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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정말 대기근 팬데믹을 해결한 사람이었을까기후재앙과 요셉 그리고 제국
이이소 | 승인 2020.07.04 17:55
▲ 기근은 이집트 뿐만 아니라 근동 지역 전역에 발생했다. 이에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야곱의 자식들이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내려가 요셉을 만나게 된다. ⓒGetty Image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셧다운”으로 경제가 무너지며 실업자가 된 빈민들의 신음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나라들마다 천문학적인 재난 지원금을 풀고 있으며 한국 또한 그 대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공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국민생활 안정과 침체된 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한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받은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아무리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치인들의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한 선심성 지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마치 밑바닥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듯이 서둘러 추경안을 통과시켰지만 그 돈은 그들의 개인적인 돈이 아니고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할 빚이며, 세금이라는 사실과 그 돈을 받아야할 사람이 국민 모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누구보다 긴급하게 재난 지원금을 수혈 받아야 하는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사회적 거리두기” 결과로 직업을 잃은 사람들과 그로 말미암아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서 머지않아 폐업에 이르게 되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과 관련업자들 그리고 각종 시설농업으로 생계를 도모하는 농부들로 보인다.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업계와 업자들부터 집중적으로 지원내지는 대출 완화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도록 돕는 것이 경기 침체를 막는 기초 작업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 붕괴와 위기 극복을 위한 시험성 프로젝트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과연 몇 개의 나라가 시험대를 잘 통과해서 건강한 경제를 회복할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빠르면 1년, 늦어도 4년이면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팬데믹들

모든 나라가 생태 정의, 복지 정의, 평화 정의를 이루는 면제년의 경제, 희년의 경제를 이루어 내길 바라마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성서에 언급된 기후와 전염병 재앙에 대한 묵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세기와 신명기의 질병과 기후 재난에 대한 말씀을 따라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신명기 28: 21~24)

모세는 신명기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그 결과가 각종 질병과 염병의 재앙 그리고 기후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천명한다. 그는 불순종이 사람 뿐 만아니라 피조물인 자연, 기후까지 병들게 하며 온 세상을 함께 고통과 멸망에 이르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전염병에 관하여, 신명기 사가는 다윗 왕이 불순한 마음으로 인구조사를 한 일로 인하여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칠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하였다고 보도한다.

기후와 자연 재앙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에 단연 많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 대홍수 사건, 애굽의 칠년 흉년의 사건 등등, 창세기는 불순종의 죄악으로 일어나는 자연과 기후 재앙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재난은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일어났으며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애굽의 7년 흉년은 예고된 재앙으로서 대책이 미리 마련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여타의 재앙과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들이 요셉을 예수의 그림자로 보는 것이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구원 스토리인 요셉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 게다.

요셉이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고난으로 점철된 역경을 이겨내고 애굽의 제2의 권력자가 되어 만인 구원과 동시에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세상의 크리스천 치고 하나님에게도 인정받고 세상에도 인정받은 요셉처럼 쓰임 받는 위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모든 크리스천들이 너나할 것 없이 창세기 50장에 나오는 요셉의 신앙고백에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큰 영광을 받으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 하였더라”(창세기 50:19~21)

자신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후에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린 형들이, 자신 앞에 와서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라고 말하며 벌벌 떨며 생명을 구걸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자비와 관용을 보여주었다. 그로서 형들은 40여 년 동안 짊어진 죄의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났으며 요셉의 꿈은 형제들 앞에서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하고 감동스럽게 완성되었다. 우리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요셉에게서 성숙한 인간을 만나는 환희,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게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처럼 성숙한 신앙인이 되길 간절히 염원하게 된다. 참으로 크리스천은 기후 재앙을 극복한 신앙의 영웅, 요셉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요셉, 근동 지역에 벌어진 대기근 팬데믹의 해결자

그러나 금번 묵상에서 만난 요셉은 이전에 만난 요셉과 두어 가지를 제하고는 달랐다.

코로나19를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인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과 국제적인 연대, 의학계의 필사적인 연구와 실험 등이 진행되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정치인들이 코로나19를 이용해서 자기들에게 유익하도록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실업으로 인한 자살이나 굶주림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은 소식을 들으면서, 코로나19로 무역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들을 보면서, 주식시장의 붕괴와 주가상승 소식을 들으면서, 특별한 정치인들을 코로나19 극복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언론들의 선별적이고 과장된 보도를 보면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온 자기 삶의 관성대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사회 문화의 행태를 보면서 묵상한 요셉의 이야기는 예전과 전혀 다른 요셉의 면모를 보게 해주었다.

요셉에 대한 백팔십도 다른 인식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는 고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전에는 요셉의 고백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생각하였는데 금번 묵상에서는 요셉의 발언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고 요셉 자신의 과대망상적인 착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합리적인 정책을 입안해서 풍년에 곡식을 비축하여 흉년에 곡식을 팔아서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생명을 부지시킨 일정한 공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풍년에 요셉에게 곡식을 팔았던 애굽 백성들이 흉년에 곡식을 사기 위해서 그에게 애원해야 하였고 마지막에는 양식을 사기 위하여 자신들의 몸과 토지마저 팔아야 했다는 점에서 요셉의 기후재앙 준비 프로젝트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인자와 성실, 긍휼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요셉에게는 고난당하는 애굽의 백성들에 대한 일말의 자비심이나 동정이 전혀 없었고 끝까지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독점판매를 통해서 집요하게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악덕 관리의 바로를 향한 충성만이 나타날 뿐이다. 십여 년 사이에 요셉의 두 얼굴을 본 애굽인들이 탐욕스런 바로의 앞잡이 요셉을 진실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구세주라고 고백했을 리가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정의와 인자,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가난한 자와 나그네의 하나님께서 자기 지위와 성공을 위하여 바로에게 우직하게 충성을 바치는 불의한 요셉의 행위를 기뻐하셨을 리가 없다.

요셉을 기후재앙과 구원 스토리의 핵심 인물로 볼 때, 바로가 꿈에 본 살진 일곱 암소와 비쩍 마른 일곱 암소, 충실한 이삭 일곱 개와 마른 이삭 일곱 개에 대한 그의 해석은 풍년 칠년과 흉년 칠년에 대한 상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 통찰, 영감이요, 뛰어난 전문 지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지식을 하나님 마음에 맞게 사용하고자 하였으면 바로에게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풍년 기간에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을 대비하도록’ 하는 정책을 제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와 자기가 흉년 프로젝트의 영웅이 되고 백성들이 희생자로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정책을 제안하였다. 그는 풍년과 흉년에 대한 통찰과 지식을 주신 하나님의 정의와 인자, 성실과 긍휼 등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하였다. 요셉이 바로에게 내민 정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미래의 문제를 선방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아니었고, 권력자인 바로의 의도와 구미에 맞게 왜곡 재구성한 것이었다.

요셉의 해석은 실로 탁월하였다. 바로와 신하들은 그의 통찰과 지식에 경악하였고 그 통찰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확신하며 그를 전격 기용하였다. 그의 흉년 준비 프로젝트는 바로와 그의 제국을 위한 것으로 감독관을 둘 것, 일곱 해 풍년에 오분의 일을 거둘 것, 모든 곡물은 바로의 것으로 할 것, 밭의 곡물을 각 성읍에 쌓아 둘 것이었다. 이러한 요셉의 정책은 하나님의 자비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구원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았고 세금 거두는 일, 매점매석과 독점을 통한 바로의 절대 권력 강화에 목적을 두었다.

요셉은 흉년 구제 1단계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바로의 무한 탐욕적인 축재를 실현시켰다. 2단계에서 요셉은 백성들의 말, 양 떼, 소 떼와 나귀 등 모든 가축을 받고 양식을 팔았다. 사람들의 자립의 밑천인 짐승을 전부 몰아서 바로에게 귀속시켰다. 3단계에서 요셉은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라는 백성의 절규를 듣고도 고통이나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아니하였으며 목석처럼 사무적으로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는 충성을 발휘하였다.

4단계에서 요셉은 애굽 땅의 백성을 땅 끝에서 땅 끝으로 대량 이주시켜 바로의 농장에 배치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을 노예상태로 전락시켰다. 5단계에서 요셉은 노예가 된 백성에게 바로의 토지를 경작하여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토지세로 바치게 만들었다. 그는 7년 흉년 구호책으로 완벽하게 정치와 경제, 문화와 종교, 언론을 통제하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 바로 앞에 바쳤다. 제국은 바로 1인과 그를 떠받드는 엘리트관리 계급 그리고 우상을 예배하는 제사장 계급이 휘두르는 거대한 폭력과 독점으로 인한 불평등과 비인간화, 억압과 학대, 빈곤이 일상화된 곳이다.

칠 년 흉년이 끝났지만 백성들은 제국의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할 겨를도 없이 바로의 영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윤허 받은 사실에 감지덕지하며 요셉 앞에 무릎을 꿇는다. 백성들은 요셉 앞에서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창세기 47장 25절) 라고 피를 토한다. 한국어 개역개정판은 “주”라고 번역하였지만 NIV는 “주”가 아닌 “당신"으로 번역하고 있다. 백성들은 바로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바로의 권력의 대행하는 요셉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실로 백성들에게 요셉은 기후재난 준비 프로젝트를 통하여 자신들의 토지를 강탈하고 자신들을 노예로 만든 거대한 음모를 진행시킨 전형적인 악의 집행자이다. 불행의 앞잡이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원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요셉은 그런 애굽 백성들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 하는 일에 쓰임 받았다고 형제들에게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요셉의 성공에 가려진 요셉의 과오들

그러나 성서는 요셉의 기후재난 프로젝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가 바로의 총리가 된 이후부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기록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는 그가 총리가 된 후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식, 지혜, 경험, 점술, 처세술을 의지했기 때문이며 바로의 권력에 편승하였기 때문이다. 흉년 준비 프로젝트 실시 이후부터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을 기억하며 회상하는 방식이나 상대방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아니 하신 것은 그의 하나님의 인자요, 신비요, 무한한 섭리의 역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형들에게 권위와 존엄을 인정받고, 부모님마저도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사실로서 그의 꿈은 성취되었지만 그의 주장대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 하는 일에 쓰임 받았다는 그의 고백은 인정하기 어렵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려고 했으면, 진실로 많은 백성을 기근의 도탄에서 구하려고 했으면 풍년 7년과 흉년 7년 동안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자비와 긍휼을 드러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으며 오직 바로의 무한 탐욕과 권력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뜻을 은폐하기 위해서 언론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일을 했으며 백성들을 우민화시켰다. 요셉은 하나님의 자비로 흉년 준비 프로젝트를 출발했지만 바로의 권력에 기생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큰 과오를 범하였다.

첫 번째, 그의 가장 큰 과오와 실책은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이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식, 영감, 통찰을 독점하고 소수의 권력자들에게만 공개한 것이다. 그런 그의 행위는 바로의 강요로 인한 것이 아니었고 자의적이었으며 그의 권력에의 야망을 잘 드러내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통찰과 지식, 예언을 주신 것은 만민에게 알려서 함께 재난을 대비하라는 하나님의 인애요, 구원에의 의지였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예언을 자신의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사용하고자 권력자인 바로와 그의 신하에게만 비밀리에 공개하였다. 그는 신앙 양심으로 다가 올 기후 재난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모든 애굽인들과 함께 평화롭게 기후 재난을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기회를 외면하였던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빌미로 바로의 충복이 되었으며, 총리로서 자신의 권력과 입지를 강화하였으며 결혼을 통하여 애굽의 종교와 문화에 젖어 들었다. 은잔으로 점을 치는 행위나 형제들과 따로 식탁을 차리는 행위, 아버지 야곱의 시신을 향료로 염하여 사십 일에 걸쳐서 미라로 만든 것은 그가 애굽화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그의 과오와 실책은 흉년 프로젝트를 은폐하기 위한 언론 조작과 통제였다. 물론 성서는 그런 사실을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정황, 성서 행간이 그런 사실을 말해 준다. “7년의 풍년” 동안 그가 곡식을 대대적으로 거두어서 성읍 주변 창고에 쌓았는바, 쌓은 것이 바다 모래 같이 많았다고 하였다. 감독관을 두어서 7년 동안 양곡을 계속 거두며, 모든 성읍에 대대적으로 양곡 보관창고를 건축하면서 흉년 프로젝트 비밀이 새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용했던 나라 안에서 갑작스럽게 양곡 매매가 성행하며 창고 건축 붐이 일어난 것은 누가 봐도 수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의문을 품은 백성들이 프로젝트의 사실과 진실을 알아낼 수 없도록 감독관, 제사장 등을 이용해서 언론을 조작과 통제하였다. 어떤 식으로 조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가 언론 플레이의 명수라는 것이 곳곳에 나온다.

그는 두 번째로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왔을 때 형들에게 자기 정체를 밝히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형제들이 애굽에 온 사실을 자신이 직접 바로에게 고하지 않았다. 그는 소문을 통해서 형제들 도착 소식이 바로의 궁에 전달되게 만들었다. 소문을 들은 바로는 일사천리로 형제들이 애굽에 와서 살도록 선처를 해주었다. 바로의 귀에 소문을 전달한 자들이야말로 요셉이 고용하여 언론 조작과 통제에 사용하는 가짜 뉴스 메이커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형제들이 가나안에 가서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왔을 때, 이미 마음속으로 형제들의 거주지를 고센지역으로 작정하고 바로를 접견하기 위하여 형제들과 함께 예행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형제 중 5명을 선발해서 함께 바로를 만나서 그가 원했던 고센지역을 형제들의 거주지로 허락받아 냈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왕의 가축까지 관리하는 특전을 받게 만들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 때에도 바로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바로의 궁의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라고 바로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흉년 프로젝트의 수혜자들인 바로의 궁의 사람들은 요셉의 입이 되어서 바로에게 전달하였고 바로는 즉시로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고 허락을 하였다. 요셉은 상황과 사건에 따라 때로는 소문으로, 때로는 바로의 궁의 사람들을 이용해서, 때로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자기의 원하는 바를 성취해 내는 언론 장악과 통제의 명수였다.

세 번째 그의 과오와 실책은 흉년 프로젝트의 완벽한 성공을 위한 우민화 작업이었다. 『우리말샘』은 우민화정책을 “정치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정치적 관심이나 비판력을 둔화시킴으로써 충성심을 조성하는 정책. 영리주의에 의한 퇴폐 문화의 지배, 도박 사업의 횡행, 민주 정치의 형식화, 왜곡화에 따른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우민화정책은 섹스, 스포츠. 스크린의 유흥문화를 육성하며 철저한 언론 통제 및 교육 하향평준화와 함께 이루어진다.

성서에는 우민화 작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깨어 있는 백성은 요셉의 흉년 프로젝트에 걸림돌 일 수 있고 백성들이 양곡을 매출하지 않으면 매점매석을 통한 독점 흉년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요셉과 바로의 궁의 사람들 즉 지배자들이 한 패거리가 되어 애굽 온 백성들이 양곡 매매와 저장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흥청거리며 살도록 우민화정책을 펼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요셉이 비축한 양식을 애굽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근동의 가나안 사람들에게 판매한 것으로 봐서 당시 풍년 7년 동안, 한 해에 생산된 양곡이 그 해와 흉년 한 해 이상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백성들은 요셉과 감독관의 선동에 따라 여유 양식을 전혀 비축하지 않고 남김없이 팔았다. 백성들이 양곡을 판매한 수입으로 무슨 일을 했을까? 구체적인 유흥의 내용은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이 유흥으로 돈과 시간을 탕진하였음이 분명하다.

창세기 41장 54절과 55절은 갑작스레 흉년과 기근을 맞이하여 혼란에 빠진 애굽 백성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공황상태에 빠진 나머지 겁도 없이 감히 바로를 대면하여 양식을 청하였다. 흉년 프로젝트의 총수인 바로는 자신을 찾아온 백성에게 감정적으로 조금도 동함이 없이 요셉에게 가서 그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조언하였을 뿐이다.

철저하게 우민이 된 애굽의 백성은 기후재앙을 통한 요셉의 착취 프로젝트를 간파하지 못한 채 돈을 넘겨주고, 가축을 넘겨주면서 요셉에게 애원하면서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토지 문서와 자신들의 신체의 자유마저 요셉에게 넘겨주고 살아남아야 했다. 이는 우민화 정책에 속아 흥청거리며 안일하게 살았던 애굽인들이 처하게 된 비참한 현실이었다.

7년 대기근 위에 세워진 거대한 제국

요셉의 세 가지 과오와 실책은 바로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제국을 만드는 실로 위대한 기회였다. 그러나 그에 의해 돈, 가축, 토지를 다 빼앗기고 몸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게 되는 애굽 백성에게는 불의하고 비열하고 악랄한 음모였다.

요셉은 흉년 프로젝트를 잘 수행한 공로로 그의 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가나안으로 올라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병거와 기병이 그를 수행하는 영광의 절정을 맛보았다.

우리에게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려진 요셉은 실로 정의와 공의, 인자와 긍휼과는 거리가 먼 바로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꿈이 아닌 자기 꿈에 집착하였고 기후재난의 기회를 이용하여 바로에 편승하여 꿈을 이루었지만 수많은 자유인을 노예로 만들었고 독점과 독재의 제국을 출현시키는 하수인이 되었다.

기후재난과 요셉 스토리는 코로나19로 공황상태에 빠진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코로나 19로 무너진 경기 부양책을 세우는 세계 지도자 중에도 재난 극복을 통해서 바로처럼 장기집권의 아성을 쌓으려고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요셉처럼 정의와 공의를 앞세우며 자기의 자리에서 먼저 접수한 정보를 이용하여 틈틈이 사익을 도모하는 전문가 그룹, 먹이 사슬로 연결된 제사장, 감독관, 바로의 신하들 같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성서는 부양책으로 고심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한다. 정의와 공의, 인자와 긍휼을 중심에 두라고 한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우선시 하라고 한다.

성서는 상층 지배구조를 형성한 자들이 자기들의 이해타산과 구미에 맞는 대로 코로나 경기부양책을 집행할 때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며 패거리 조직과 문화는 낙인처럼 사회 한복판에 찍혀서 새로운 폭력문화, 제국의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요셉 스토리는 자신의 꿈에 집착한 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지 못하고 방해를 받으며, 한 나라의 백성 전체가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과 제국의 출현을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고센에 거주하며 바로의 가축을 치며 제국의 수혜자가 되었던 요셉의 후예들이 출애굽기에서 또 다른 바로의 폭정과 민족차별의 피해자가 되어 고난당하는 역설을 통하여 요셉 스토리의 주인공이 하나님임을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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