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당시 광주의 한 거리에서 발생했던 군의 폭력적 진압 장면 ⓒGetty Image

최근 들어 부쩍 잠을 자지 못한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더라도 중간에 잠에서 깨면, 그 뒤로는 정신이 말똥말똥한 상태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한참 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까?’ 자문자답해보면,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군부의 무차별 발포로 민간인이 다수 죽어간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다.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1980년 5월, 나는 재수생이었다. 3월에 학원 등록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리라 굳은 결의 속에 다니던 학원이었지만, 5월쯤 되니 마음이 풀어졌다. 그 당시 다니던 입시 학원이 전남도청 분수대가 있는 곳과 가까웠다. 학원 공부가 끝나 집에 가려고 금남로 1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래쪽을 쳐다보니 전남대 학생들이 현수막을 앞세우고 거리행진을 하며 전남도청 앞 분수대로 올라갔다. 5월 14일 저녁 무렵 광주 도심가의 이색 풍경이었다. ‘무슨 일이기에 분수대에 사람들이 모인다냐?’ 궁금했다. 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분수대로 뛰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분수대 위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전부 맞는 말만 하고 있었다. 그 요지는 “계엄령을 해제하라”, “전두환 일당은 물러가라”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남대학교 총학생회가 주도하여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연속적으로 열린 ‘민족‧민주화 성회’였다. 이 집회에 3일 연속 참가하며 나는 5월 18일을 광주 도심지에서 맞이했다.

5월 18일 아침에 학원을 나가니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그래도 입시 학원인지라 3시간 정도 수업을 했다(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확실하지 않지만 3시간 정도 했을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학원 수강생 전체에게 알린다는 방송이 나오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강을 해야 하니 학원생들은 시내에서 방황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뭔 일이다냐?’하며 가방을 싸들고 학원 밖을 나오니, 이미 계엄군이 시내에 진출해서 시민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당시 내 나이 18세.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딱히 학원에서 사귄 친구도 없어서 혼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니 버스는 오지 않지, ‘광주역과 시외버스 정류장 쪽에서 군인들이 젊은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있으니 그쪽으로는 절대 가지마라’는 소리를 어른들은 하지, 정신이 매우 사나웠다.

결국 나는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골목골목으로 2시간여를 걸어서 현재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인 유-스퀘어 건너편에 있던 자취방까지 왔다. 그 이후로 10여 일 간은 그야말로 비굴함과 번민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60여년을 살아오면서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음을 머릿속에 떠올렸으며, ‘비굴한 삶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당시 광주는 4, 5일 동안 밤이나 낮이나 어디서 쏘는 총인지 몰라도 총성이 빵빵 혹은 두두두두 울려 퍼졌다. 날아오는 총탄에 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동네 곳곳에 퍼졌기에 사람들은 이불장에 넣어 둔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어 잠자는 방 창문에 커텐처럼 설치하고 살았다. 또 이런 소문도 퍼졌다. 옆 동네는 군인들이 집집마다 뒤져서 젊은 사람들을 다 잡아갔고,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유언비어와 진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악 소문들이 떠도니, 5‧18 기간 내내 동네 어귀만 어슬렁거리며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었어도 죽음에 대한 절망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직접 대항한 사람들이야 후에 신군부 세력에 의해 탄압도 많이 받고 오랜 세월을 상처투성이 속에 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당시 광주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런 소소한 삶의 기억들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기억들마저 그것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은 상당하다. 나만 해도 매년 5월이 되면, 살아남기 위한 비굴한 자의 고뇌가 항시 머리에서 맴돌며 떠나지를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시 나는 날아오는 총탄을 막을 요량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두꺼운 담요를 창에 커텐처럼 걸어 두었다. 또한 군인들이 각 집을 수색해서 젊은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차에 태워 데려가거나 현장에서 즉사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방 안에 있는 다락에다 비밀 아지트를 만들었다. 당시 그걸 만들면서도 이게 과연 안 들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그거라도 해 놔야 마음이 편했다.

어찌되었건, 5‧18이 끝났다. 광주에 살면서도 당시는 전혀 몰랐던 5‧18의 진실과 실체를 이듬해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후 같은 광주에서 살면서 내가 참으로 비굴했다는 또는 안이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5월만 되면 드는 생각은 당시 자취방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마 80년 5월을 광주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금도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5‧18을 일으킨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신군부 세력을 용서할 수 없다.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사람이 정당한 재판도 받지 않고 박정희 정부의 폭압 속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서울대 학생 박상진 열사가 친구들 앞에서 유언삼아 사자후를 토했던 양심선언서의 일부이다. 이 말을 남기고 박 열사는 세상을 하직했다.

우리 역사에서 군부 세력이 나라를 이끌었을 때, 민주주의는 꽃이 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적 5‧18인데, 아직도 그걸로 우려 먹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직접 목격하고 그 현장에서 비굴하게 살았던 나 같은 사람도 5‧18이 끝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장의 그 기억 때문에 5월에는 잠을 설친다. 비굴한 자에 불과했던 내가 이럴 진데, 5‧18로 인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가족들은, 5‧18로 인해 오랜 세월을 탄압받은 분들은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과연 그들에게 5‧18로 평생을 우려먹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요즘 미얀마 사건을 보면 어쩌면 군부 독재자들은 하는 짓이 저리도 비슷할까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미얀마 사람들이 넘어서서 가야할 험한 길이 멀기만 한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그러나 80년 5‧18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촛불이 되었듯이 현재 미얀마의 참혹한 현실 또한 먼 미래에는 미얀마 민주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코 꺾이지 말고 힘내시라고 응원을 보낸다. 아니 지금 흘리는 미얀마 사람들의 피와 땀은 반드시 민주화된 새로운 미얀마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5‧18민주화운동을 딛고 일어서며 6월 항쟁, 촛불집회 등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던 것처럼.

장용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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