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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손으로 평화를 외치려는가미사일 대국으로 가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목소리는
이정훈 | 승인 2020.07.31 01:30
▲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연료제한이 해제되었다. 조만간 사거리 제한도 풀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때 한국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Getty Image

지난 7월28일 청와대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해제됐다고 밝혔다. 이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브리핑을 통해 “2020년 7월 28일 오늘부터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하는 2020년 미사일지침 개정을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김 차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과 연구소, 대한민국 국적의 모든 개인은 기존의 액체연료뿐 아니라 고체연료와 하이브리드형 등 다양한 형태의 우주 발사체를 아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하고 생산,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연료 사용 제한 해제는 조만간 미사일 사거리 제한에 대한 해제로 이어질 것이며 이에 대한 협상에 곧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미사일 사거리인 800km가 풀릴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 제한까지 개정하게 되면 그야말로 한국은 미사일 초강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한국은 전체적인 군사력에서도 전세계 7위라고 평가되고 있고 미사일 기술 또한 최상위로 분류되고 있다. 핵탄두만 장착되지 않았지 전술핵 수준의 미사일이 가능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공식적이지만 800km 사거리를 넘어서는 미사일 발사 기술도 이미 보유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연료제한이나 사거리 제한이 풀리는 것이 꼭 한국에게 유리한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일단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미사일 전력 증강은 미국이 더 이상 자국의 국방비 지출없이,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격이 된다. 즉 한국 전력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거리 제한까지 풀린다면 이제 한국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제작하게 되는 것은 초읽기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미·중 뿐만 아니라 한·중 군사 갈등 국면에 접어든다는 뜻이 된다. 즉 한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북한을 겨눌 일은 없을 것이고 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니 말이다.

속된 말로 최하 중국과 일본이다. 최하일 때 이렇게 될 것이라는 뜻이지 그 사정거리 안에는 러시아까지 들어가게 된다. 좀 더 갈등이 비화된다면 한·러 군사적 갈등도 초래하게 된다. 사실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이든 러시아든, 지금도 국제적 인지도나 경제력에서 그렇지만, 앞으로는 군사력에서도 더 이상 한국을 얕잡아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아시아는 온통 강대강 형국으로 돌변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러한 군사력에서 자주적인 더 높은 강대국 대접을 받는 것이 한국에게 반드시 이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언급을 하게 된다면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국의 속국처럼 살아야 하냐”는 반론도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속국이나 마찬가지인 이런 미국의 속국 신세로 언제까기 살아야 하냐는 뜻이다.

조만간 전시작전권도 이양 받게 되는 상황도 곧 맞이할 것이고 이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자주적인 군사력 강대국이 됨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것과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과 어느 것이 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냐는 양자택일적 선택의 상황은 판단이 안 서는 지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때에 그리스도인의 목소리는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이냐는 더욱 더 곤혹스러운 일이다. 평화를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말이다.

당장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자고 하면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배반하는 매국노 집단으로 취급될 것이고, 더 높은 수준의 자주적인 군사 대국으로 발전하자는 목소리에 동조한다면 이 또한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군사 대국이 되는 것 자체를 평화를 위한 방법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평화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평화여야 한다. 평화가 목표가 될 때 거기에는 군사대국이 되는 것도 한 방법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군사 대국은 결코 성서가 증언하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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