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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혼은 구원이었을까사자모 소리
장사모 | 승인 2021.11.11 16:44

인생의 문제가 격렬 해지고, 소원이 절실해지니 오히려 고요하다. 그것은 평안함이라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이러할까? 거센 풍랑에 시달리면 시름이 차라리 놓일 것같이 답답하다. 비라도 철철 맞으면 눈물인냥 시원하기라도 할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우신다는 성경 말씀이 그렇게 절절하게 다가온다. 꽁꽁 묶여진 입은 할 말이 없고, 닫혀있는데도 헛헛한 속은 끄적일 힘도 없다.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푸르름으로 뒤덮었던 잎사귀들은 붉고노란 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그새 빙그르르 돌며 떨어진다. 구슬픈 경치 때문인가 청명하여 높은 하늘에도 우울한 마음은 착 가라앉는다. “등따숩게 배불러 게으른 사람들이나 우울증이라 생각했어요.”

옷방의 구석진 화장대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서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었단다. 어떤 때에는 신호가 바뀌어 아무 생각 없이 출발하는 앞 차를 따라 달리고 멈춰서 정신을 차리니 낯선 논길 한가운데 있었단다.

“권사님, 그런데 볼이 왜 이렇게 빨개요?”

갱년기가 시작되었다 답한 권사님은 얼마 전 이혼을 했다. 며느리와 아내로서의 삶을 마쳤다. 현모양처. 그것을 지켜내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쓰고 노력했다. 결국은 지켜내지 못했다는 편견과 낙인으로 옷 입게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한다.

미덕이라 여겨지는 그 전통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 강요함의 폭력은 얼마나 있었는가.

고통스러움에 그저 끄덕여 손잡아 주는 공감만 할 수 있었다. 단순한 그 공감은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것 같은 복잡함에 작은 틈을 만들어 숨을 쉬게 하였다.

옴짝달짝 못할 것 같아 비좁은 마음에 숨 막히는 고통이 홀가분하게 털어낼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마주 앉은 나에게조차 놀라운 일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하였다. 실로 수년간을 몇 시간에 다 말할 수도 없지만, 그는 실컷 토해냈다. 예상보다도 훨씬 긴 만남이 되었다.

상기되어 있던 두 볼이 괜찮아지더니만 두 눈이 시뻘겋게 되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면 밥은 스스로 차려 먹을 수 있다. 비록 한술 넘길 입맛이 없더라도. 그러나, 상실한 감정의 아픔은 스스로 어찌 해결하는 것이 불가했다. 그런다고 믿는 사람들의 만남은 위로가 되었느냐 하면 쓰디쓴 말이다. 마치 욥의 세 친구들처럼 하는 심방 말이다.

시원 섭섭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답하였다.

“아니오. 섭섭함은 없고 시원하기만 해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어요.”

다음날 아침 메세지를 보냈다.

“권사님,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자신의 마음과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 솔직하게 드러내고 잘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그래야 되고, 며느리는 이래야 되고, 여자는 저래야 되는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간다. 가로막혀 있던 현실의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더 이상 상처입지 않고 더 넓고 자유롭게 말이다.

그에게 이혼은 구원이었을까?

비록 나에게도 끙끙거리고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의 두 볼과 마음에 천불이 난다면 공감 해 주자. 가만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자.

우리 서로 돌보며 그렇게.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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