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8년 칼빈이 설교했던 스트라스부르크의 「Saint-Nicolas Church」. 칼빈의 예정론의 다듬어지고 완성된 삶의 자리는 교회였다. ⓒWikipedia

예정론은, 틀림없이, 초기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에서 강하게 지지되는 교리들 가운데 하나로서 개혁교회 신학의 독특한 특징을 드러내주는 교리이다. 그러나 원래 예정론은 칼빈보다는 오히려 루터가 강하게 강조하였던 교리이다. 루터는 초기에 예정을 하나님의 고유한 계획에 의해 하나님 자신이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또 자신의 은혜에 참여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감추어진 의지”(1)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터는 곧바로 이 위협적인 예정문제를 칭의 신앙 안에 흡수하여 뇌관을 제거하였고, 그의 동역자이며 탁월한 루터파 신학자 멜랑히톤(P. Melanchthon)은 예정론을 루터파 신앙의 바탕이 되는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의도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후 루터파 신학에서 예정론은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다가 다양한 논쟁의 해결을 시도한 『일치신조』(1577)가 만들어진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2) 이것은 루터파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는 틀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을 더 선호했던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칼빈과 개혁교회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예정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예정론이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을 놓고, 그로써 기독교 자체를 왜곡시킨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든 기획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 예정론

일반적으로 예정론은 매우 사변적인 교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칼빈에게서 이 예정론은 우선적으로 실제적이고 목회적인 관심에서 유래한다. 칼빈 자신이 절실히 체험한 사실은 어떤 사람들은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때, 반응이 없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는데 반하여 어떤 사람들은 신앙으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는 이 매우 곤혹스러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인간의 개성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에서 찾았다(참고, 엡 1:4). 이 실제적이고 목회적인 동기는 그의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1559)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칼빈에게 이 교리는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믿고 또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와 은혜에 근거해 있다는 확신을 주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알기까지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충분히 또 분명하게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한 선택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소망을 무차별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시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절하신다는 이 대조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명백하게 드러낸다(Inst.,Ⅲ.xxi.1).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예정론을 신자의 삶에 대한 진술 뒤에서 다루는데, 그것은 예정론이 신앙생활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라는 바울의 진술대로 칼빈은 신앙의 삶 가운데서 일어난 것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칼빈은 로마서 11장 5-6절에 있는 바울의 주장을 지시한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따라서 칼빈에 의하면 선택의 교리는 “유용하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너그러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기 때문이다(Inst.,Ⅲ.xxi.1). 이러한 칼빈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많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가 거부하고,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칼빈 자신이 “두려운 교리”(Inst.,Ⅲ.xxiii.7)라고 말한 소위 “이중 예정”에 대한 견해이다. 칼빈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동일한 계획에 의하여 창세전에 버림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에 대한 명확하고도 자명한 설교가 기껏해야 죽음에 이르는 냄새로밖에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4) 『기독교강요』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예정론에 대한 거부감과 이에 대한 칼빈의 응답

이 교리가, 특히 이중 예정이 인간의 이성에 장애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독단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사람들에게 그들의 결정에 대해 무책임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칼빈에게는 그 교리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관하여 말하는, 성서적 근거가 확실하고 따라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관점이었다. 칼빈은 이 교리에 대해 제기되는 불평들을 인정하고 그 자신이 물음을 제기한다. “왜 주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왜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을 가하시는가?” 그는 단순히 대답한다. “이 이유를 아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리고 그는 그의 독자들이 하나님의 감춰진 작정을 캐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경고한다.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판단”(롬 11:33)에 비하여 “우리 지성은 너무 둔하고” “우리의 지혜는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의 우매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위엄을 꿰뚫어 알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 압도”(5)될 뿐이다. 칼빈은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우리에게 회상시킨다.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롬 9:20, 참고 Inst.,Ⅲ.xxiii.1,4,5). 칼빈은 그의 첫 번째 『신앙문답서』(1536)에서 선택과 예정에 관한 이 항목을 목회적인 위로의 말과 함께 끝마친다.

칼빈은 본래 17,8세기 칼빈주의 정통주의자들에 의해서 강조된 것과 같은 그런 방향에서 예정론을 체계화하여 “두려운 교리”를 만들 생각은 애당초 없었던 것 같다. 바르트는 그 이유를 칼빈과 같은 첫 세대 개혁교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주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 유감스러운 고려를 할 시간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한다.(7) 칼빈이 애당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간의 행동이나 운명, 역사철학이나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죄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길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이 예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손 안에 있다는 이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본 것이다.(8) 그가 구원의 현실 문제를 놓고 성서에서 그 해답을 찾았을 때, 그가 찾은 한 가지 해답은 구원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에게서만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안에는 죄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단호한 자유 의지가 있다”고 주장한 반(semi)펠라기우스적인 인간관과 구원관에 맞서는 어거스틴적, 바울적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전적인 은혜에 대한 강조 같은 것이었다.

칼빈은 바울과 어거스틴을 따라서 구원의 근거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일 때, 단지 여기에만 인간의 최상의 위로와 구원의 완전한 근거와 희망, 신앙의 확실성과 변함없는 구원의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앞선 것’에 대한 칼빈의 강조, 곧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대한 강조가 신학적으로 표현된 것이 예정론이다. 따라서 그는 예정에 대한 논의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우리 구원의 토대로서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주제로 되돌아간다.(9)

이 예정론은 결코 칼빈의 다른 교리들에 삼투하는 통일적, 실질적 원리, 요컨대 칼빈의 ‘핵심 교리’는 아니다. 그는 복음 선포의 결과에 따르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설명하려는 맥락에서, 예정론을 구원론과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하여 고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동역자이며 후계자였던 베자에 의해 예정론은 루터파의 경우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개혁교회 신학의 중심적 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략 1570년 이후로, “선택”이라는 주제가 개혁교회 신학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맥그래스는 개혁교회 신학자들이 이 개념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개혁교회 회중을 손쉽게 동일화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이 전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과 같이 이제 개혁교회 회중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 시기 이후로 예정론은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칼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선택된 백성인 개혁교회 회중 사이의 계약의 이념을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했던 계약에 병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 결과 이 통찰은 급속하게 확장되어 가던 개혁교회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의무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백성의 의무를 규정하는 “은혜의 계약”은 개인들과 사회가 준수해야 하는 전체적인 틀을 제공해주었다. 이 신학은 영국에서 청교도주의(Puritanism)로 발전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가슴 벅찬 감정은 청교도들이 새로운 약속의 땅 신대륙에 들어갔을 때, 더욱 고조되었다. 이와 같이 개혁교회는 이 예정론을 통해 하나님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던 것이다.(10)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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