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할 수 있을까 ⓒGetty Image

칼 바르트의 신학은, 특히 ‘자연신학’에 대한 그의 타협하지 않는 태도와 하나님을 자연과 역사의 세계에 완전히 맞서 있는 ‘전적 타자’로서 보았다. 그의 초기의 이원론적인 신학적 입장 때문에 자주 비판을 받아 왔다. 확실히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이런 판단은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젊은 바르트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신 존재 증명의 전통적인 논증들에 대한 칸트(I. Kant)의 비판에서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인간’, ‘영원과 시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했던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로부터 중요한 변증법적 방법(1)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신학과 문화, 계시와 종교 사이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했다. 1934년에, 그가 브룬너(E. Brunner)와 자연신학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것도 그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변화의 전조

그러나 바르트는 1956년 9월 25일 스위스 아라우(Aarau)의 개혁교회 목회자들 앞에서 행한 “하나님의 인간성”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그 동안 변화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40여 년 전에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 대신에 인간과 인간의 신앙, 인간의 경건, 인간의 종교, 인간의 문화, 인간의 정신, 인간의 감정을 중심에 둔 그 당시의 신학을 비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다보니 당시의 많은 동료들에게 마치 인간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하나님을 위대하게 만드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향해 돌아섰던 하나님을 “인간적인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올바로 이해된 하나님의 신성은 그 자체 안에 그의 인간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신학적 전환을 선언했다.(2)

바르트의 이와 같은 강조점의 변화는 그 뒤에 출판된 『교회교의학』 ‘화해론’(Ⅳ/3-1, 1959년)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바르트는 유일한 생명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창조세계의 빛들’에 대하여 논의한다. 세계의 빛들은 그 나름의 확실성과 상대적인 타당성 안에서 “실제적인 가치, 힘과 의미”(CD Ⅳ/3-1, 162)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을 반영하고, 그의 말씀에 답하고, 그의 진리에 상응”(CD Ⅳ/3-1, 164)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언뜻 보면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처럼 보인다. 한스 큉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 바르트는 전에 그토록 철저하게 거부했던 자연신학을 세월이 흐르고 신학적 상황이 바뀌자 은밀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타협했는가? 만약 손 박사의 주장이 정당하다면, 바르트 신학에 대한 전면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많은 바르트 학자들은, 손 박사에 의하면, 바르트의 이러한 변화를 간과하거나 너무 가볍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4) 앞으로의 연재를 다음과 같이 진행시키려고 한다.

우선, 1930년대 이후 그의 신학의 방법론적 특징이 되었던 ‘그리스도론적 집중’에 대해서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는 ‘자연신학’에 극명하게 대립되는 바르트 신학의 그리스도 중심적 특징을 밝히는 것은 ‘왜’ 그가 그렇게 강력하게 ‘자연신학’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어서 바르트 신학의 전개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나 바르트 신학 전체에 걸쳐서 알아볼 수는 없고, 그가 일관되게 자연신학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교의학』 ‘화해론’(Ⅳ/3-1)에서 바르트가 정말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바르트가 말하는 “세상의 빛들”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인본주의 신학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바르트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사상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작품을 썼는데, 그것은 안셀름(Anselm von Canterbury)의 신 증명에 관한 해석서인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 1931)이다. 바르트는 1928-1938년 사이에 “나의 입장은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자서전적인 언급에서 이 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은 이후 바르트의 신학적 인식론의 근본 모델이 되었다.(6) 바르트가 안셀름으로부터 새롭게 배운 사실은, 기독교 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진술에서 우리에게 말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바르트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을 ‘그리스도론적 집중’이라고 했다.

바르트는 이 집중에 의해서 비로소 교회 전통과 철학적 체계라는 “달걀 껍데기”를 벗어나 모든 것을 그전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고 단순하게, 더 나아가서 신앙 고백적이면서도 자유롭게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7) 바르트의 이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특히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기독교인들이 히틀러를 하나님이 독일을 위해 보낸 메시아로 간주하고 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신성시했던 1933년 이후에 나치 체제와 독일 기독교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활발한 투쟁 속에서 점점 심화되다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마침내 활짝 꽃을 피웠다.(8)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르트가 “신학자로서 또한 정치가로서 마지막으로 말해야 했던 말은 ‘은총’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며, “긴 생애 동안 노력한 것은 점진적으로 이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었고 말하려는 것”(10)이었다.

그때부터 바르트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개념은 ‘교회교의학’ 시기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개념을 대치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과 내용을 가장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11) 1942년에 출판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교리”(교회교의학 Ⅱ/2)는 바르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준다.

이 말씀은 바르트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선택론과 그의 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열쇠가 되는 본문이다(CD Ⅱ/2, 7). 하나님의 신성에서 하나님의 인성에로 바르트의 강조점의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12) 바르트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와 단절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언어는 결코 하나님을 가리킬 수 없다고 했던 과격한 ‘변증법적 신학’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간성”(1956년)은 변화된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13)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40여 년 전에 모든 종류의 경건하고, 자유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신학에 항거하여 강력하게 폭발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는 주장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말했던 것을 다시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하나님은 또한 인간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까잘리는 하나님의 인간성에 대한 바르트의 강조는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라고 했다.(14)

바르트의 이와 같은 철저한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역을 다루는 ‘화해론’에서 보다 심화되고 원대하게 진행되었다. 이 ‘화해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뒤이어 출판된 작품에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다.

‘화해론’에서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관철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종으로 낮추신 참 하나님이고 그로써 그는 화해하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인간의 칭의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이다(CD Ⅳ/1).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다. 즉,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고양된 종이고 따라서 화해된 인간인데, 모든 사람들은 이 화해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데까지 높아진다. 이것은 인간의 성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왕적 사역이다(CD Ⅳ/2). 셋째,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이다. 그는 이 중보자로서 우리의 화해를 보증하고 증거하는 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소명을 일으키는 그의 예언자적 사역이다(CD Ⅳ/3).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화해론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다(CD Ⅳ/1, 125). “하나님의 인간성”은 바르트의 이러한 신학적 발전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바르트가 『교회교의학』 ‘화해론’ 1권(1953년)과 2권(1955년)을 출판하고, 1959년에 출판되었던 ‘화해론’ 3권(Ⅳ/3)을 집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연했다는 것은 그가 193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심화시킨 ‘그리스도론적 집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56년 이전까지 『로마서 강해』의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는 이 한 가지 관점에서 바르트의 신학적 논의가 계속되다가 “하나님의 인간성”을 전환점으로 하나님의 신성에서 하나님의 인간성으로 그의 기독론의 패러다임 이동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15) 바르트의 신학의 전체적인 발전과정 속에서 그의 사상의 깊이와 복잡성을, 또는 외견상으로 반대나 모순으로 나누어지는 요소들을 심오한 통일성 안에서 조화시키는 그의 근본적인 단순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16)

다음 글에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바르트의 신학에서 자연신학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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