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포기할 이유”

14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15 그러나 예수께서 이 일을 아시고서, 거기에서 떠나셨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6 그리고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17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8 “보아라. 내가 뽑은 나의 종, 내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자,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것이니, 그는 이방 사람들에게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21.이방 사람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 것이다.”(마태복음 12:15~21/새번역성경)

예수님께서 사랑과 공의의 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안식일에도 치유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을 바르게 전해주려 하셨을 뿐인데, 결과는 죽이려는 모의입니다. 너무나 허탈하고 낙심 될 만한 일입니다. 심란하기 쉬웠을 그 때에 무리들이 몰려듭니다. 문맥 그대로라면 역시 안식일입니다. 한 사람을 고쳐준 것만으로도 죽이려고들 작당하는데, 그렇게 많은 무리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모두를 고쳐 주십니다. “모두” 다 고쳤다는 능력의 크기보다 중요한 측면입니다. 살해 위협 앞에서도 한 명도 다음날로 미루지 않고 안식일에 다 고쳐주신 사랑이 더 놀랍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약하디 약한 존재들을 그 무엇보다 앞서 사랑하십니다.

▲ Zenos Frudakis, “Break Through from Your Mold”

한 수도자가 강물 속에서 목욕을 하다가 물에 빠진 전갈을 발견합니다. 그대로 두면 빠져 죽을 전갈에게 연민을 느낀 수도자가 손으로 건집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전갈이 꼬리의 독침으로 쐈습니다. 극심한 통증에 놀란 수도자는 전갈을 다시 물에 빠뜨렸습니다. 가라앉는 전갈에게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수도자는 다시 손으로 건져 올립니다. 이번에도 땅에 오르기 전에 전갈은 독침을 쐈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또 물에 빠뜨렸습니다. 강뚝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말립니다. “그만 두세요. 전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자비를 베풀어도 소용이 없어요.” 하지만 수도자는 또다시 전갈에게 쏘이는 통증을 겪으며 결국 땅에 놓아줬습니다.

“전갈이 계속 독침을 쏘아댈 것이 뻔한데 왜 끝까지 구해준 거죠?” 수도자가 대답합니다. “계속 독침을 쏠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전갈의 본성이니까요.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성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것이 전갈의 본성이라면,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수도자의 본성입니다. 전갈은 공격적인 본성에 충실했고 나는 수행자의 본성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갈이 자기 본성에 충실한데 제가 수도자의 본성을 포기할 이유가 무엇입니까.”(류시화 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170~172의 우화를 축약)

하나님 택하신 사랑하는 자,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부어주신 영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공의를 선포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움과 욕망의 독침을 쏘아대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정죄와 분노에 붙들린 것, 그것이 주님께서 사랑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포기할 만한 어떤 이유도 사랑에게는 없습니다. 다투지도 외치지도 않으십니다. 조용히 사랑을 행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 희망을 겁니다. 상대가 독침을 쏠 때, 세상은 맞서거나 피합니다. 더 강한 독침으로 제압하거나 피합니다. 최고의 힘으로 제압한다 해도 폭력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 강자가 지배하는 힘의 세계만 견고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꼬리를 무는 폭력 앞에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아가십니다. 힘이 지배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는 사랑의 길을 지켜내십니다.

더 잘, 더 많이 사랑하려고 계획하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지치고 허무해진 자신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일에 너무 몰입하다가 본래의 목적을 잊은 탓입니다. 분주한 일에 마음을 빼앗겨 사랑하려는 뜻을 잊어버리면, 선한 성취조차 허무해집니다. 사랑하는 일도 이런데, 힘으로 제압하고 지배하려는 일은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전갈도 있고, 하나님 주신 사랑도 있습니다. 어느 쪽에 깨어서 어느 쪽을 지키느냐가 관건입니다. 무엇을 행하느냐 그 이상으로, 어떤 뜻을 담아 행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주님처럼 하나님 주신 영으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때, 우리의 신앙도 희망을 보여줄 것입니다. 몸으로 말하는 사랑을 어떤 이유로도 포기하지 않을 때, 그제야 세상이 신앙에게 희망을 걸 것입니다. 세상의 근심꺼리인 교회가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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