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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의 때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8.26 16:16
▲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찌니라.” ⓒGetty Image

통통한 고구마 줄기를 붙잡고 뜯었다. 후드득거리며 땅 속에 뿌리를 끊어내고 줄기가 뜯긴다. 이어진 줄기들이 펄럭펄럭 춤을 추듯 길게 딸려서 뽑혔다. 잎이 달린 대를 툭툭 끊어 내었다. 늦여름의 마지막 먹는 고구마 줄기다.

“사모님, 고추 좀 드릴까요? 고추 한 번 삭혀서 드셔보실래요?”

그리하여, 집사님은 자신이 작물을 기르는 작은 밭에 데리고 갔다. 고춧대를 정리해야하니 필요한 만큼 고추를 따라고 했다. 그 사이에 본인은 고구마 줄기를 걷어낼 것이란다. 순간 머릿속에서 고구마대 김치가 매콤하게 무쳐졌다. 그 아까운 것을 버린단다.

나는 고추보다 고구마 줄기가 더 필요하다하여 고추가 아닌 고구마 줄기를 뜯게 되었다. 집사님 입장에서 버리려는 것을 가져간다니, 어찌 계속 미안해하셨다. 그리고,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셨다. 줄기는 데쳐서 볶거나 김치를 만들고, 잎은 장아찌를 담을 것이라고 말하여 요리법도 소개하였다. 쓸모를 알아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집사님은 지난 주일에 들은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때가 적지 않단다. 분명히 들을 때는 감동이 되고 아멘으로 다짐하였더라도 말이다. 살아있는 말씀으로 삶의 쓰임새를 만들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실천과 적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묻혀 버린다. 듣기 좋고 재미있는 말씀이 쓸모없이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고추 몇 개 따려던 것이 계획에 없던 덩굴을 뜯게 되었으니, 손에 흙이 묻어 엉망이 되었다. 흙을 만지기는커녕 하루 종일을 지나도 흙 한번 밟아보기가 어려운 도시의 삶이다.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을 내려가 자동차를 타서 이동하여 건물 내의 주차장에서 실내 이동하여 볼일을 본다. 흙을 묻힌 것은 내가 티끌이었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상기시키는 큰 기쁨이었다. 분주한 일상에서 흙내음을 기억해야겠다. 오랜만에 식전 일을 하고 왔다.

고구마 줄기는 껍질을 벗겨야한다. 잎자루 부분을 톡 꺾어서 주욱 밀어내리면 된다. 껍질이 벗겨진 줄기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곧게 뻗어 톡톡 부러지던 대가 야들야들해 진다. 일종의 거듭남이다. 그러나저러나 벗긴 껍질을 버리는 것도 일이다. 이 것은 음식쓰레기인가?, 일반쓰레기인가? 구분하여 잘 버려야 한다. 퇴비나 사료로 만들 수 있을지 또는 분쇄기에 잘 갈릴 것인지를 고려해서 말이다.

손톱 밑과 손가락이 풀물이 들어서 초록빛을 넘어서 까맣게 되었다. 할머니는 손가락에 반창고를 늘 칭칭 감고 있었다. 터져 갈라진 손가락에서는 진물이 나고 풀물로 늘 까맣게 되어있었다. 반창고를 감아 김도 메고, 바느질도 하고, 설거지며 빨래 등 온갖 일을 하고서 하루를 지난다. 해지고 나서 하루 일을 끝내고서 반창고를 뗀다. 흥건하였던 땀 때문인지 씻고 난 뒤에 물기 때문인지 돌돌말린 반창고 있던 자리가 허옇게 퉁퉁 불어있다.

밭일하는 촌 할매들은 다 그랬다. 남편의 처녀목회지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손가락도 마디마디 굵어지고 관절염으로 뒤틀려 어김없이 반창고가 감겨 있었다. 반창고도 감아드리고, 바세린도 발라 장갑도 씌워드렸다. 고왔을 손에 남은 흔적은 마치 예수님의 못 자국처럼 성스럽기마저 하였다. 아무리 문질러 보았자 물든 손톱의 흔적이 지워지지도 않는다. 나도 웬지 스티그마가 생긴 것 같은 철없는 기쁨이 생긴다. 까만 손톱을 바라보며 기억나는 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할머니들에게서 받은 사랑의 기억이 더 큰 흔적으로 남겨져있다.

음식을 만들어 놓고 민낯으로 머리를 질끈 묶어서 급하게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 손톱에 시선을 멈추어 그렇게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공기를 통해서라도 더러움이 눅진눅진하게 들러붙을 것 마냥 경계한다. 유쾌하지 않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손에 냄새를 맡아보니 양념냄새가 난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미처 밥도 못 먹고 나왔다. 하기는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낀 사람을 손톱의 때만큼도 못 여기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모든 이들이 일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를 비루하게 여기고 그러한 이들을 무시한다.

집 옆의 카페에서 권사님 한 분을 만났다. 네일샵에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손톱에 알록달록 예쁘게 꾸몄다. 특히, 여름철에 도시의 여자들은 네일아트로 곱게 치장을 한다. 음료가 든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권사님이 네일 손질을 해 준다며 같이 가잔다. 방금 만난 낯선 이와는 사뭇 다른 반응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친밀함의 관계가 형성된 차이가 있다. 뒤늦게 어린애들 키우느라 꾸밀 여유도 없는 애처로움 때문인지, 목사 아내의 체면을 위해서인지 알 수야 없다. 여하튼 감사한 일이다.

“권사님, 저도 예전에 다 해봤는데요. 저는 답답해서 메니큐어도 안 발라요.” 손톱 밑의 때에 관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손에서 나는 냄새까지도 나누어 맡아 깔깔 웃었다. 권사님은 화려한 손톱으로 오히려 곤란하였단다. 지방의 임원으로 연합모임에서 임사자로 헌금바구니를 돌렸는데, 처음 만나 본 성도들은 쑥덕쑥덕 뒷말을 하였단다. 옷차림과 치장이 고상하지 못하여 믿음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며 초창기 서먹한 오해가 있었단다. 우리에게 켜켜이 쌓여 두꺼워진 껍질의 고정관념을 벗기고, 한 번 데쳐서 낭창낭창 편견에서 자유로이 보드라워져야 한다.

레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언급된 ‘미스바 카페’가 생각났다. 미용사 겸 마사지사로 일하던 여성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에 재난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사회적 유대를 경험한다. 미스바(mizpab). 팬데믹 시대의 고난 가운데 첨예한 갈등을 드러나고, 재난 자본주의로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함께 만나 안식과 위로를 나눌 공동체, 교회가 되길 바란다. 깊어진 골짜기들을 메우고 기혼 샘의 물이 흘러넘치기를 바란다.

손톱, 거듭남의 비밀. 봉숭아물을 들여 봐야겠다. 손톱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곱게 물들여질까? 고와져라!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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