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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넘김이 좋다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09.23 15:53
▲ 생일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나의 축하한 기념의 날이 아니라, 사랑으로 길러 수고해주신 감사를 기억하기 위한 날 ⓒGetty Image

목 넘김이 좋다. 한 사발을 마셨다. 어찌나 시장하던지. 꿀떡꿀떡 한 모금씩을 삼킬 때마다 시원함이 온몸에 쫙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목구멍을 넘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생생한 느낌이 생경하다. ‘속이 비어서 더 그런가?’ 온종일 한 끼도 먹지 못했다. 사실, 배가 고픈 것도 그리 느끼지는 못하였다. ‘멍 때린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이 적당한 것 같다. 이래저래 다 비워내고 몸에 힘이 빠져 빨리 눕고도 싶다.

흰 쌀밥에 미역국 한 그릇. 저녁 8시가 넘어서 먹는 오늘의 첫 끼니, 입원식. 거창한 일을 한 것 같은데, 단출한 차림이다. 대단하게 차려 먹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그래도, 딱 국에 밥이라니. 좀 서운도 하다. 시간도 이미 많이 늦은 터라 먹기를 사양하였다. 친정엄마는 얼른 국그릇을 들고 내 입에다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속이 좀 풀리도록 따뜻한 국이라도 한 모금 먹어보라 권하였다. 못 이기는 척 한 모금을 마셨다.

엄마는 국그릇을 놓지 않고 계속 들고 있었다. 자신이 낳은 큰딸이 첫 아이를 낳았다니 어떤 느낌일까? 엄마의 묘한 감격은 빨개진 코끝에 아직 남아 있었다.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긴 미역 가닥이 딸려 들어왔다. 미끄덩하게 넘어가는 것이 방금 아이를 낳으며 쑤욱 나오던 마지막 느낌이 중첩되어 떠오른다. 국물도 건더기라고는 미역뿐이다. 국물에 할랑거려 뜬 미역이 딱 초록빛의 미역을 담근 바닷물이다. 눈으로 보는 시적인 것 같은 표현과 달리 맛이라고는 덤덤하기만 하다. 맹맹한 국물을 먹고 난 이제야 조금 고요한 평온의 안정감이 든다.

남편이 밥을 먹겠다고 나간 사이에 나는 분만실로 이동하여 출산을 하였다. 긴 시간 답답한 병실에 함께 있으며 진통의 고통을 호소하는 내 옆에 있었다. 자신도 지치고 배고프기도 했으리라 생각되었지만, 괘씸하기도 했다. 내내 같이 있다가 마지막의 순간을 놓치다니, 본인도 장모님의 강권함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아쉽고 미안한 내색을 한다. 아기를 안아 본 기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이 상기되어 있다.

“사랑하는 큰딸, 생일을 축하한다.”

생일이면 늘 도착하던 문자가 오지 않는다. 가족단체 대화방에 엄마에게 내가 생신 축하 메시지를 먼저 건네고 얼른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도 받지 않아 친정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뭔 일이냐?” 그러고 보니 채팅방에 이러저러한 일상들을 공유하면서도 통화한 것이 한참 되었다. ‘자식이란 것이 그저 무슨 일이나 있어야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로구나.’ 어쩌면, 언제나 행여나 다 큰 자식에게도 무슨 일이 있을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자식인 내가 부모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성경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한 말씀도 내가 잘 되고 장수하는 처세의 비결로 써먹으려 하니 말이다.

“엄마 생신이라 전화했지 뭐.” 아빠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를 부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렇다고 아빠와 대화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나눈 채로. 엄마가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오늘은 나의 양력 생일과 엄마의 음력 생신이 겹친 날이다. 서로 생일인 날이다. 추석을 전후하여 우리의 생일이 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는 음력 생일도 챙겨준다. 8월 16일. 추석 다음 날인 이유다. “우리 딸, 내가 미역국 끓여줄 수 있어서 좋네. 어서 먹소.” 며느리가 된 딸이 명절 다음날에는 친정에 당도할 터이니, 추석날에 미역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신다. 가을날. 그것도 명절 다음 날이라 온갖 먹거리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이다.

그런데, 그런 때마다 참으로 미안하다. 최고의 불효였으니 말이다. 내내 친정 갈 날을 손꼽았던 엄마는 친정에는 갈 수도 없었다.

“엄마, 명절 다 치르고 고생했겠네. 명절 전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래. 8남매인 아빠 형제의 식구들 저녁밥까지 다 차려 먹고, 쪼그려 앉아서 그 많은 설거지까지 하고. 진짜 힘들어 죽을 뻔했다.”

명절 전부터 음식 준비에 뒷설거지까지 다 끝내고 한밤중에 시작된 진통이 오죽했으랴.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명절 기간 만삭의 몸으로 고단하여 더 일찍 진통이 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새벽기도 다녀와서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기를 소리가 울리도록 설정을 바꾸지 못해서 미처 받지 못한 것이란다. SNS가 안 되는 것은 모르겠단다. 며칠 전, 친정 근처에 사는 막내딸이 생일 기념으로 전화기를 바꾸어 주었다. 그날 매장에서 멀쩡하게 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어쩐 일인지 집으로 와서부터는 톡 메시지들이 가지도 오지도 않는단다. 나뿐만 아니라 생신 축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할 다른 자매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막내가 진즉 말했으면 될 것을 답답하다며 속상해한다. 자식들 번거롭게 오가는 것이 미안하고, 명절 얼마 남지 않아 자식들 누구라도 올 때를 기다리며 참았을 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리 있는 친정에 가지 않을까 하였다가 짧게라도 다녀오자 생각하였다.

언젠가 생일날에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려던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근데 생일날에 미역국은 왜 먹는 거야?” 아이를 낳던 날에 먹었던 훌렁한 미역국이 떠올라 말했다. “왜긴 왜야. 내가 힘들게 너 낳고. 주야장천 미역국을 먹었다. 널 낳고 미역국을 먹은 해산의 수고에 감사함으로 기억하라는 거지.” 즉흥적으로 갖다 붙인 이유치고는 그럴듯하고 좀 멋있었다. 진짜 그런 것도 같고.

자식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면서야 깨달았다. 생일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나의 축하한 기념의 날이 아니라, 사랑으로 길러 수고해주신 감사를 기억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을. 엄마는 명절 연휴인 오늘, 새벽 비바람에도 운전을 하여 교회를 다녀오셨다. 자식 잘되라는 기도를 잊지 않고 하였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다는 요즈음 때에도 언제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요로운 마음의 고향은 ‘엄마품’이다. 그것이 여성의 희생적 모성애 같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녀들에게도 미역국을 끓여주게 하는 사랑의 힘이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둥근 달처럼 둥그런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밥상 공동체. 풍성한 창조,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복이 어려운 시절을 지나는 중인 모두에게도 있기를 따뜻함으로 빈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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