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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교리에 관한 권위교회의 권위 ⑴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01.09 16:43
▲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3년) ⓒWikipedia

교회는 직분을 통한 질서와 제도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운영하기 위한 교회의 권위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들의 시간적인 형식인 교회 안에서 질서가 깨질 경우,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예가 손상되기 때문입니다(IV.viii.1). 따라서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에 재판소를 설치하고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 견책을 하고 죄악을 조사하며 열쇠의 직책을 다하게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다스리는 직분을 언급한 것은(고전12:28) 이 제도를 지적한 것입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8장에서 12장까지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 권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논의를 전개합니다. 교회는 이 권위로 교리를 결정하고, 법을 제정하고 도덕에 관련된 문제들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전제정치”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는 로마교회에 반대하여, 교회 권력의 한계를 성경에 근거하여 명확히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이 권위를 주신 것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믿음 안에서 세우려는 것입니다(고후10:8,13:10). 따라서 이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종에 불과하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사람들의 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고전4:1). 그런데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방법은 교역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그 권위를 유지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있으며,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빼앗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IV.viii.1).

교회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우리는 이미 앞에서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존경을 받는 곳에 존재하며(IV.ii.6), 복음의 순수한 선포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대로 성례전을 거행하는 이 두 가지 수단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와 주로서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IV.i.9). 교회의 권위에 대해 말하는 여기서 칼빈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와 주로서 드러내기 위해서는 단지 그분만을 “교회의 선생”이 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까닭은 성경이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들으라(마17:5)고 말했기 때문입니다(IV.viii.1).

그와 같이 구약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신약의 사도들은 모두가 자기의 것을 모두 버리고 오직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주의 말씀 외에 다른 어느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IV.viii.2). 또한 사도들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따르면 오직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한 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유일하고 영원하신 모사였고 아버지께서는 그를 만물의 주로 임명하셨다. 그러나 그는 가르치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이 모범에 의하여 모든 일꾼들이 가르칠 때에 따라야 할 법칙을 정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은 무한한 것이 아니며 주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IV.viii.4).

교회의 권위는, 예컨대, 주의 말씀 안에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의 권위는 전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의 권위의 첫째 부분, 즉 교리(신조)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확고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우선은 율법과 예언서에 다음에는 사도들의 글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거나 교회 내에서 자리를 내줘서는 안 되며, 교회 안에서 인정된 교수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지시와 표준을 따르는 것뿐이라는 점이다(IV.viii.8).

더 나아가 칼빈은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벧전4:11)는 말씀을 주석하며 교회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 씀 아래 둘 때만 교회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천명합니다. 로마교회는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직접 교회의 지배권(수위권)을 받았다고 주장하니까, 베드로의 저 말이 교회의 권위와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저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선포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교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고안해 낸 것을 전적으로 배척하고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만을 교회에 서 가르치며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한계를 지킬 때, 우리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고후10:4)을 힘입어 그야말로 세상으로부터 진정으로 “최고의 권한”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 즉 영적 무기이며, 하나님의 충실한 병사들은 이 무기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고후10:4-5). 이제, 여기에 교회의 목사들이 (그들이 어떤 호칭으로 불리든 간에) 받아야 할 최고의 권한이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모든 일을 담대하게 할 수 있으며, 모든 세 상 권력과 영광과 지혜와 교만을 굴복시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힘을 받아 가장 높은 자로부터 가장 낮은 자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다. …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는 것이다(IV.viii.9).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가짜 회의들

이제 칼빈은 사도들의 계승자들인 교회의 교역자들의 직분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에 봉인되어 있는 것만을 가르치는 직분”(IV.viii.9)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역자들의 권위는 그들의 가르침과 실천이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과 일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기초로 하여, 칼빈은 교회 권위의 세 영역들, 곧 교리, 법, 그리고 권징을 논합니다. 그는 우선 그 자신이 가톨릭교회의 “초과” 또는 “남용”이라고 일컬은 것을 비난합니다. 교리의 문제에서 그는 두 가지 주장을 합니다. 첫째, “충실한 교역자들은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IV.viii.9)는 것이고, 둘째, “회의의 모든 결정”을 “성경에 대한 해석”(IV.ix.14)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선 첫째 문제에 관하여 로마교회가 주장하는 바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로마교회는 전체 회의가 교회의 진정한 현상이라는 생각을 당연시합니다. 그들은 교회 회의들이 성령의 직접 적인 주권을 받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그 회의들을 지배하고 구성하는 것은 감독과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이 어떤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 표준에 따라 어떤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IV.viii.10). 그리고 그들은 ‘교회의 무오성’의 근거를 주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만드셨다(엡5:26-27)는 말씀과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 라고 부른 말씀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미 앞에서 육체를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신자의 삶은 세상에서는 결코 완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중생한 사람이라 도 이 죽을 몸에 갇혀 있는 동안, 중생은 결코 완성될 수 없고 죽을 때 까지 내적인 갈등에 휩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II.ii.27, III.vi.5)는 것 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교회의 무오성에 대한 주장을 한마디로 “어리석고 미련한 이야기”라고 일갈합니다(IV.viii.12). 교회의 모든 신자들 이 흠이 있고 결점이 있는데, 교회가 모든 점에서 완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에베소서의 말씀은 주께서 이미 성취하신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매일 하시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석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는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에 의해서 교회 안에서 보존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IV.viii.12). 그것은 교회가 무조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저들의 주장에 대해서 정말 그들의 주장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려면, 주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순수하게 선포되느냐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 첫째 주장은 종교개혁의 ‘성경원리’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성경원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신구약성경에만 담겨 져 있고, 따라서 모든 교리는 성경의 표준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는 개혁자들의 성경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요약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즉 주의 말씀에 계시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며 주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IV.viii.15)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어서 교회 회의들이 내린 모든 결정은 성경에 대한 진정한 해석이라는 로마교회의 주장과 씨름합니다. 그는 먼저 교회의 회의들 가운데 가짜 회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영의 지배를 받지 않은 회의들이 가짜 회의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작은 모임이나 세계적 회의 모두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모임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회의”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곳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약속하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고(신4:2, 12:32; 잠30:6; 계22:18-19 참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결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자 들과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완전한 지혜의 유일한 표준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들의 두뇌로써 신기한 것을 조작하는 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IV.ix.2).

그러므로 칼빈은 여기서 역사속의 모든 교회 회의들과 그 회의들의 결정과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교리의 문제들에 대하여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회의들의 목록을 열거합니다. 즉 4세기와 5세기에 삼위일체와 기독론의 정통교리를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위대한 에큐메니칼 공의회들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그리고 칼케돈 회의들입니다(IV.ix.8). 이 회의들은 성경의 우위성에 대한 칼빈의 원리와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칼빈은 이 회의들의 우선적인 목표가 단지 수많은 이단적인 공격들에 맞서 성경의 교리를 수호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회의들을 인정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 회의들의 권위는 그들의 교리가 성경에 비추어 검토되고 성경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것이 교회의 역사 속의 모든 회의들에 대해 말해질 수 없습니다.

그는 교회 안에 세운 형상들을 전부 끌어내 부숴버리기로 한 콘스탄티노플 회의의 결정(754년)을 뒤집고 형상들을 복구하도록 판결한 니케아 회의(787년), 유티케스의 이단설에 손을 들어 준 제2차 에베소 회의(449년)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모든 회의의 결정과 해석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IV.ix.9; xiii.13). 그러므로 여기서 그가 문제시하는 것은 회의의 모든 결정을 “성경에 대한 해석”으로 부르는 관행입니다. 연옥과 성자들의 중보기도와 은밀한 고백과 기타 비슷 한 문제에 대하여 회의들이 내린 결정들은 성경에서는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콘스탄스 회의(1415년)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의 잔을 단지 사제에게만 허락하기로 결정했는데, 콘스탄스 회의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에 전혀 반대되는 이 결정을 “해석”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IV.ix.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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