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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성령, After 성령(겔 36:22-28; 행 2:1-21; 요 7:37-44)성령강림주일(5월3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5.29 16:19

1. Before 성령: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더라

오늘 복음서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초막절(Holy Tent) 명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무리들에게 안식일의 의미와 영원히 목마름이 없는 생수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절기 가운데 하나로, 장막절과 수장절로도 불립니다. 유월절(무교절), 오순절(칠칠절, 맥추절)과 함께 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일곱째 달 15일부터 7일 동안 초막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안식하라고 말씀하십니다(레 23:34-44). 초막절기는 토지의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추수한 것을 저장하는 절기입니다. 추수절의 마지막 절기이니, 우리나라의 추석, 혹은 추수감사절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초막절 끝 날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세상의 풍성한 추수절기의 끝 날에 예수님께서는 목마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비록 이 세상의 열매로 우리가 배부름과 풍성한 결실을 얻을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배부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무엇이 우리를 목마름 없이 생수의 강으로 인도할까요? 예수님은 그것은 바로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9a).” 그리고 요한은 조금 더 보충합니다. 성경에 ‘괄호( )’로 되어 있죠?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9b)

그렇습니다.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영원한 생수를 맛보지 못했고, 따라서 두 부류로 나누어져 논쟁을 합니다. 예수님을 참 선지자와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요 7:40-41a)” 찬성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요 7:41b)”라고 말하며 그 근거로,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요 7:42)” 사무엘하 7장 12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따라서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요 7:43)”어, 큰 싸움이 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쟁론(爭論)은 ‘서로 다투어 토론 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그 중에는 그(예수)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요 7:44)”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기 전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Before 성령’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바로 ‘Before 성령’ 시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은 바로 성령받기 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성령께서 임하신 성령강림주일인데, 여러분들 마음에, 또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위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시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개독충과 종교가 사악해질 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이 몰고 온 ‘충(蟲)’들의 등장이 있습니다. 바로 벌레들의 부활입니다. 사실 이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1916)의 주인공 그레고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레고리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레고리는 벌레가 된 원인도 밝혀내지도 못하고, 또 다시 사람으로 변하지도 못한 채, 그저 한 마리의 혐오스러운 벌레로 죽습니다.

▲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오늘 한국 사회는 벌레들의 천국입니다 ‘맘충(몰지각한 엄마)’, ‘애비충(몰지각한 아버지)’, ‘한남충(무능력하고 한심한 한국 남자)’,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만 늘어놓는 노인)’, ‘진지충(분위기에 맞지 않게 진지한 말만 계속 하는 사람)’ 등. 이렇게 세대에 따른 충들의 구분도 있지만, 세대 내에도 다양한 충들이 존재합니다. 가령, 대학생들도 ‘분교충(분교에 다니는 대학생)’, ‘수시충(수시전형 입학생)’, ‘지균충(지역균형전형 입학생)’, ‘기균충(기회균등전형 입학생)’, ‘편입충(편입 학생)’ 등으로 갈라져 서로를 공격합니다.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혐오 표현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밑바닥에는 뿌리 깊은 ‘서열주의’, ‘무한경쟁’, ‘세대·지역·이념·남녀 갈등’, ‘양극화 현상’, ‘취업난으로 비롯된 패배의식’, ‘분노, 원망, 억울함’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연, 개신교가 최고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생명,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인 사람에 관해, 혐오를 부추긴 개신교는 이제 ‘개독충(犬-毒蟲)’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말은 일부 극렬 기독교인들을 일컫는 말로,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은 개독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개독충들은 개처럼 예수 뒤꽁무니 따라다니며 발뒤꿈치나 핥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는 똥개만도 못한 족속들. 또한 이들은 독충과 같아서 한번 물리면 몇 시간짜리 끔찍한 설교를 들어야 한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독이 서서히 당신의 뇌를 점령하여 같은 개독충이 된다는 것. 개독충을 만나거든 꼭 조심하셔야 하네요.”

그리고 개독충을 만났을 때 주의사항을 여섯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종교 쪽으로 얘기를 돌리지 말 것.
둘째, ‘예수님 믿으세요?’, ‘인간이라면 들어두셔야 합니다.’와 같은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려 하면 바로 자리를 뜰 것. 이 때 멋모르고 이야기를 듣게 되면 최소 40분이네요.
셋째,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종교관련 발언은 순도 99.9999%의 쓰레기장 직행해야 할 말들이니, 한 쪽 귀로 흘릴 것.
넷째, 성경의 거짓, 창조론의 거짓과 같이 기독교적 사고를 반박하는 발언이나 그 증거를 들이대지 말 것. 그들은 모든 것이 조작된 것으로 여기네요.
다섯째, 정작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여섯째, 아예 접근을 차단할 것. 만약 거리에서 만나거든 괜히 마음 약해져서 이끌려가지 말고, 집에 초인종을 누르며 난입할성싶으면 ‘주거침입죄로 신고하겠습니다.’라고 강력하게 말해야 하네요.”

진정한 예수의 제자는 없고, 예수 장사꾼만 가득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 개신교는 이렇게 개독충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사악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웨이크포리스트 대학의 종교학 교수이자 중동 문제 전문가인 찰스 킴볼 교수는 『종교가 사악해질 때』 (에코리브르, 2005)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신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이 이웃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종교는 이미 타락해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확신해도 된다.”

▲ 찰스 킴볼, 『종교가 사악해질 때』

‘교리’에 대한 이해와 ‘종교생활’에 관한 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종교의 위상이 정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들의 교리, 자신들의 조직, 자신들의 건물, 자신들에게 속한 사람들의 이익을 중요시하지, 세상 사람들, 곧 이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악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찰스 킴볼 교수는 종교가 사악해지는 경우를 다섯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자기들의 종교만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할 때, 둘째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할 때, 셋째 지금은 타락한 시대로 ‘이상적인 시대(곧, 종말)’를 정해놓을 때, 넷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할 때, 다섯째 신의 이름으로 성전을 선포할 때이다.”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 도 있지만, 어떤 종교든 위의 다섯 가지 증상을 보일 때는 사람을 망치는 사악한 괴물로 둔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신천지를 포함한 일부 개신교 교회들은 자신들만이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하죠? 그리고 종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을 앞두고, 신앙의 순수성 회복이나 거룩한 삶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교회 자체의 목적을 위해, 혹은 교주나 목사의 이익을 위해 모든 불의의 수단을 정당화 합니다. 종말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군병을 노래하며 상식적인 세상에 성전을 선포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집니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더럽혀집니다. 구약의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3.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구약 본문에서 에스겔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6:22-23)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경고와 질책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심령을 가진 백성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굳은 마음(겔 36:26)’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지만, 오히려 악을 행하는 불의한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참을 수 없어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새 영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4-27)

여기에 새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나오죠? 바로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을 차지합니다. 아무튼 성령께서 오시면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8).”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바로 성령강림절, 오늘 이 땅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기는 초막절과 비슷한 오순절, 곧 첫 열매인 보리를 추수하는 맥추절(Feast of Harvest)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4. After 성령: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행 2:1-4)

▲ 성령강림, 11세기, 폴 게티 미술관 소장

여기서 다른 언어는 ‘방언’이죠? 공동번역에는 ‘외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방언하면 ‘이상한 소리로 기도하며 신비를 체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오늘 사도행전 말씀은 방언이 무슨 의미인지 잘 보여줍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5-8)

예수님의 제자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그 기도의 내용을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언어로 알아들었습니다. 그 지역은 어떤 지역입니까?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행 2:9-11a)

▲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의 나라

지역을 살펴보니, 지중해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바대, 메대, 메소보다미아)과 팔레스틴(유대), 소아시아(갑바도시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북아프리카(애굽, 구레네, 리비아), 그리스 남쪽(그레데), 아라비아 반도(아라비아) 등입니다. 당시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던 모든 곳에서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제자들이 방언하는 것을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 방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11b)” 하나님께서 하신 큰일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그 큰일은 무슨 일 입니까? 앞서 예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에 비추어, 큰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제자들은 그 일에 대한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며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행 2:12-13).” 그러자 베드로가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합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오전 9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4-17)

성령께서 임하시면, 곧 ‘After 성령’의 시대가 되면,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8-21)

남종과 여종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어 신분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며 또 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할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해 주실 것이라 말씀합니다. 언제? 바로 성령이 임하시면, 곧 ‘After 성령’입니다.

5. 기독교인과 종교가 선을 행할 때

앞서 개독충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Before 성령’ 때는 우리 모두 개독충입니다. 그러나 ‘After 성령’ 때는 어떻게 변해야 될까요? 곧 벌레인 개독충이, 사람인 기독교인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앞서 언급한 여섯 가지로 응답해 보겠습니다. 일단 개독교라 무시하는 안 믿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가정하고 전개해보겠습니다.

“첫째, 상식과 기본에 기초한 이야기를 할 것, 특히 인문학(문학, 역사, 철학)에 기반 한 대화를 할 것.
둘째, ‘예수님 믿으세요?’, ‘인간이라면 들어두셔야 합니다.’로 이야기 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입을 닫고, 그 사람의 이야기 다 들어주기! 최소 40분 이상.
셋째, 기독교에 관한 믿지 않는 이들의 발언은 99.9999%의 무지에서 온 것이므로, 한 쪽 귀로 흘릴 것. 2000년 역사의 기독교 신학을 그들이 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임.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무지의 발언에 반박하는 발언이나 그 증거를 들이대지 말 것. 그들은 모든 것이 조작된 것으로 여기네요.
다섯째, 정작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예수 안 믿는 그들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죄 많은 우리 자신임을 명심할 것.
여섯째, 안 믿는 사람들의 모든 접근을 수용할 것. 만약 거리에서 만나거든, 괜히 마음이 강해져 예수 믿으라 설득하지 말고, 혹은 집에 초인종을 누르며 난입할성싶으면 ‘생명’까지도 내주며 사랑을 베풀 것!”

찰스 킴볼 교수의 책도 소개했었는데, 그렇다면 ‘After 성령’, 곧 성령이 임하시면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곧 종교가 사악해지지 않고 거룩할 때는 어떤 때인가요? 진정한 개신교는 이렇습니다. 첫째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하고, 둘째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셋째 지금은 타락한 시대이기에 이상적인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타락한 시대를 사랑하는 것, 넷째 수단으로 목적을 아름답게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식적인 세상과 더불어, 사악한 종교(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이단과 극우 개신교)와 싸우는 십자가 군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After 성령’ 시대의 기독교는 이래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의 이름으로 사악한 교회와 거짓 목사와 위선적인 교인들이 많습니다. 성령이 임하시어 종교가 사악해지지 않고, 선을 행할 때 우리는 진정 ‘After 성령’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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