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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 신학, “달걀 껍데기”를 벗기다신정통주의의 성서이해: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⑶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1.11.20 17:37
▲ 안셀름(사진 왼쪽)과 독일 개혁파 전통을 이어간 하인리히 헤페(사진 오른쪽)

목사에서 신학교수로

바르트는 『로마서강해』가 이룩한 성공에 크게 힘입어 1921년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개혁교회 신학 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는 이 대학에 도착하자마자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던 리츨의 제자들과 심각한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 위에 두는 논문과 책들을 계속 집필하면서 자유주의적 신개신교주의가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 문화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복음이 직면한 최대의 위험은 그것이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순순히 받아들여지지만 또 하나의 인간 이성과 문화의 소유물로 전락되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고 있었다. 바르트가 괴팅엔 시절 초기에 투르나이젠에게 쓴 편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면 다음 날 강의 준비를 위해서 ‘계약에 관하여’에 대해서 이미 쓴 것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새벽 3시에 알아차린 후, 오전 8시 강의를 취소해야 했다.(2)

하인리히 헤페와의 만남

이와 같은 좌절의 상황에서 바르트는 17세기 개신교 정통신학을 편집한 헤페(H. Heppe)의 『개혁교회 교의학』(Reformed Dogmatics)을 만나게 되었다. 바르트는 이 교의학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읽고 연구하고 사색했다. 그래서 내가 발견한 것은, 나에게 익숙한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 계통의 신학적인 문서의 분위기보다 종교개혁자로 소급해 올라간 후 성경에 도달하는 길이 훨씬 그럴 듯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이 헤페의 교의학이야말로 그 본체요 형식에 있어서 계시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놀랄 정도로 풍부하게 이 계시에 대한 증거들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3)

1925년 바르트는 뮌스터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았고, 거기서 5년을 머물다가 1930년에는 본 대학교로 옮겼다. 이 기간 동안은 바르트에게는 비판적인 반성의 세월들이었다. 바르트는 계속 나아갔고 마침내 변증법적 신학을 넘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반(semi)펠라기안적인 상호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만 참된 인간성의 창조적인 근원과 보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동을 그의 사고의 중심과 근거로 만들었다.

안셀름의 신학방법을 배우다

바르트는 바로 이 근거 위에서 건설적인 신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중세의 스콜라주의 신학자 안셀름의 신학방법에 대한 연구(4)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안셀름에 대한 기존의 많은 해설서들과 달리 바르트는 그가 합리주의자가 아니라 이성을 이용하여 신앙에 도움이 되게 하려 했던 경건한 학자였다고 주장했다. 신존재에 대한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은 하나님을 신앙과는 별개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신앙으로 이미 믿어진 바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후 바르트의 신학적 인식론의 근본 모델이 되었다.(5)

바르트가 안셀름에게 새롭게 배운 것은 모든 신학은 기도와 순종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이 객관적이고 냉정한 과학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객관적 자기계시는 은혜와 믿음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셀름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혜와 계속적인 은혜를 전제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기 자신을 계속 인간에게 알리시지 않으시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기도하는 태도를 떠나서는 교의학의 작업이 불가능하다”(6)고 하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학 작업을 힘차게 수행하려면 그것의 대상에 항거하는 무장을 할 것이 아니라 이 대상에게 무장해제와 더불어 항복해야 한다”(7)고 하였다.

바르트가 안셀름에 대한 글을 쓰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그 부정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제 그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모든 형태의 자연신학, 곧 자연, 문화, 철학 등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는 시도에 대하여 그가 항상 반대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갔다.(8)

바르트는 이 시기부터 기독교 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진술에서 우리에게 말해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르트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을 ‘그리스도론적 집중’이라고 했다. 바르트는 이 집중에 의해서 비로소 교회 전통과 철학적 체계라는 “달걀 껍데기”를 벗어나 모든 것을 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단순하게, 더 나아가서 신앙고백적이면서도 자유롭게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였다.(9)

바르트의 이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특히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기독교인들이 히틀러를 하나님이 독일을 위해 보낸 메시아로 간주하고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신성시했던 1933년 이후에 나치 체제와 독일 기독교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활발한 투쟁 속에서 점점 심화되다가,(10)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사역을 다루는 『교회교의학』 제4권 ‘화해론’에서 마침내 활짝 꽃을 피웠다. 바르트는 이 화해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독교 메시지의 인식론적 원리를 구성하고 있으며,(11)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신학의 기초가 되는 본문이라고 말한다.(1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보는 바르트의 이러한 이해는 이미 그의 자펜빌의 목회시절부터 나타나고 있다.

미주

(미주 1) Stanley J. Grenz and Roger E. Olson, 20th-century Theology, 1992, 신재구 옮김, 『20세기 신학』(서울: IVP, 1997), 105.
(미주 2) D. L. Muller, Karl Barth(1972), 이형기 옮김, 『칼 바르트의 신학사상』(서울: 양서각, 1988), 31.
(미주 3) H. Heppe, Reformierte Dogmatik, 이정석 옮김, 『개혁파 정통 교의학』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10.
(미주 4) K. Barth, Anselm: Fides Quaerens Intellectum, tr. by I. W. Robertson (Cleveland: The World Publishing Co., 1962).
(미주 5)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중 하나님의 지식을 다루는 장의 처음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안셀름의 책에서 하나님의 지식과 존재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태도를 배웠다.” K. Barth, Church Dogmatics, Ⅱ/1, 4(이하 CD로 표기).
(미주 6) CD1/1, 25.
(미주 7) K. Barth, 『복음주의 신학입문』, 167.
(미주 8) Stanley J. Grenz and Roger E. Olson, 『20세기 신학』, 104.
(미주 9) J. D. Godsey가 서문과 후기를 쓴 Karl Barth, How I Changed My Mind(1966), 김희은 옮김, 『바르트 사상의 변화』(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1), 63-64.
(미주 10) 바르트가 기초한 『바르멘 신학선언』(1934), 특히 제1조를 참고. 박근원 외 편집 및 감수, 『장로교신조모음』(서을: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2003)
(미주 11) CD4/1, 17.
(미주 12) CD4/2,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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