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누구였을까백부장의 πίστις: Q복음서의 가버나움 백부장에 관한 연구 (2)
김재현 | 승인 2018.12.01 20:22

우리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백부장 고넬료의 이름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Q, 마태, 누가에 등장하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단지 가버나움에서 예수가 만난 백부장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다.

사실 Q복음서는 예수의 동시대인들에 대해서 이름을 알리기를 꺼리는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제외하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제자 그룹이나 헤롯이나 빌라도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조차도 언급되지 않는다. 부수적인 등장인물에 해당하는 백부장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다. 마가복음서가 백부장을 가리킬 때 라틴어적인 표현인 κεντυρίων(백부장)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Q복음서는 ἑκατόνταρχος(백부장)를 사용한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누구였을까

가버나움의 백부장에 관해서는 그의 인종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다만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을 통해 그의 인종을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백부장의 인종을 탐색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그가 유대인인지의 여부이다. 그는 유대인인가? 아니면 이방인인가? 그리고 만약 그가 이방인이라면 그가 로마인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백부장을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말리나와 로어바우프(Malina  and Rohrbaugh)는 백부장이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1) 그런데 그들의 증거 제시는 단 하나의 비문에 근거하기 때문에 백부장이 유대인이었다는 증거로는 충분하지 않다.(2)

캐취폴(D. Catchpole)은 백부장의 인종에 관해서 “백부장은 인종적으로는 중성이다(the centurion is ethically neutral)”라고 주장한다. 즉 이 문제에 대한 자동적인 결론에 대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백부장이 로마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유대인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가버나움의 회당 ⓒGetty Image

마샬(I. H. Marshall)은 백부장이 유대인은 아니지만 로마인이라는 암시도 없다고 판단한다.(3) 마샬이 이렇게 판단하는 주요 근거는 AD 44년 이전에 갈릴리에는 로마군이 없었다는 셔윈-화이트(Sherwin-White)의 연구를 따르기 때문이다. 마샬은 백부장을 헤롯 안티파스에게 소속된 군인으로 본다.

쉬어만(H. Schürmann)은 백부장이 안티파스 부대의 시리아인이라는 구체적인 추측을 했다.(4) 슈바이처(E. Schweizer)도 백부장이 시리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5) 사실상 그가 시리아인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가장 개연성 높은 것은 그가 헤롯 안티파스 부대 소속의 이방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백부장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Q7:9의 “이스라엘 중에서는 ...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예수의 말에서 확인된다. 즉, 그는 적어도 유대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버나움의 백부장, 유대인들에게 불편한 존재

백부장이 로마인이든 시리아인이든 헤롯 안티파스의 부대에 속한 인물이든 아니든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가 유대인에게는 상당히 불쾌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는 제국의 중요한 요원(agent)으로서 억압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이 자신의 식민지에 대한 개입과 억압, 반란의 예방을 위해서 가지기 원하는 두 가지 중요한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사법권과 경찰권이다.(6) 백부장은 제국주의의 군사-경찰 권력에 속한다.

게다가 Q복음서에는 누가복음서처럼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주는 친유대적인 백부장의 이미지가 없다. 사실 누가복음서에 붙은 여러 가지 부연설명은 오히려 제국의 군사 권력인 백부장의 부탁을 들어준 예수의 치유 행위가 얼마나 걸림돌이 되는가를 오히려 역으로 보여 준다.

게다가 백부장은 자신이 로마의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헤롯 안티파스에게까지 이르는 명령의 사슬에 속해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는 “나는 권세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ἐγὼ ἄνθρωπός εἰμι ὑπὸ ἐξουσίαν)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백부장은 자신이 군사를 부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말로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진술한다. 이와 같은 진술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부정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암시를 가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견 백부장은 상당히 간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가 가서 고쳐주어야 하느냐?”는 예수의 거친 말에도(7) κύριε(주님 혹은 선생)라고 말하면서 예수가 자신의 집 지붕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예수에 대해서 겸손한 입장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미주

(미주 1) Bruce J. Malina and Richard L. Rohrbaugh,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Synoptic Gospel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252.
(미주 2) 전병희, “마태의 백부장상과 이중대결 전략,” 114.
(미주 3) 하워드 마샬/ 강요섭 옮김, 『루가복음 Ⅰ』(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368.
(미주 4) Heinz Schürmann, Das Lukasevangelium, 1: Kommentar zu Kap. 1,1-9,50 (Freiburg: Herder, 1969), 391. Schürmann은 Q3:9을 근거로 이 백부장이 이방인이라고 결론내린다. “분명 그는 이방인이다”(Deutlich[vgl. VV 3,9] ist er ein Heide).
(미주 5) 에두아르드 슈바이처/ 번역실 옮김, 『마태오복음』(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224.
(미주 6)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윤수종 옮김, 『제국』(서울: 이학사, 2000), 133. 네그리와 하트는 “우리는 치안활동에 의하여 그리고 경찰이 질서를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하여 제국적 권리의 최초의 암묵적인 근원을 인식할 수 있다. 제국적 질서의 정당성은 경찰력(police power)의 행사를 지지하고 동시에 전 지구적 경찰의 활동은 제국적 질서화의 실제적인 효과를 증명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주 7) 이 부분 역시 번역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다. 백부장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거리낌의 말로 이해하는 것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Robert A. J. Gagnon, “The Shape of Matthew's Q Text of the Centurion at Capernaum: Did It Mention Delegations?,” New Testament Studies, 40/1 (1994): 136, n. 15.

김재현  verticalkjh@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8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