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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과 증언, 그리고 사랑의 계명(왕하 4:1-7; 요일 5:1-12; 요 2:1-11)주현절 셋째 주일(1월24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1.01.22 14:24

1. 지구의 신호와 예수님의 신호

▲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기후위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건강을 체크하면, ‘지구온난화’에서 ‘기후변화’로, 그리고 이제는 ‘기후위기’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는 말 그대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바다와 지표 부근 공기의 기온 상승’을 말합니다. 원인은 90% 이상의 온실 가스 농도의 증가와 화석 연료 사용과 같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전 지구적인 기후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의 한 유형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하위의 개념입니다. 기후변화는 기온의 상승만이 아니라, 폭우와 폭설 등 다양한 기후변화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태양 활동의 변화’입니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열이 낮으면 빙하기, 높으면 간빙기가 찾아오죠?

이러한 태양 활동의 변화도 있지만, ‘지구의 공존 운동 변화’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코비치의(M. Milankovitch)의 ‘주기이론’이 그것을 잘 설명합니다. “지구의 자전축 변화와 공전 궤도 변화로 인한 일사량 변화가 빙하기와 간빙기의 교대를 일으킨다.” 조금 길게 설명하자면, 지구의 기온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지구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을 지구에 복사되는 태양 일사량(日射量, 태양으로부터 오는 태양 복사 에너지가 지표에 닿는 양)으로 설정하고, 황도면(黃道面,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궤도)에 대한 지구 자전축의 변동, 지축의 세차운동, 지구의 공전궤도의 변화라는 상호작용에 따라 태양 복사량(태양에서 방출된 열의 양)이 변해 지구의 기온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럼 ‘기후위기(climate crisis)’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기후변화가 단지 상황을 설명할 뿐, 그 정도나 심각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재 기후변화는 우리 인류(물론 대부분은 산업 선진국이겠죠?)가 초래한 것이니, ‘태양 활동의 변화’나 ‘지구 공존 운동의 변화’ 등의 기후 변화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후위기를 통해 인간이 초래한 삶의 터전인 지구의 위기를 보아야 합니다. 지구는 더 이상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의 폭우와 이번 겨울의 폭설이 바로 그 신호입니다. 이렇게 지구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세메이온(σημεῖον)입니다. 우리말로는 표적(表迹, 겉으로 드러난 흔적)이라고 번역합니다.

▲ 2020년 여름 폭우와 2020년 겨울 폭설

성경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됩니다. 가령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고치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일, 혹은 물 위를 걷는다거나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든지 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이적(異蹟, 기이한 행적)과 기사(奇事, 기이한 일), 혹은 기적(奇蹟,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은 이적과 기사를 ‘Wonder(이상한, 경이로운)’로, 기적을 ‘Miracle(기적, 놀라운)’로 번역합니다. 두 단어 모두 헬라어 ‘테라스(τέρας, 경이로운 일, 놀라운 일)’를 번역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상식과 이성적 판단으로 볼 때, 경이로운 일, 놀라운 일, 이상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표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 많이 나오는데, 헬라어로는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사인(sign)’으로 번역이 됩니다. 쉬운 우리말로는 ‘표시’, ‘징조’ 등으로 번역합니다. 원래의 의미는 ‘신호를 보내다, 지시하다, 알리다, 보이다, 가리키다’라의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바로 이적과 기사,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린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표적을 둘로 나누어 보면, ‘초-인간적 일(이적 기적)’과 ‘초-자연적인 행사(이적 기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초-인간적인 일과 초-자연적인 행사 모두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바로 표적, 세메이온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구가 싸인을 보내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보내신 싸인을 깨닫는 것이 바로 주현절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나 이적, 기사 등의 놀랍고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현상을 읽을 때, 그 놀라운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지금 주현절기를 보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셨던 모든 일은 우리가 그저 놀라고 감탄하고 경이롭게 여기고 신기하게 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표적의 의미를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말씀을 통해서는 우리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적 기사로,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는 결혼 ‘잔치의 지속’이라는 이적 기사로 표적의 의미가 이해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표적은 바로 서신서 말씀에 나오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2. 생활의 필요를 채움

먼저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적 기사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볼까요? 엘리야의 제자인 선지자 엘리사가 행한 놀라운 일입니다. 엘리사의 제자 중 한 여인의 이야기로, 그 가정의 생활의 필요를 채운 사건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왕하 4:1)

예나 지금이나 빚 때문에 많은 고초를 당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기억에, 저희 집 안방에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서 드러누운 것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빚 받으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죽었고 그 가정의 빚 때문에 두 아이가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엘리사에게 달려와 하소연한 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왕하 4:2-4)

▲ 기름을 빈 그릇에 채우는 여인

그러자 여인은 엘리사의 말대로 행합니다. 이제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말씀을 볼까요?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왕하 4:5-7)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여인이 다시 엘리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이 기름으로 빚을 갚고 생활의 필요를 채우라고 합니다. 기적은 이런 것입니다. 돈이 없어 종으로 팔려갈 사람을 구해주는 것,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이것이 기적이라는 말입니다.

▲ 서울역 기적

위 사진은 지난 2021년 1월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던 긴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노숙인에게 건넸습니다. 우연찮게 이 장면을 목격하고 달려간 기자가 뛰어가 노숙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네,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자 점퍼를 건넨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미끌미끌 눈길 위로 뒤쫓아 갔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노숙인에게 다시 상황을 물어보려 돌아봤지만 그도 어디론가 없어진 뒤였다고 합니다. 기적은 이런 것입니다.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자세히 보시면, 이 여인이 처음에는 엘리사를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기적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표현이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호칭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얼마나 귀한 이름 인가요! 세상에서 고통받고 힘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의 존경을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나아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것은 예배보다 우선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이러한 나눔과 봉사, 희생의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한 다짐과 맹세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본질이 뒤 바뀐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3. 잔치의 지속

두 번째 표적은 복음서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의 지속’이라는 이적 기사입니다. 앞 서 요한복음에는 표적이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이 표적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의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표적이 있습니다.

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요 2:1-11)
②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요 4:46-54)
③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요 5:1-9)
④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로 5,000명의 무리를 먹이신 표적(요 6:1-15)
⑤ 디베랴 바다에서 물 위를 걸으신 표적,(요 6:16-21)
⑥ 실로암에서 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신 표적(요 9:1-12)
⑦ 베다니에서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요 11:1-44)

오늘 본문 말씀은 첫 번째 표적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요 2:1-3)

▲ 마르텐 데 보스 <가나의 혼인잔치>(1597)

예수님과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받았는데, 때마침 잔치의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4-5절 말씀은 신학적인 설명이기에 나중에 살펴보고, 바로 6절 말씀을 볼까요? 그래야만 자연스럽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 2:6-10)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입니다. 많은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잔치의 흥을 지속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잔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혼인 잔치는 기쁜 잔치 날입니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 기뻐야 됩니다. 이렇게 흥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물을 술로 바꾸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기적은 잔치 자리의 흥을 깨는 것이 아니라, 북돋우는 것입니다. 모임의 흥을 깨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모임이 흥겹고,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즐거워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4.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

이렇게 생활의 필요를 채우고, 잔치의 지속이 기적이라면 이것은 세상의 정치와 경제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입니다. 예수께서 메시아가 되심을 신호 보내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4-5)

무슨 말씀인가요? 아직 예수께서 메시아임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싸인을 보여줄 때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잔치의 지속을 위해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서신서 말씀도 동일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증거에 관한 말씀인데, 바로 예수님, 곧 아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9-10)

하나님의 증거인 예수님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0-12)

5. 증언과 사랑의 계명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라는 증언은 하나님 뿐 만 아니라, 성령과 물과 피도 증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2:5-6)

물론 이 말씀은 초대 교회 최초의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입니다. 이들은 영적인 지식(靈智)만 중요하지, 인간이 먹고 마시고 축제를 즐기는 육적인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육체적 금욕이나 쾌락의 추구는 구원과 심판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혼 구원이 중요하지, 우리의 몸을 쾌락으로 방탕하게 하던지, 혹은 금욕으로 몸을 혹사하던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주의 현현은 영적인 현현이지 육적인 현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지주의자들은 흠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또한 로마의 형법에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귀한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추한 인간의 몸에 속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고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죠? 또 십자가에 육신이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인성을 지닌, 좀 더 구체적으로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성과 인성을 결합한 메시아임을 신호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분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인성을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2:7-8).” 그리고 이렇게 육으로 오신 예수님,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잔치의 지속을 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표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2: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한 육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들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임을 믿을 때, 실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평생 천국 잔치를 누리도록 오늘도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잔치의 지속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바랄 때 그때,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2:4).” 이렇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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