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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개혁의 원리개혁교회, 무엇이 다른가? ⑴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02.27 16:02
▲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종교개혁자들의 부조가 새겨진 벽. 사진 왼쪽부터 윌리엄 파렐, 존 칼빈, 테오도르 베자, 존 낙스. ⓒWikipedia

개혁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밝혀야 하는 것은 이 교회가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는 세상에 있는 다른 교파 교회들과 전혀 다른 교회가 아니라, 그 모든 교회들과 함께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에 있는 복음적인 신자들과 동일하며,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들에 관한 한,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위대한 신앙의 유산도 단지 16세기의 개혁자들만이 아니라, 초대 교부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였을 때, “오직 성서”(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과 같은 복음적인 주제들을 성경에서 재발견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갱신시킨 것은 개혁자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후예라는 것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라는 특정 종교개혁 전통에 속한다. 그러나 루터교회가 개혁자 루터의 인격과 삶, 그리고 교리에 확고하게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개혁교회는 칼빈에게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칼빈 이전에 후스(J. Huss), 츠빙글리(H. Zwingli), 부처(M. Bucer), 외콜람파디우스(J. Oecolampadius), 파렐(G. Farel)과 같은 개혁자들이 있었고, 불링거(H. Bullinger), 존 녹스(J. Knox), 베자(T. Beza)와 같이 칼빈과 동역했거나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개혁자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16세기 이후 개혁교회는 전세계에 퍼져나가며 끊임없이 발전하였고, 20세기 들어서는 칼 바르트(Karl Barth),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토랜스(T. F. Torrance) 같은 탁월한 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개혁교회는 장로교회, 감독교회, 회중교회와 같은 다양한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개혁교회는 이러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 마디로, 개혁교회는 각자의 새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언제나 새롭게 신앙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몇 가지 교리적 강조점들을 갖고 있다.

개혁교회가 다른 교회들, 즉 로마 가톨릭교회, 루터교회, 그리고 감리교회 등과 무엇이 다른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기독교 전통들과 구별되는 개혁교회적 경건과 분위기, 그리고 세상에 대한 접근법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선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로 일컬어지는 ‘성서원리’를 살펴보고, 여기서부터 개혁교회의 진수에 해당하는 본질적인 몇 가지를 다른 교회들의 관점들과 비교하며 살펴보기로 하자.

오직 성서만(sola scriptura) - 종교개혁의 형식원리 ①

개혁교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말씀 중심의 교회, 달리 말하면 성서를 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로 삼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혹자는 곧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로 삼지 않는 교회도 있는가? 예,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만, 성서와 나란히 교회의 교리전통, 교회의 결정을 중시하고 있다.

예컨대, 이러한 것들이다. 첫째, 성서에서 발견되거나 추론되는 진리, 둘째, 사도들로부터 전해져 왔지만, 성서에 없거나 성서에서 추론될 수 없는 진리, 셋째, 하나님께서 사도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계시하셨거나 최근에 계시하거나 영감을 주신 진리 등을 성서와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1]

중세 후기의 핵심적 쟁점은, 교회가 성서에서 발견하거나 추론할 수는 없지만, 전해진 전승들 가운데서 그 권위와 사도적 진정성에서 정경(canon)과 동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념들을 회중에게 선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는 그렇다고 했고, 마르틴 루터와 훌드리히 츠빙글리, 그리고 존 칼빈, 하인리히 불링거 같은 개혁자들은 성서 이외에 다른 어떤 계시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오직 성서만”(sola scriptura)의 구호는 바로 이 계시의 다른 원천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종교개혁 전체의 주제였다.

그러나 이 원리를 일관되게 관철시킨 것은 개혁교회였다. 유감스럽게도 루터교회의 ‘일치신조’(1577)에서 자주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같은 대구(對句)는 루터 이후에 루터교회가 다시 로마 가톨릭의 “숙명적인 이원론”[2]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3]

그러나 개혁교회 개혁자들, 츠빙글리와 칼빈 등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그리스도와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는 다른 어떤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성서만”을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칙으로 인정했다. 『제네바 신앙고백서』(1536) 첫 문단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선, 우리는 신앙과 경건의 규칙의 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인간의 생각으로 날조된 어떠한 것을 성서와 혼합하지 않고서 단지 성서만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을 공언한다.”

칼빈의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받는『프랑스 신앙고백서』(1559)는 “성서는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 오직 모든 것은 성서를 따라서 검토되고,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4] 이와 같이 『벨기에 신앙고백서』(1561), 『제2 헬베틱 신앙고백서』(156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가 모두 배타적인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5]

개혁교회는 이렇게 처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오직 성서에만 담겨 있고, 따라서 모든 교리는 성서의 표준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혁교회는 이 성서의 토대 위에 교회와 사회의 모든 제도와 법규를 근거시키려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라고 일컬어지는 개혁교회의 ‘성서원리’라는 것이다.

성서의 신적 권위를 확증하는 ‘성령의 내적 증거’ - 종교개혁의 형식원리 ②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성서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유일한 진리이고,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확실한 규칙”과 “모든 진리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인간적인 증거들은, 이 증거들이 아무리 인상 깊고 유용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연약함을 받쳐주는 이차적인 보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여기서 칼빈의 주된 관심은 매우 실제적인데 있다. 곧 확실성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 신앙을 위한 확고하고 건실한 기초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의 판단보다 더 높고 더 강한, 확실성”(Inst.Ⅰ.viii.1)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 곧 그 말씀을 발설하는 하나님 자신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사실상 하나님 자신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다른 어떤 이차적인 증거들을 통해서는 결코 지지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칼빈은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서에서 말씀하신다”(Deus dixit)는 사실에서 발견한다. “성서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몸소 그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에서 나온다”(Inst.,Ⅰ.vii.4). 이러한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 자신은 진리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진리임을 나타내는 계시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성서를 대할 때,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생생한 음성을 하늘로부터 직접 듣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하였다(Inst.,Ⅰ.vii.1). 바로 이 하나님만이 그 자신에 대한 유일한 참된 증거가 되시기 때문이다(Inst.,Ⅰ.xi.1). “성서는 자증(自證)한다”(Inst.,Ⅰ.vii.5). 사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술은 하나님 자신이 입증하는 자유로운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증명될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진술이 하나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증명될 수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겠는가?

이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은,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의 성서적 증거들과 그 증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동시적으로 부여하는 자기 증거의 계시에 있다. 이것은 칼빈이 성서의 신적인 권위에 대한 증거를 인간의 이성과 판단 이외의 어떤 다른 장소, 곧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에 근거시켰다는 것을 말해준다(Inst.,Ⅰ.vii.4). 왜냐하면 “성서의 확실성이 성령의 내적 확신 위에 세워질 때에만, 비로소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을 궁극적으로 일으킬 수 있게 되기”(Inst.,Ⅰ.viii.13) 때문이다. 이 성령의 내적 증거는 성서의 저자와 독자를 공통의 목표에 인도하는 성령의 사역을 뜻하는데, 칼빈은 이 “성령의 내적 증거와 조명”에 의하여 우리가 성서를 교회의 다른 문서들과 구별할 수 있다고 『프랑스 신앙고백서』 제4조에서 명백하게 진술하고 있다.[6]

그러나 “성령의 내적 증거”를 성서의 권위에 대한 궁극적인 근거로서 제시하는 칼빈의 이 논증은 명백하게 ‘순환논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실 그 논증은 명백하게 순환적이다: 왜 우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영에 의해서 우리에게 이 진리를 확신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행하시는가? 성서를 통해서. 그러나 우리에게 그와 같은 ‘순환논법’을 피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있는가?

칼빈을 비롯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신학적 지성을 지닌 자들로 평가받는 칼 바르트와 오토 베버(O. Weber)는 ‘없다’라고 말한다. 유일한 대안은 어떤 외적인 권위에 호소하는 것인데, 이 경우 성서는 온갖 종류의 무신적이며, 합리주의적인 비판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7] 여기서 바르트는 칼빈에 동의한다: 성령의 내적 증거의 교리는 “단지 인정과 고백을 할 수 있을 뿐인 그것의 가장 약한 지점에서 파괴할 수 없는 강점을 갖는다”[8] 더구나 이 접근방법은 성서 자체를 뒤따르는 방법이 아닌가?(요 8:13이하, 요일 5:6-7).

이러한 칼빈의 성서 영감론이 소위 17, 8세기 칼빈주의적 정통주의자들의 ‘축자영감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틀림없이, 그는 성서의 증언자들을 성령의 기관과 도구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성서의 확실성을 문자에서 발견하지 않고 성령의 증거에서 발견하였다. 성서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문자 자체가 갖고 있는 신적인 권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감화․감동시키는 성령의 역사(役事)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서에 있는 문자로서의 인간의 말 사이에는 그 어떤 본질적인 일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계시된 말씀을 성서의 기록된 말씀과 조화시키고, 그로써 그 기록된 형식을 심오하게 계약적이고 성례전적인 방식으로 그의 자기 계시에 적응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말과 진술의 형식으로 성서 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9]

이와 같이 성서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발견은 칼빈과 다른 개혁자들로 하여금 로마 교황의 권위 및 성서와 교회 전통에 대한 로마 교회의 입장을 거부하게 하였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solus Christus)을 최고의 권위로 여겼고, 교회를 위한 그의 말씀과 뜻은 교회의 삶을 위해 일차적 권위를 갖는 성서를 통해서만 알려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적 권위들은, 그것이 신조이든, 교회 공의회들이든, 또는 교회의 다른 가르침들이든 간에, 교회에서 단지 보조적이고 파생적인 권위를 지닐 뿐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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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Donald K. McKim, Theological Turning Points (John Knox Press, 1988); 장종현 옮김, 『교회의 역사를 바꾼 9가지 신학논쟁』 (UCN, 2005), 237.
[미주 2]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서와 분리되고 구별되는 어떤 계시의 원천을 인정하였다. 예컨대, 본질적인 중심과 부차적인 중심을 갖고 있었다. 성서와 나란히 교회의 교리 전통이 서 있고, 그리스도와 나란히 사도 베드로와 오류 없는 교회가 서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나란히 피조물의 존재가 서 있었다. 칼 바르트는 이것을 “숙명적인 이원론”이라고 부르고, 그 전형적인 형태를 피조적인 존재가 신적 존재를 위한 유비로 서 있는 “그리스도 ‘와’ 마리아”에서 본다. K. Barth, Die christliche Lehre nach dem Heidelberger Katechismus, 1947; 백철현 옮김, 『기독교 교리의 주제와 내용: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에 관한 해설』(기독교신학연구소, 1989), 237.
[미주 3] K. Barth, Die Theologie der reformierten Bekenntnisschriften, 1923, tr. by D. Guder and J. J. Guder, The Theology of the Reformed Confessions (Westminster/John Knox Press, 2002), 21(이하 TRB로 표기).
[미주 4] 박근원·김경재·박종화 편집·감수, 『장로교 신조 모음』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2003), 51, 153이하.
[미주 5] A. Cochrane(ed.), Reformed Confessions of the 16th Century (SCM Press Ltd., 1966), 191, 153, 247, 373-377.
[미주 6] 『장로교 신조모음』, 153.
[미주 7] I. J. Hesselink, Calvin's First Catechism: A Commentary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1997), 58이하.
[미주 8] K. Barth, Church Dogmatics Ⅰ/2, 537(이하 CD로 표기).
[미주 9] 사실 칼빈은 ‘받아쓰기’의 개념을 여러 곳에서 표현하였다. 구약의 역사서들은 성령의 말을 받아서 된 것이다. “사도들은 성령의 말씀을 틀림없이 받아썼고, 따라서 그들의 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한다.”(Inst.  Ⅳ.8.6, 9). 그러나 이러한 말들에 근거하여 성서의 축자 영감설을 수립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칼빈이 성서의 권위를 전개시킨 그 배경과 주제는 결코 성서의 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칼빈의 성서 영감론에 대하여, TRB, 58-64; T. F. Torrance, Karl Barth, Biblical and Evangelical Theologian (1990), 최영 옮김, 『칼 바르트, 성서적 복음주의적 신학자』(한들, 1997), 114-11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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