그는 우리 ‘민족’을 고난의 담지자로 봤고 민족 고난의 뜻을 물었다. 성서의 한 인물, 예수가 함석헌에 의해 ‘민족’으로 재구성(해석)된 결과였다.

제목에서 ‘성서’가 ‘뜻’으로 바뀐 것도 이런 연유겠다. 이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서의 ‘씨ᄋᆞᆯ’(웹 상에서는 한글 ‘아래 아’ 표기가 되지 않아 이와 같이 표기-편집자 주)에 터한 확대된 예수 이해이다. 여기서의 민족은 민족주의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일본대신 국토가 나뉘었고 제국 패권전쟁(6.25)의 희생 양된 이 땅이 세계평화를 위한 도구라 본 까닭이다. 그래서 그의 민족주의는 ‘我/非我’를 나누는 신채호의 민족사관과 달랐고 일본 천황제하에서 꿈꿨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도 변별되었다. ‘역사는 처음이 있어 마지막이 있지 않고 마지막이 있어 처음이 있다’는 그의 언설은 한 세기에 걸친 이 땅, 우리 민족의 고난을 어찌 승화시킬 것인가를 묻고 있다.

과거를 숭상하는 원초주의자로 머물 것인지, 미국 눈치 보며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그 뜻을 찾아 다른 삶을 찾을 것인지를 결단하란 것이다. 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 한국교회는 종북/좌빨 이데올로기의 진원지이자 지금은 가짜뉴스의 생산지로서 세상의 질타를 받고 있다. 교회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울 만큼 벽 쌓아 안주하며 反민족적, 反평화(통일)적 행위를 일삼는 작금의 교회를 평화의 주, 예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라 여겨 그의 ‘밑둥’을 자르라 하실 것이다.

2.

3.1 독립선언서가 선포 된지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평가하고 미래를 다짐해야 옳다. 과거의 독립운동이 오늘 시점에서 통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통일만이 독립을 온전히 완성시킬 수 있는 탓이다. 많은 이들이 통일대신 평화공존을 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백낙청이 말하듯 통일이 마지막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래 전 함석헌 또한 통일을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마지막 과제라 여겼다. 그것이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길인 탓이다.

동시에 우리들 각자(獨)가 옳게 서는(立)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없이 살’만큼 그렇게 독립, 성숙한 존재가 되어야 하겠다. 평창(平昌)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드리웠고, 분단의 벽을 허무는 성령의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하지만 자본에 먹힌 다수 교회들은 이런 시대 징조를 읽지 못했다. 3修 끝에 성사된 평창 올림픽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 혹은 8년 전에 열렸다면 오늘과 같은 ‘때’를 만날 수 없었고 북쪽이 참여치 않았더라도 결과는 동일했을 듯싶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느님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일체가 협력하여 선(善)을 이룬 것이란 고백을 절로 하게 만들었다. ‘平昌’이란 말뜻도 예사롭지 않았다. 고루 균형 있게(平) 번영하자(昌)는 뜻을 담은 탓이다. 그래서 ‘평창’에서 ‘평양’으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3.

우리는 3.1 선언에 기독교인들 대표가 절반에 이른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여기에 두세 가지 사실(fact)이 첨언되어야 우리 과거를 옳게 평가할 수 있다. 주지하듯 당시 기독교 대표자들은 일본에게 독립을 ‘청원’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 지난 11월15일 연동교회에서 진행된 제67회 NCCK 총회에서 주제강연을 하고 있는 이정배 NCCK신학위원장 ⓒ윤병희

하지만 손병희를 비롯한 동학, 천도교 측에서 이를 ‘선언’(선포)으로 바꿨다. 나라 독립에 있어 청원과 선언은 많이 다를 것이다. 결국 ‘선언서’가 되었으나 질문은 남는다. 왜 우리는 ‘청원’에 머물고자 했을까?

또한 독립을 선언하고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막대한 경비가 필요했다. 3백만 신도를 지닌 천도교에서 기독교계에 당시로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기에 독립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당시 돈 5천원이면 지금 빌딩 몇 채 값이라 하니 천도교의 배포가 놀랍다.

독립선언서 서명을 앞두고 종교인들 사이에서 공명심이 일어났었던 모양이다. 누구 이름을 먼저 쓰고 어느 종교를 앞세울 것인가를 두고 말이다. 서명순서를 죽는 순서로 여기라 했던 남강 이승훈의 기개가 큰 역할을 했다. 손병희가 남강의 의견을 거들어 서명 순서가 결정되었다. 이승훈이 제일 먼저 죽고자 나선 것이다.

일본과의 짬짬이(카츠라-태프트 밀약)와 그들 신앙의 보수성 탓에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인 목사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정치적인 일에 관여치 말것과, 타종교 인들과 함께 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가르침과 맞서야 선언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처럼 100년 전 이 땅의 기독교는 소극적인면도 많았으나 때론 벽을 허무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고 이웃 종교의 도움 하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대의 통일 운동을 당대의 독립운동과 견줄 시, 작금의 우리 역시 교리적 벽을 더 많이 허물어야겠고 더 큰 용기를 내야겠으며 이웃종교와 민족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100년 전 천도교의 역할이 우리들 기독교의 몫이 되어야 하겠다.

4.

다행히도 우리들 신앙과 신학의 선배들이 ‘88선언’을 통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틈새 이상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던 군사정권 시절, 이들은 국가폭력에 맞섰고 반공과 신앙을 일치시킨 교리(회)적 횡포와 싸우면서 통일의 길을 열었다. 북쪽을 악의 축(軸)으로 여겨 북한 붕괴론을 회자시킨 정부와 이를 이념(신앙)으로 뒷받침했던 기독교의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독립’ 청원에 그쳤던 민족대표들 이상의 역할을 NCCK 소속 신앙 선배들이 감내해 낸 것이다. 당시로선 어느 종교도 민족의 하나 됨, 원심력보다 구심력의 중요성을 이렇듯 용기 있게 선포할 수 없었다. 이에 힘을 얻은 문민정부가 ‘88선언’을 기초로 대북 관계의 물꼬를 틀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이다.

위 선언서는 기독교의 존재이유가 한반도의 통일, 곧 생명과 평화에 있음을 새삼 각인시켰다. 분단이야 말로 이 땅을 좀먹고 망치는 구조적 요인의 핵심인 것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에 3천명 가까운 신학자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신학 내 분야가 여럿이긴 하나 단일 학문으로선 최대 숫자일 것이다. 이들에게서 ‘88선언’ 선배 신학자들을 잇는 역할을 기대한다. 하지만 거짓 뉴스를 생산해온 기존 목회자들, 대형 교회에 대해 반란(?)을 각오할 때 가능한 일이겠다. 옛적 서기관들이 제사장 집단에 항거하여 묵시문학의 장르를 개척해 냈듯이 말이다.

5.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으나 수구, 적폐세력의 반발이 아직도 극심하다. 교회가 이 부류에 속하고 있으니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무신론과 등치시키고 이를 자신의 기독교와 상극으로 여기는 다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서 이 땅 미래를 맡길 수도, 기대할 것도 없다.

일제 36년을 포함한 지난 100여년의 근대사를 옳게 공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이들에게 성서는 개인구원의 보고(寶庫)로서 세상에서 복 받고 천국 가는 길을 안내하는 책자일 뿐이다. 하지만 얼마 전 이 땅을 밟은 세계적 신학자 존 캅은 이를 일컬어 ‘영적 파산’이라 했고 그 말로 자기 책명을 삼았다. 사회적 영성을 잃은 기독교를 그가 그리 명명한 것이다. 惡의 근간이 되는 분단(체제)야말로 사회적 영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신학적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 교회가 이런 성찰을 결(缺)하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는 결코 그들의 것이 될 수 없다. 3.1 선언, 그 정신으로 임정(臨政)을 세웠고 거기서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신봉자들이 공존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제치하 36년간 기독교인들,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사회주의자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 희생되었다. 기독교와 민족주의자들이 합세하여 우익정권을 만든 탓에 이들 사회주의 공헌이 우리 역사에서 제외된 것이 안타깝다.

건국절 논쟁이 종료되지 않았으나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말할 경우 의당 사회주의적 요소를 인정해야 옳다. 상해 임정에 이동휘를 중심한 사회주의자들 역시 참여했기에 그러하다. 그렇기에 목하 기독교는 민족주의만큼이나 사회주의와도 친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그 자체가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사회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자본주의의 건강성, 체질개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북쪽에 대한 이해, 그와의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우리들 자산인 까닭이다.

6.

이렇듯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은 북쪽을 이해, 배려하는 차원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선(線)을 넘어 생각하다』의 저자 박한식의 말처럼 우리는 그동안 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지했다. 그간 남쪽 정권들의 호불호에 따라 북한은 자의적으로 해석된 상상과 허구의 공간이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완상 역시 북을 악의 軸이라 말해왔으나 정작 악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 연극 집단(Creative Vaqi)은 개성공단내서 남북한 사람들 간의 상호 알아가는 과정을 주제삼아 공연을 시작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공간인 것을 말할 목적에서겠다.

내게는 탈북자 학생을 석사과정에서 지도한 경험이 있다. 궁핍 탓에 탈북했으나 정작 자본주의 사회인 이곳이 아니라 인심 좋은 북을 그리며 이곳 삶을 버티며 살고 있다 하였다. 허나 그의 말처럼 북이 남보다 좋을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우리 잣대를 그곳에 들이대는 것을 삼가야 하겠다. 불가역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과 종전선언 및 체제보장 카드가 언젠가는 맞교환될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이 과정서 미국의 술수가 한없이 염려된다. 북쪽의 입지를 축소시켜 자신들 경제적 이익을 맘껏 얻겠다는 장사꾼 정신을 발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 간 평화 프로세스에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속셈의 표현이겠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남북 하나 됨을 끝까지 방해 할 작정인 일본, 북한을 홍콩처럼 일정기간 자신들 경제속국으로 삼으려는 중국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이 요구된다. 이런 정황에서 금번 예산 국회에서 보듯 이념공세로 대북정책을 발목잡고 있는 한국당의 존재가 크게 부담스럽다. 원심력이 작동하는 외교현실에서 남/남 갈등은 구심력을 해쳐 남/북 평화 체제를 불가능하게 만들 개연성이 크다.

이 문제를 누가 풀어 낼 것인가? 이 땅 기독교, 수많은 교회, 목사, 평신도들이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NCCK 가맹 교단만이라도 독립을 위해 나섰던 민족대표들 심정으로 통일, 아니 평화체제의 문제에 헌신해야 마땅하다. 하느님이 이 민족에게 주신 마지막 시험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치적 사안에 몸담지 말고 타종교와 상종치 말라 했던 선교사들을 배반했던 옛적 선배 목사들처럼 우리도 벽을 허물고 선(線)을 넘을 각오를 다시 해야 하겠다.

7.

이런 이유로 NCCK는 2019년에서 2020년까지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다음 세 성서본문을 교계에 내놓았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을 하느님 앞에 약속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시편 34편 17절의 말씀이 향후 2년간 우리들 주제가 되었다.

시편은 우리에게 평화를 위해 못된 일을 말고 착한 일 할 것을 주문했다. 남/북, 북/미간 대화를 통해 평화의 물꼬가 터져 핵무기를 버리고 백성들 굶주린 배를 불리려는 현실에서 못된 일과 착한 일의 구별이 명백하다. 먼저 버려야 할 못된 일은 거듭 옛 사고에 젖어 의심하고 담을 쌓으며 제 역할 대신 남 탓만을 일삼는 일이겠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평화의 길에 장애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모두 자기 민족보다 외세를 앞세워 자유보다는 노예성에 길들여진 관행이자 퇴행적 모습이다. 과거를 용서치 않기에 약속의 미래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불쌍한 삶을 지속하는 일이다. 스스로 설(獨立) 의지를 배워 키우지 못한 불행한 삶을 적시한다.

이에 반해 착한 일은 시대감각을 읽고 평화의 길을 가려는 노력 일체를 뜻한다. 신부 이반 일리치가 말하듯 그것은 움켜진 손을 펼치는 것이며 더 큰일을 위해 평소 자기 신념, 가치관을 내려놓는 일이다. 자신이 쌓은 벽을 스스로 허물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서 선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펼쳐 질 것이다.

이런 신비를 위해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인간되어 인간마음을 살피려는 성육신의 신비, 그것은 인간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을 요구하며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성령의 역할로서 지금 작동한다. 남의 경우 북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 할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그러하겠다. 역지사지의 삶만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구원의 길이자 성령에 따른 삶인 것을 다시 기억하자. 곧 다가올 성탄의 절기에 이 땅 교회들이 역지사지의 복음을 선포하며 스스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8.

두 번째 본문은 요한 일서의 사랑을 주제로 했다. 사랑해야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 성서는 적시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속에는 사랑은 없고 증오와 혐오 그리고 욕망만이 가득 차 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도 좋을 것으로 가득 찬 공간, 그것이 이 땅 교회의 현존 모습이다. 그러하니 세상이 교회를 비웃고 예수조차 조롱한다.

문재인 정권이 남북대화를 재개했으니 망정이지 실상 이곳 남쪽 사람내면에는 통일 불감증이 지배했었다. 당장의 삶이 고통스런 탓에 우리들 미래인 청년들조차 그러했기에 70년 분단이 5천년 역사를 삼킬 수도 있었다. 통일대박론 역시 남쪽 유익만 구한 탓에 북에 대한 옳은 태도가 아니었다. 무관심, 이기심 그리고 혐오와 적대, 날조가 지금껏 북을 향한 일관된 남쪽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올 해 끝자락에 상상도 못할 일, 김정은 위원장의 남쪽 방문이 성사될 수도 있다. 일사 분란한 북과 달리 남남 갈등이 심각한 남쪽 분위기를 알면서도 이곳을 향하려는 북의 입장을 어느 때보다 헤아릴 필요가 있다. 요한서가 말하는 사랑은 이제 동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것도 감수하겠다는 바울의 심정으로 나타날 일이다.

북을 신자유주의 시장 체제로 만들거나 일방적 선교 대상으로 삼는 일은 결코 요한서가 말하는 사랑일 수 없다. 한 민족이었으나 상호 다른 두 체제로 만났기에 상호 공존, 동화를 위한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학습하는 만큼 자본주의 역시 사회주의를 배워 자신을 변화시킬 여력을 갖출 일이다. 이런 과정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것이 사랑이자, 진정한 평화체제로의 길이다. 상호 변화를 통해 더 나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남북 대화의 목적이자 세계질서를 평화로 재편하는 길이 될 것이다.

9.

마지막 성서말씀으로 고린도 전서 9장의 말씀을 택했다. 익히 알듯이 최근 바울 신학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신학은 물론 철학 영역에서도 이 본문을 근거로 사도바울을 이 시대의 사상가로 소환하고 있으니 한국 교회가 깊이 관심했으면 좋겠다. 오늘 본문을 부활체험의 실상이라 여겼고 인류 미래가 이 말씀 실현여부에 달렸다고 했기에 말이다.

본래 바울은 모든 것을 다가진 사람이었다. 유대인의 율법, 헬라인의 지혜 그리고 로마 시민권까지를 말이다. 이것이 다메섹 체험 이전까지의 바울의 현존하는 모습이었다. 한 마디로 세상의 좋은 것 모두를 다가진 최상의 기득권자였다. 종교적, 사상적 그리고 정치적 힘을 지닌 제국적인 삶의 표본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 체험 이후 이 모든 것을 단숨에 버렸다. 율법, 지혜, 그리고 정치적 권리를 스스로 벗겨낸 것이다. 하느님 의(義)만이 세상을 달리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앞선 기득권을 주저 없이 내려놓았다. 현실 삶에서 그것들이 없는 사람처럼(As if not...)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모두를 위해 모두가 되어 살기로 작정하였다. 때론 노예가 되었고, 가난했으며, 다시 자유인이 되었고 유대인, 로마인처럼 살기도 했으며 지혜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삶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할 목적에서였다. 이전에는 자기를 위한 기득권이었으나 지금은 그들과 하늘의 축복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울이 확신한 하느님 義였고 그리스도 안의 존재(En Christo)였기에 세상이 바울을 동시대인으로 소환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지속할 평화운동도 여기에 기초할 일이다. 남남갈등은 물로 남북화해를 위해서도 교회가 지닐 에토스(Ethos)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서 말한 易地思之의 신비가 ‘그리스도안의 존재’의 삶과 정확히 중첩되니 놀랍다.

바울은 우리에게 철저하게 다른 사람의 경지에 설 것을 요구한다. 南에 있으나 北의 사람 되기를, 이 땅에 있으나 난민의 자리에 서 볼 것을, 부유하나 가난한 청년의 삶의 자리로 내려 올 것을, 기독교인이나 이웃 종교의 시각을 가질 것을, 남자이나 여자의 눈으로 세상 바라 볼 것을 그리고 소수자의 마음을 갖고 살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자 하느님의 지복(至福)이 나눠지는 방식이다.

이 땅 기독교인들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북쪽의 입장에서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시각으로 북을 보는 것은 다메섹 이전의 바울처럼 기득권 유지 차원에 머물고 말 것이다. 부유한 자들의 시각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자리에 서는 것도 우리들 몫이 되었다. 우리에게 北은 이익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주체인 탓이다. 이런 생각이 남북 평화체제, 즉 하늘 지복을 누리는 방식인 것을 믿고 교회들의 환골탈퇴를 기도하며 기대한다.

10.

글을 마무리 할 시점에 이르렀다. 향후 2년간 NCCK가 오늘의 주제처럼 있는 힘을 다해 평화, 곧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앞장서기를 바란다. 국내 어느 단체들  보다도 앞선 생각으로, 동시에 가장 큰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할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3.1 선언 100주년 되는 2019년이 지척에 있다. 독립을 위해 죽을 각오로 민족대표가 되었던 당시 신앙의 선배들처럼, 통일을 위해 누가 죽을 길을 마다하지 않겠는지 묻고 또 물을 일이다. 정권은 물론 국내 은행들에게조차 압력을 행사(세컨더리  보이콧)하여 북측과의 연대를 막는 미국과도 맞서야 한다. 분단체제에 기승하는 보수 정치인들, 그들을 이해하되 압박하여 퇴치하는 것도 우리들 할 일이다. 통일에 무관심하며 사익만을 좆고 있는 사람들, 무엇보다 北을 적으로 학습한 남쪽의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기운을 전하는 막중한 사명도 우리에게 있다. 혹시라도 우리들 스스로 통일운동을 자기 과시를 위한 업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악한 일이 될 것이다. 특정 종교, 특정 교단, 특정인이 이를 결코 독점할 수도, 해서도 아니 될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들이 쌓아 온 적폐를 스스로 되돌아 봐야겠다. 아프기에 눈감고자 하나 그간 축적된 우리들 속 적폐도 예사롭지 않을 만큼 크고 많다. 이를 청산해야 하늘이 우리에게 큰 과제를 맡길 것이다.

예상 되듯 향후 통일논의가 봇물 터지듯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뭇 시민, 종교단체, 기관들과 협력하되 앞선 세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의 시각을 잘 담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NCCK가 통일의 주역되기를 하늘에 기도하며 졸고를 마감한다.

이정배(NCCK 신학위원장, 顯藏아카데미 원장)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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