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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사 43:8-13; 행 10:34-43; 요 20:19-31)부활절 셋째주일(4월26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4.24 17:14

1. 건강한 교회 교인의 특징

교회가 건강해야 교인이 건강합니다. 또한 건강한 교인들이 있어야 교회도 건강해집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교인은 어떤 교회와 교인일까요? 그랜드 케이만 제일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타비티 얀야빌리 목사는 『건강한 교회 교인의 10가지 특징』 (부흥과개혁사, 20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특징 1. 건강한 교회 교인은 ‘강해식으로 듣는 자’다.
특징 2. 건강한 교회 교인은 성경 신학자다.
특징 3. 건강한 교회 교인은 복음에 흠뻑 젖어 있다.
특징 4. 건강한 교회 교인은 참된 회심자다.
특징 5. 건강한 교회 교인은 성경적인 복음 전도자다.
특징 6. 건강한 교회 교인은 헌신된 성도다.
특징 7. 건강한 교회 교인은 훈련을 추구한다.
특징 8. 건강한 교회 교인은 성장하는 제자다.
특징 9. 건강한 교회 교인은 겸손히 따르는 자다.
특징 10. 건강한 교회 교인은 기도하는 용사다.”

다른 말은 다 이해가 되는데, 설교를 ‘강해식으로 듣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한국의 대부분의 목사들(특히 부흥강사들)의 설교는 귀납적 설교방식입니다. 귀납적이라는 말은 ‘하나하나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종합하여 그것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추론하는 논리 방식’입니다. 따라서 귀납적 설교를 하는 이들의 설교 구성은 특정 결론을 주입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들을 나열한 후, ‘이와 같이 우리도 ~해야 한다.’혹은 ‘이와 같이 우리도 ~하면 ~하게 될 것이다.’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몇 가지 사례들은 거의 예화 위주이거나 자기 경험담입니다.

그러나 강해식 설교는 성경 말씀을 순서대로 읽어가며 본문 말씀의 뜻을 새기는 설교입니다. 삼위일체교회력 세 본문 말씀도 절기별로 말씀 전체가 연결이 되어 있어 순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강해식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설교를 강해식으로 듣는다는 것은 말씀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음성과 메시지를 읽어 나갈 때, 성경 전체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이 성경 신학자가 되고, 복음에 흠뻑 젖게 되며, 참된 회심자가 되어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고 공부함으로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우리 성도들이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코로나-19 이후 재편되는 세상에서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 세 가지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마지막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과 이해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과학과 이성이 그릇된 미신과 우상을 깨뜨려 버릴 것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 사이비들은 이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에도 기초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광훈씨 같은 이들도 복음이 아니라, 극우 이데올로기로 장사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이들이 설자리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동체는 인간 공동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 자연 환경, 동식물들, 지구촌 생태계까지 확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세 번째 문명에 대한 성찰은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 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 대한 성찰이 될 것입니다. 김호기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대기층이 깨끗해진 모습

그렇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극작가 버나드 쇼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감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왔습니다. 이제 경험에서 배우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코로나-19 위기 이후에 세상이, 교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올바른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때 교회도 제대로 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증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약 본문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와 10제자를 부르시고, 성령과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시면서,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에게 설교하면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되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의 증인으로 거듭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 너희는 나의 증인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볼까요? 구약 본문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선민의 구속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과 구원의 계획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불순종했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그 사랑은 마지막 날의 심판 때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하고도(사 43:1-6) 깨닫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날 열방과 민족들을 모아 놓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으로 볼까요?

“민족들이 벌써 다 모였고, 부족들이 부름 받고 모여왔다. 그들 가운데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려준 자가 있었느냐? 이런 일들을 앞질러 일러준 자가 있었느냐? 증인이라도 있거든, 내세워 증거를 제시하게 하여라. 무리가 듣고 수긍할 만한 증인이 있거든 말하게 하여라.”(사 43:9)

무슨 말인가요? 재판정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 심판의 재판정 한쪽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다른 한쪽에는 민족들과 부족들(과 그들의 신까지!)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은 이스라엘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들과 민족들(과 그들의 신까지)에게 증인을 세워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만 있습니다. 상대 쪽 민족과 부족들, 그리고 그들의 신들조차 아무런 반론이 없습니다.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할 수도, 또 자신들의 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으로 볼까요?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야훼의 말이다. 너를 뽑아 내 종으로 세운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알고 믿게 하려는 것이요,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다. 손으로 빚은 신이 나보다 앞서 있을 수 없고 후에도 있을 수 없다. 나, 내가 곧 야훼이다. 나 아닌 다른 구세주는 없다.”(사 43:10-11)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뿐 아니라, 여러 민족과 열방의 신임을 주장합니다.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2-13)

우리가 어리석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도 창조주 하나님은 유일하신 구원자이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3.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을 증거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창조주 하나님의 증인이었다면, 이제 사도행전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들까지도 창조주 하나님,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0장 말씀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보여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사도행전 10장 말씀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됩니다. 복음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복음의 보편성을 위해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야 부대(이탈리아 출신들의 엘리트 부대)의 백부장인 이방인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입니다. 환상을 통해 베드로를 초청한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과 친척, 친구들에게 행한 설교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같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 볼까요? 베드로는 만유(모든 것)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4-38)

▲ 바렌트 파브리티우스의 <고넬료 집에서 전도하는 베드로>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 설교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 10:39-41)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권세를 선포합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2-43)

참다운 증인은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 선포하는 자입니다. 나아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4.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증인

위험이 사회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 인류가 마주한 위험은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이 낳은 것이라고 말하는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 (새물결, 2014)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안전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몰아낸다.”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 실현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앞에는 안전과 평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가 새로운 계급 불평등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이를 ‘코로나 디바이드(코로나 격차)’, ‘코로나 카스트’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의료 문제로부터 시작딘 코로나-19의 위기가 경제, 정치,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뉴노멀(new normal)’, 곧 ‘새로운 표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뉴노멀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드 폰테스(ad fontes), 곧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과학(과 의료)은 생명을 살리는 그 근본으로, 정치는 사람을 살리는 그 근본으로, 종교는 영혼을 회복시키는 그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제 무기 생산을 멈추어야 합니다. 혐오와 증오는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합니다. 전쟁은 그만두고,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겸손과 공존의 삶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서 말씀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수의 증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요한복음 21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요 20:11-18), 이후 도마와 가룟 유다를 뺀 10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요 20: 19-23). 그리고 나중에 도마까지 합류한 총 11명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요 20:24-29). 부활의 증인들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10명의 제자에게 먼저 나타나시고, 이후 도마에게도 나타나신 모습으로 부활의 증인이 가장 확장된 것입니다. 쉬운 말씀이기에 함께 볼까요?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19-23)

중인의 구체적 모습이 잘 나와 있죠? 제자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사하는 이들입니다. 혐오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아니라, 죄를 사해주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아서 예수님을 뵙지 못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4-25)

따라서 예수께서는, 구약 말씀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을 보이십니다. 한 사람이라도 부활의 증인을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6-27)

그러자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증인, 창조주 하나님의 증인은 말씀을 듣고, 떡을 나눌 때 가능한 것이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 구절에 요한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하면서 끝맺음을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수많은 표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임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 이름에 참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됩시다. 지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도 밖에 나가서 목사라고, 또 그리스도인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친구를 위해 자신을 생명을 바치는 것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세상의 비난과 멸시를 받아야만 하나요?

상식에 기초하지 않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사이비들과 일부 극우 이데올로기에 빠진 목회자와 성도들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개교회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은 이러한 이기심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들마저도 증인으로 세워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구원을 베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너무나 고귀한 은혜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건강한 교회의 교인들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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