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을 통해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교회이다. ⓒGetty Image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번 주 한 주간은 매우 의미 있기도 했지만 모두가 긴장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무엇보다 미국 시민들이 매스컴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났고 이제는 어느 한 쪽이 승기를 잡은 것 같은데 여전히 결판이 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 곳곳에서 갈등이 여전하고, 폭력이 난무합니다. 다른 나라 언론들도 미국 내 정치적 갈등의 양상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어 왔지만 요즘의 현실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왜 우리는 특정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길 바랄까요? 왜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애원할까요?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시장에 가기도 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온통 쏟아 붓곤 합니다. 반대 정치인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온갖 흑색선전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을 나누고, 지역을 나누고, 내편 상대편을 나눕니다. 나는 옳지만 나는 능력이 있지만, 상대방은 옳지 않고, 무능력하다고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렇게 해야 나에게 표를 줄 수 있기에 그렇게 하겠지요.

모태신앙이라 하지요. 부모님 따라 교회를 드나들다가 중·고등부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 고등부 따로 학생회 자치기구가 있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어른 숫자에 비해 그리 작지 않은 교회였고, 나름 학생 회칙도 있고, 회의 진행 방식도 어른들을 흉내내는 수준이었지만 꽤 진지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중등부 시절도 있었지만 고등부 시절에 학생회장을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나름 교회에서 지도자 노릇을 해보고 싶은 거지요. 어쩌다가 친구들에게 떠밀려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학교 공부에 지장을 줄 게 뻔하지만 교회가 어린 저에게 있어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고 있었기에 선뜻 한다고 했던 겁니다.

최종 후보 두 명이 남았고 제 기억으로는 한 두 표 차이로 제가 회장이 되었고, 다른 친구가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부회장이 된 그 친구는 활달하고 운동도 잘 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 비해 그리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회장이 되었을까요?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잘 압니다. 제 아버지가 교회 장로님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교육부 담당 장로님이었습니다. 한편 부회장이 된 그 친구는 혼자 교회에 다니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등부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니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학생회장 된 거 축하한다. 앞으로 아이들을 잘 섬기고 봉사하거라. 그런데 너에게 표를 준 사람만큼 상대 친구에게 표를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그 아이들이 너를 반대할지도 몰라. 그 반대하는 마음도 잘 헤아릴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그 때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한국의 한 신학교 교수님이자 목사님이 SNS에 쓰신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에 목사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들이 오겠지요. 그러면 입학 시험 면접관으로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답니다. 목사의 자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게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주저한답니다.

무엇일까요? 여러분 머리 속에 여러 가지 항목들이 떠오르겠지요. 자 이 교수님은 무엇이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도량과 관용의 미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과 영원을 닮아 인간들에게 담겨진 선하고 악한 것, 고상하고 비루한 것, 정결하고 추한 것, 부드럽고 거친 것, 성숙한 것과 유치한 것 등등 그 모든 것을 따뜻하게 품고 녹여낼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야 좋은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거구나 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한 자질에 대해 이렇게 그 목사님이 말씀하신 걸 찬찬히 들여다보면 교회가 무엇인지, 예배당에 앉아 예배하고, 친교하고, 봉사하는 인간 군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어디 교회뿐이겠습니까? 국가도 마찬가지지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만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한 쪽에 치우친 게 아닙니다. 고작 몇 퍼센트 우위에 따라, 심지어 1퍼센트도 안 되는 차이에 의해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묘한 차이와 우위에 따라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게 세상의 현실이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분열합니다. 서로 싸웁니다. 서로를 파괴합니다. 세우고 만드는 것보다 파괴하는 게 쉽기 때문입니다. 몇 십년 걸려 세운 아름다운 건물도 파괴하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현실은 교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겠다고 결단하면서도, 주님께 머리 조아려 눈물 흘려 기도하면서도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평화라고 고백하면서도 너와 나를 갈라 담장을 세우고 넘어오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던 초대 교회 믿음 식구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엡2:14-15)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합니까? 담을 허무시는 분입니다. 남자와 여자, 의인과 죄인, 유대인과 이방인, 그들 사이를 다니시면서 그들을 이어 주셨습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고, 오해가 켜켜이 쌓여 증오로 남은 이들의 마음에 사랑의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나눠 서로 비교하게 하고, 서로 오해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미움을 심어주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강퍅한 마음을 만들어 서로에게 생채기를 입히는 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의 희생이 전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무나 쉬운 일이고,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악하고 게으른 지도자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그들의 증오는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염되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곳곳으로 번져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리키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공존의 세상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지 않고,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고, 도움주는 사람이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조금 낯섭니다. “오이쿠메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학교 채플실에 들어섰을 때 스테인드 글래스의 형형색색이 눈에 들어왔고 이윽고 눈에 들어온 글자가 바로 “오이쿠메네”였습니다. “산다”라는 뜻의 oikeo 혹은 “집”이라는 뜻의 oikos에서 온 말입니다. 즉, “사람이 사는 모든 땅”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을 썼던 사람들이 처음 적용했던 것은 문명의 영향을 받은 지역을 가리킬 때, 즉 문명 지역, 야만 지역을 나누고 갈라, 문명 지역을 말할 때 썼던 말이었습니다. 그리스 문명이든, 로마 문명이든 자기들이 이뤄 놓은 땅을 가리킬 때 쓰던 말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기독교에 의해 받아들여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해 세워지는 새로운 나라를 뜻할 때 쓰여집니다. 이 때는 바로 “세상은 한 가족”을 의미하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나 로마가 자기들의 문명과 야만인들을 가르는 수단으로 오이쿠메네를 썼던 것을 이제 주님은 남자와 여자의 장벽, 문화의 장벽, 빈부의 장벽, 종교와 종교 사이의 장벽, 인종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고 새 세상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말은 차이로 인하여 생기는 차별과 폭력, 억압과 증오를 멈추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서로 미워하던 것이 사라지고 서로 화해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게 됩니다.

장벽을 허물고 담장을 허문다는 말은 차이를 없애고 통일해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화의 차이를 없애고, 빈부의 차이를 없애는 게 이 땅에서 가능하겠습니까? 종교와 종교의 차이를 없애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내는 게 담장을 허문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막힌 담을 허무신 주님을 따른다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서로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나와 달라도, 내 생각과 내 외모와 달라도,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배제하고 따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나름 사업에 성공하신 장로님이 고백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장로님이 결혼해서 10년 동안 아내를 변화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합니다. 자신의 사고 방식, 삶의 태도, 세계관을 닮게 하려고 10년 동안 계속 주입했다는 것이지요. 성공했을까요? 그럴리가요. 불가능한 헛수고였습니다. 젊을 때라 실수한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도 되지 않는 일을 교회에서 성취하려고 하니 너무나 무리수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심지어 믿음의 색깔이 다른 교회 식구들을 보며 비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지요? 그 사람의 자리에 서 봐야 합니다. 왜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가 그걸 싫어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 의견이 그럴싸하고 뜻이 선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늘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7:12) 주님께서는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성경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위태롭습니다. 미움과 폭력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증오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두 한 가족, 오이쿠메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모두 한 가족이기에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합시다. 주님의 몸을 통해 하나가 되었기에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사랑을 나눕시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하나됨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민기욱 목사(미국 트리니티 한인장로교회)  minics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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