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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복음서, 노동자를 대변하다Q복음서의 노동자 (1)
김재현 교수(계명대) | 승인 2019.05.03 18:03

얼핏 보기에 Q복음서는 노동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노동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견유학파적 관점에서 Q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면 이런 이미지는 더 강화된다.

Q복음서는 노동에 대해 적대적인가

까마귀와 백합의 예를 들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Q12:22b-31)을 들어보면 치열한 노동현장과 멀리 떨어진 가르침이 Q복음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Q복음서에는 노동의 담론이 존재한다. 그 노동의 담론에서 Q복음서를 이해할 때 Q복음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사실상 Q복음서 연구에서 노동 담론은 큰 관심을 얻지 못한 주제였다. Q 사람들(Q People) 가운데 노동자가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도 본격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민중신학 전통에서 수행된 Q 연구는 Q 공동체 내부에 있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Die sozial Diskriminerten)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지만 노동의 담론을 본격적으로 추적하지는 않았다.(1)

따라서 필자는 아래의 글을 통해 Q복음서의 노동 담론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Q복음서의 노동자들의 삶을 고찰함에 있어서 Q10:2,7b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이 두 말씀은 전통적으로 ‘선교파송담화’(Missionsrede, Q10:2-12)의 단락으로 편집되어 편집자의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

▲ Vincent van Gogh(1853–1890), “Harvest in Provence”(1888), Oil on canvas. ⓒWikimediaCommons

따라서 필자는 먼저 Q10:2, 7b가 선교파송담화의 맥락과 분리되는 독자적인 로기온이라는 사실을 주석할 것이다. 그 다음 Q10:2, 7b를 사회사적인 연구에 의거하여 고찰할 것이다. 또한 그 이후에 주기도문에 속해 있는 Q11:3과 종말론 담화에 속해 있는 Q17:34-35에 대해서 주석적 사회사적으로 고찰한 후 Q복음서의 노동 담론을 전체적으로 묘사해 보려고 한다.

선교에서 노동으로: Q10:2,7에 대한 석의적 접근

필자가 노동 담론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Q10:2와 Q10:7b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λεγε[()][]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ὁ μὲν θερισμὸς πολύς, οἱ δὲ ἐργάται ὀλίγοι․ δεήθητε οὖν τοῦ κυρίου τοῦ θερισμοῦ ὅπως ἐκβάλῃ ἐργάτας εἰς τὸν θερισμὸν αὐτου. (Q10:2)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추수할 것은 많은데 노동자들이 적다. 그러니 추수의 주인에게 그의 추수를 위해 노동자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Q10:2)

ἄξιος γὰρ ὁ ἐργάτης τ[οῦ μισθοῦ] αὐτοῦ.(Q10:7b)
왜냐하면 노동자는 그의 품삯을 받을만하기 때문이다(Q10:7b)

위의 두 구절은 흔히 선교파송담화(Q10:2-12)라고 부르는 단락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두 말씀은 선교적인 맥락에서 해석되었다. 학자들은 이 구절에 대해서 ‘이방인 선교를 의미하는가? 혹은 유대인 선교만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논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구절들이 모두 ‘선교’를 전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했다.(2) 맨슨(T. W. Manson)(3)과 뤼어만(D. Lührmann)은 Q복음서가 이방인 선교에 열려 있었다고 판단한다. 반면 호프만(Paul Hoffmann)과 슐츠(S. Schulz)는 Q복음서에 선교는 존재했지만 이방인 선교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Q복음서의 선교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한다.

학자들은 Q10:2의 ‘추수’에 대해서도 각기 다르게 이해한다. 뤼어만은 Q10:2의 ‘추수’가 이방인에 대한 심판을 암시하기 때문에 이방인 선교의 증거가 된다고 판단했다.(4) 호프만 역시 추수의 상이 Q에 있었다고 본다.(5)

그리고 “Q에서 선교는 추수의 시간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로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또한 Q-공동체는 메신저 사역의 수행을 종말론적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한다.(6) 호프만은 추수의 노동(εργαζειν)을 Q13:34의 모으다(συναγειν)와 연관지어 이해하면서 노동의 언어를 선교의 언어로 이해한다.(7)

하지만 호프만은 선교의 공간이 이방인에게로 확대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8) 슐츠는 Q10:2-12가 가장 오래된 Q 전승층에 속하지 않고 헬리니즘 유대 기독교에 속한다고 판단한다.(9) 그는 Q복음서의 선교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이방인 선교와는 무관함을 강조한다. “이런 사상은 Q에는 완전히 낯설다.”(10) 그는 Q의 선교 말씀은 신명기적 역사관의 표상 영역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석한다.(11)

본래 자리는 노동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Q 연구가들은 ‘추수’의 노동을 ‘선교’의 맥락에서만 해석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해석에 두 가지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첫째, ‘선교’라는 개념 자체가 성찰과 반성을 필요로 한다.

최근의 탈식민주의적인(post-colonial) 관점을 가진 학자들은 “선교파송담화”나 “방랑하는 선교사”(wandering missionary)와 같은 용어는 근대의 제국주의 선교와 연관되어 상당히 의혹의 시선을 가지고 바라본다. 보그(L. Vaage)는 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선교 강화”(mission instruction)라는 용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12) 그에 따르면 이런 식의 용어 사용은 “근대 식민지적 신학적 상상력을 그리스도교 기원과 고대의 사회적 실제”에 투영시킨 것이다. 선교 개념은 탈식민주의적 성서해석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주제 중 하나이다.(13)

둘째, 추수의 노동은 선교 말씀군에 편집되기 이전의 독자적인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노동의 삶의 자리이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Q10:2,7을 Q10:2-12의 편집군으로부터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제이콥슨(A. D. Jacobson)은 Q10:2과 Q10:7은 나머지 말씀군과 상이한 삶의 자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Q10:2이 선교파송담화의 적절한 서론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원래 Q10:3-12의 서론은 Q10:3이었다고 한다. Q10:2은 차후에 덧붙여진 말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14)

클로펜보그(J. S. Kloppenborg)도 Q10:2과 Q10:7b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추수’를 반드시 이방인에 대한 심판과 모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Q10:7b는 더 이상 순회하는 선교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절이다.(15) 캐취폴(D. Catchpole)도 Q10:2이 후대에 덧붙여진 구절임을 강조하면서 특히 Q10:2과 Q10:7에 동일하게 노동자가 등장한 것에 주목한다.(16)

더욱이 주목해야 할 것은 Q10:2과 Q10:7b에 대한 평행구절들이 선교파송담화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독립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Q10:2은 도마복음 73번 로기온(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수확은 많으나 일꾼들은 적다. 주님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17)과 평행을 이룬다.

또한 Q10:7b는 고전9:14 및 딤전5:17-18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평행은 Q10:2과 Q10:7이 선교파송과 분리된 독자적인 전승이라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그러므로 Q10:2과 Q10:7b는 선교라는 편집의 틀에서 벗어나 노동이라는 전승의 자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미주

(미주 1) Myung-Soo Kim, Die Trägergruppe von Q Sozialgeschichtliche Forschung zur Q-Überlieferung in den synoptischen Evangelien (Hamburg: Verlag an der Lottbek, 1990), 363-364; 김명수, 『초대기독교의 민중생명신학 담론』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2), 174-176.
(미주 2) Christoper M. Tuckett, Q and th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Edinburgh: T&T Clark, 1996), 393-394.
(미주 3) Thomas W. Mason, The Sayings of Jesus: As Recorded in the Gospels according to St. Matthew and St. Luke arranged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London: SCM Press LTD, 1971), 20.
(미주 4) Dieter Lührmann, Die Redaktion der Logienquell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69), 60.
(미주 5) Paul Hoffmann, Studien zur Theologie der Logienquelle (Münster: Aschendorff, 1972), 289.
(미주 6) Ibid., 290.
(미주 7) Ibid., 290-291.
(미주 8) Ibid., 292.
(미주 9) Siegfried Schulz, Q: Die Spruchquelle der Evangelisten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72), 409.
(미주 10) Ibid., 412.
(미주 11) Ibid., 411-412.
(미주 12) Leif Vaage, Galilean Upstarts: Jesus' First Followers According to Q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4), 18.
(미주 13) R. S. Sugirtharajah, “탈식민주의적 성서비평의 구도,” 『신학사상』 95 (1996): 69.
(미주 14) Arland D. Jacobson, The First Gospel: An Introduction to Q (Sonoma CA: Polebridge Press, 1992), 147-148. 제이콥슨은 Q10:3과 Q10:16이 inclusio를 이루기 때문에 Q10:2은 더욱 첨가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미주 15) John S. Kloppenborg, The Formation of Q: Trajectories in Ancient Wisdom Collectio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200.
(미주 16) David Catchpole, “The Mission Charge in Q,” Semeia 55: 147-174.
(미주 17) 유병우, “도마복음(Nag Hammadi Codex Ⅱ, 2),” 『교수논문집』 5 (2001): 84.

김재현 교수(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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