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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현현’(신현)! 우리의 ‘현현’은?(신 4:15-19; 행 25:9-12; 마 3:13-17)주현절 첫째 주일(1월9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1.07 14:38

1.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지난 1월 6일(목)이 주현일이었습니다. 개신교회는 서방교회(천주교와 개신교)의 전통을 따라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주현일을 1월 6일로 고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동방교회는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인 그레고리력 1월 7일에 성탄을 지내고 1월 14일에 주현절을 지냅니다. 서방교회는 그레고리력을 중심으로 교회력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동방교회는 일상 활동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예배와 예전을 명시한 교회력에서는 보편교회 시절부터 사용한 율리우스력을 따릅니다.

그레고리력은 태양력이죠? 158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율리우스력을 고쳐서 만든 것으로 신력이라고도 합니다.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해 기원전 45년부터 시행한 양력 교회력입니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일 또는 366일(4년에 한 번)입니다. 따라서 율리우스력의 1년 평균은 365.25일로 4년마다 하루씩 ‘윤일’을 넣게 됩니다. 그러나 측정 오차로 인해 100년마다 하루씩 늦어져 그레고리오 시대에는 윤일이 14일이나 되었습니다. 따라서 1582년부터 보다 정확한 그레고리력으로 점차 대체되었습니다.

▲ 기독교 교파와 분열

동방교회, 서방교회, 무슨 말일까요? 잠시 교회 분열의 역사를 한번 살펴볼까요? 초대교회는 11세기에 크게 동서 교회로 분열이 됩니다. 여기서 서방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가톨릭교회를 뜻합니다. 서쪽에 있어서 서방교회라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이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며 나왔죠? 동방교회는 동방 정교회라 불리는데,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이곳 동방 지역에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눈 것입니다.

동방교회는 그 이름에 정교회가 붙어 있는데, 여기서 정교(正敎)는 사교(邪敎)가 아닌, ‘올바른 가르침’을 뜻합니다. 따라서 정교회라는 말은 ‘올바른 신앙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구성원의 자부심이 대단하죠? 서방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가톨릭의 교리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통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올바른 교회(정교)와 보편적인 교회(가톨릭), 곧 정통과 보편성이 나누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 개신교회도 이것을 본받아 정통, 신 정통, 복음, 순복음 등 이름을 갖다 붙여 교단을 만듭니다. 그러나 크게는 예수(교)와 그리스도(교)로 나누어졌습니다.

아무튼 동서방 교회는 모두 성인을 숭배하고 성인들의 성상과 유물을 숭배(가톨릭 측 주장은 기념) 하는 점에서 우리 개신교와 아주 다릅니다. 또한 세례와 성찬만 인정하는 개신교와는 달리 일곱 가지 성례를 인정하고 여기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일곱 가지 성례는 입문성사인 ① 세례성사(Baptism, 개신교의 세례), ② 견진성사(Confirm‎ation, 세례를 재확인, 개신교의 입교의식, 곧 유아세례를 받은 이가 만 15세가 지나 스스로 신앙인이 되겠다는 믿음의 선택), ③ 성체성사(Sacrament, 개신교의 성찬)가 있고 치유 성사인 ④ 고해성사(Confession, 개신교의 목사와의 상담)와 ⑤ 종유성사(Extreme Unction, 개신교의 임종 예식), 그리고 구원을 위한 친교에 봉사하는 ⑥ 성품성사(Ordination, 개신교의 목사 안수)와 ⑦ 혼인성사(Matrimony, 개신교의 혼인예식)입니다. 특별히 동서방 교회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만큼이나 행위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선행의 공적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그렇지만 가톨릭 교인들은 선행이 구원의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습니다.

▲ 가톨릭의 7 성사와 바티칸 대성당(성 베드로 대성당)

그러나 두 교회가 다른 점도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에 대한 이해인데, 동방교회에는 초대교회 이후 사도들이 직접 세운 교회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사도 베드로의 전도 여행과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을 생각해 보면) 동방교회 주교들은 예루살렘 교회나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교회, 로마교회나 어느 한 교회가 더 위대한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교회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 사도가 세운 교회인 로마교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초대 교황이 되며 이 베드로의 무덤 위에 로마교회의 상징인 성 베드로 대성당(바티칸 대성당, Basilca di San Pietro)이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서방교회는 로마교회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로마교회는 서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의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죠? 또한 베드로를 잇는 로마 교황의 권위는 엄청납니다. 따라서 교회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동방교회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 역시 베드로가 저작한 베드로전서 2장 4절부터 10절 말씀을 근거로 사도 전승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며 ‘만인 제사장 교리’를 제안합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신학적으로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동방교회는 신비적이고 사색적이라면, 서방교회는 로마문화와 전통처럼 실제적이었습니다. 동방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인간성이 신성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서방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동방교회는 신성에 대한 명상을 중요시했으며 서방교회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구원관에 있어서 개신교는 가톨릭을 따르나 교회와 교황의 권위 대신 만인 제사장 교리를 통해 위계나 조직보다 개인의 믿음을 중시하는 것은 동방교회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동방교회는 신론의 신비인 삼위일체론이나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다루는 기독론이 발달했다면 서방교회는 인간의 죄와 은총의 역할을 다루는 죄와 은총론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령과 관련하여 동방교회는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라는 니케아종교회의 결정을 따랐으나, 서방교회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예수)로부터 나온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크게 대립하였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배 때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서방교회의 전통이지만,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면 동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2. 성탄절과 주현절

오늘은 주현일(1월 6일)이 지난 주현절 첫째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주님의 ‘현현(Epiphany)’, 곧 주님께서 나타나심을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에피파니보다는 ‘신현(Theophany)’이라고 부릅니다. 현현의 강조점이 다릅니다. 주님이시냐, 신이냐! 아무튼 성탄절이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라면 주현절은 주님의 공생애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현절은 주님의 성육신과 공적 삶을 축하하던 절기입니다.

사실 초대교회가 처음 만든 절기는 부활절기였습니다. 그리고 성탄절기를 만들었는데, 이때 성탄절기는 준비절기인 대림절과 축하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 세 절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성탄절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주현절을 점차로 잊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현절은 신년 첫 주에 시작되는데, 이때는 세상의 새해맞이로 인해 서방교회 전통은 주현절은 잊고 성탄절을 중시하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탄절은 12월 25일입니다. 그러나 원래 12월 25일은 로마제국 사람들이 지키던 축젯날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12월 25일을 로마의 태양신, 곧 ‘솔 인빅투스(무적의 태양신)’의 출생일로 정해서 축제를 즐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가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지나, 다시 태양 빛(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습니다.

중국 주(周)나라의 경우, 동지를 설로 삼았는데, 왜냐하면 동짓날이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있죠? 팥죽의 새알을 하나 먹으면 한 살 는다고 어릴 때 빨리 나이 먹고 싶어서 여러 개 먹은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고대 사람들도 그렇고 로마 사람들도 동지가 지난 12월 25일을 태양신이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종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날에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의 태양’이시라고 축하하면서 기뻐했습니다. 로마제국 태양신의 축제 날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토착화시킨 것입니다. 최근 추수감사절을 추석 때로 지키는 교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고 그 지역의 문화와 상황, 곧 풍토에 맞는 토착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태양의 모습을 한 로마의 태양신과 머리에 태양 원반 왕관을 쓴 이집트의 태양신 라

그런데 주현절도 이와 비슷합니다. 동방교회 지역인 이집트에서는 로마와 달리 1월 6일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습니다. 사실 이집트도 여러 신들이 많았지만, 태양신이 가장 중요한 신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해님 달님 이야기’가 친근합니다. 고대인들은 모두 이러한 자연물에 신성이나, 무생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학에서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을 애니미즘(Animism), 동물이나 식물을 숭배하는 것을 토테미즘(totemism)이라고 합니다.

▲ 전래동화 해님 달님 이야기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아무튼 동방교회 역시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 축제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날을 그리스도께서 오신 날인 주현절로 기리며 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성탄절과 주현절이 갈리게 됩니다. 특별히 1월 6일은 신년과 가까워 동방교회에서는 이 주현절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대림절로 한 해를 시작하는 서방교회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우리 개신교가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서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것이고, 주현절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동방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1월 6일에 시작된 주현절은 최소한 두 달 가까이 진행됩니다. 곧 부활절기의 준비 절기인 사순절에 바통을 넘겨주기까지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현절의 독특함은 무엇일까요? 동방교회는 주현절에 예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것,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신 것,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 등을 축하했습니다. 성자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나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 초기를 묵상하는 절기로 삼았습니다. 특별히 요한에게 세례받으심으로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주현절기에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하며 한 해의 시작을 은혜롭게 시작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막연한 기대에 들뜨기도 하고, 혹은 코로나 위기 상황과 경제 위기가 새해도 계속될까 막연한 불안에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께서 이 낮고 천한 곳에 임하셨다는 것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공생애 순간들, 곧 사람들을 치유하고 기적을 베푸시며 사랑해주신 것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현절기 동안 이러한 예수님의 현현으로 은혜와 감동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주의 공적인 현현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

예수님은 자신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상징적인 예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그렇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고, 비둘기 같이 임한 성령의 축복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따라서 오늘 구약 말씀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재판 역시 공적인 삶, 곧 참된 신앙인의 삶에 대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먼저 구약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율법 준수를 요구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상 숭배 금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공적인 삶의 모습이죠? 말씀을 볼까요?

4. 어떤 형상이든 미혹하여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여호와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신 4:15-18)
 
하나님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형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은 형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소가 바로 호렙산입니다. 그러나 이후 출애굽하고 광야 생활을 할 때는 시내산이라고 산의 호칭이 바뀝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다시 호렙산이라고 하죠? 사실 호렙이라는 말은 ‘마르다’, 혹은 ‘열기’를 뜻합니다.(미주 1) 태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라는 말은 고대 근동 수메르어에서 달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호렙산은 태양신의 산, 시내산은 달신의 산입니다.

앞서 로마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날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성탄절과 주현절로 만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리 이렇게 태양의 산과 달의 산에서 태양과 달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창조신앙’의 핵심, 곧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태양신의 산과 달신의 산에서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신으로, 곧 우상으로 섬기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신 4:19)

5.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에 관한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3차례의 전도 여행을 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체포됩니다. 예수님처럼 유대 법을 다루는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회원인 제사장과 장로, 유대 지도자들에게 변론합니다(행 22:30-23:1).

그러나 이 변론의 말을 듣고 공회원들과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와 똑같죠?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따라서 로마의 천부장이 중재를 하고 당시 유대 총독 벨릭스에게 호송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로마는 황제가 식민지에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합니다. 총독의 임기는 보통 8년인데, 이 당시 본디오 빌라도 총독 8년 통치 이후, 벨릭스 총독이 부임하여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베스도 총독이 벨릭스의 후임으로 총독으로 오게 됩니다.

유대 총독은 천연의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에 머물며 유대민족을 다스렸습니다. 가이사랴는 농담에 “가이(개) 사러” 빌립보로 가는 곳이 아니라, 유대의 헤롯 왕이 기원전 22-10년경,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만든 도시입니다. 그리고 황제는 헤롯의 후원자이자 상관이죠? 따라서 도시 이름을 로마 황제를 뜻하는 말, ‘가이사(Caeser)’를 기념하여 ‘가이사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 바닷가에서 본 현재 기아사랴 해안 유적과 중심부 광장의 우물과 분수, 그리고 바울의 갇힌 감옥으로 추정되는 곳

아무튼 바울은 가이사랴 주재 벨릭스 총독 앞에서 형사 재판을 받습니다. 이때도 바울은 논리 정연하게 자신을 변호합니다(행 24:1-9). 그러나 벨릭스의 우유부단한 조치로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간 갇힙니다. 벨릭스가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랬기 때문입니다(행 24:26). 또한 유대교 내부의 종교적인 문제에 로마인 유대 총독이 개입하기를 꺼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유야무야(有耶無耶)하다가 벨릭스가 본토로 가고, 베스도 총독이 새로 부임하게 됩니다(행 25:1). 그러자 이번에도 유대인들은 새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에게 찾아가 감옥에 있는 바울을 고소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울은 당당하고 해박한 논리로 유대인들의 거짓 고소에 변론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베스도가 바울을 심문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행 25:9-11a)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받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되면, 가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행 25:3). 그것을 안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행 25:11b).” 그러자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행 25:11b-12).”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황제의 도시인 가이사랴에서 황제인 가이사에게 상소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복음인, 이방인을 위한 복음이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총의 복음,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이 로마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는 공적인 사건입니다. 교회사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현현, 곧 나타나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주님께서 이 낮고 천한 곳으로 오셨듯이 또한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가이사에게 상소하고 로마에 현현했듯이, 우리는 어디로 현현해야 할까요? 주현절기에 우리 주님의 공생애 사역과 바울의 사역,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시고 은혜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미주 1) 문헌 비평에 의하면, J와 P기자에 의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하나님의 산이 ‘시내산’으로, 신명기와 출애굽기의 일부분(출3:1; 17:6; 33:6)은 D기자에 의해 ‘호렙산’으로 불려집니다. BDB 사전에 의하면, 호렙(חֹרֵב)은 ‘마르다(חָרֵב)’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고유명사로 ‘사막’을 뜻합니다. 사막으로 마르게 된 것은 태양의 열기 때문이며 모세 소명기사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도 마른 사막의 태양 열기 때문이기에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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