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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없는 세상! 감히, 꿈꿔보겠습니다!나쁜 장애인,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를 만났다 ⑵
정리연 | 승인 2022.02.20 15:25
▲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아침마다 전쟁이 벌어진다.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장애인들과 경찰과 승객들 간에 말이다. 이형숙 대표도 마이크를 들고 선전전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이다. ⓒ정리연
“네~ 000입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가려고 하는데요, 혹시 입구에 계단 있나요? 휠체어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입구에 계단이 두 칸 있어요. 낮긴 하지만요.”

지난 연말 모임을 위해 식사 장소를 알아보려고 첫 번째 전화했던 식당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입구가 보이지 않아서 전화로 확인을 해야 했다. 후기가 좋아서 두 번째 전화한 곳은 2층이었다. 다행히 세 번째 전화한 곳은 휠체어 진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화로 미리 확인하는 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선택권이 많이 없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씁쓸할까?

기다리거나 돌아가거나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가족과 함께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리프트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그때서야, 가족도 알게 된 거죠. 평상시에는 모르고 다녔는데 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사실을요. 지금은 많은 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겼지만, 아직도 22곳 정도는 리프트만 있어요. 얼마나 위험해요. 떨어져서 죽거나 다친 경우도 많아요. 엘리베이터 설치한다고는 하는데, 설계부터 완공까지 3~5년 걸린다고 해요. 하지만, 설계는커녕, 예산조차 잡히지 않은 곳이 많으니 참….

이명박 시장도, 박원순 시장도 전역에 엘리베이터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었어요. 그 기한이 2022년이었고요. 그런데, 지금 어때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몇 개의 계절을 더 보내야 지나버린 2022년의 약속이 이루어질까?

부끄럽지만, ‘장애인의 불편함’을 생각하게 된 건 최근이다. 2년 전, 에큐메니안에 함께 하게 되면서 운영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편집장님이었다.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처음엔 당황했다. 허둥지둥 일어나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었다. 커피숍 테이블은 4인용이었는데 폭이 충분하지 않아서 의자 두 개를 빼냈다.

그날 이후로 회의나 식사 장소를 결정할 때, 입구에 턱이나 경사로가 있나 없나, 실내에 휠체어가 들어가도 될 만한 곳인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생각만큼 그런 장소는 많지 않아서 한정된 곳에서 주로 만나지만, 문을 열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게 실내장식 때문이든,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서였든지 간에 말이다. 그들의 불편한 일상에서 이런 건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우리 사회에 교통약자가 꽤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여기에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차라리 다른 거에 쓰는 거죠. 교통약자가 배제되는 거예요.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노인이나 임산부 같은 교통약자들은 계단을 이용해요. 하지만, 저 같은 휠체어 타는 장애인은 그럴 수 없어요. 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엘리베이터 찾아서 다른 역으로 돌아가야 해요. 교통약자가 배제당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진짜 배제당하는 사람은 장애인이라는 거예요.

열 수 없는 문

이렇게 평생 이렇게 살아온 거예요. 우리 눈앞에 당장 보이는 거니까 이동권을 얘기하지만, 모든 삶 속에 스며들어 있어요. 얼마 전에 교육부에 실무협의체가 있어서 회의하러 갔어요. 가서 교육 관련된 논의를 할 거라고 생각하죠? 아니에요. 거기에서도 기본적인 이동권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거의 90% 이상이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장애인이 건물 이용을 못 해요. 이동을 못 하면 내가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없으니까 학교 자체를 못 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학을 못 가니 대학 졸업을 할 수 없고 그에 맞는 일도 구할 수 없어요. 도미노 같은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고용촉진법에 따라서 장애인 교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뭐 해요? 학교를 졸업해야 교사 자격이 주어지는데 공부하러 학교에 갈 수 없어요. 교육도 받지 못 하게 해놓고 교사로 뽑을만한 장애인이 없다고 그런다니까요. 아는 사람 중에서 겨우겨우 학교 졸업하고 교사가 돼서 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게요? 날마다 교장실에서 회의하는데 2층에 있는 거예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육부에서는 2033년도까지 엘리베이터 설치 노력을 하겠대요. 그것도 국공립이요. 100%.

어찌 됐든 장애인이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특별전형으로 갈 수 있는 문은 만들어 놨는데 들어갈 수 없는 거죠.

“출근 시간에 늦었습니다만, 별일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회

아침 8시에 모이려면 대체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해야 할까?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이들을 비난하며 욕할 것이다. 오가며 따가운 시선과 비난의 목소리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반응도 시위의 성공 아닐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졌을 테니까. 움직이기 불편하니 어디에 텐트 치고 기자들 불러 성명서 발표하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하기에,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야 하기에, 어느 한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더딘 움직임을 택했다.

차라리 지금 욕을 먹는 게 나아요. 천막치고 앉아 있으면 뭐 해요. 거의 모르고 지나가요. 우리가 이렇게 지하철 역사에서 어쩔 수 없이 연착시키지만, 그러니까 사람들이 알잖아요. 욕하면서도 우리가 이러는 이유를 알게 되잖아요. 무관심보다는 욕먹는 게 나아요. 물론 욕이 좋지는 않지만요. 하하

며칠 전 선전전 할 때 젊은 청년이 박경석 대표한테 “ㄱㅅㄲ”라고 욕하고 가는 거예요.

지하철 막아서 연착됐다면서요. 계속 삿대질하면서 가더라고요. 제가 진짜 가까이만 있어도 머리칼을 잡고 싶었는데, 멀리 있었어요. 너무 분하더라고요!

어떤 시민은 그러더라고요. 출근 시간이 늦으면 자기는 한 시간 동안 경위서를 써야 한대요. 그러면서 그걸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그래요. 어떤 분은 여기 직장 다닌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늦어서 잘리면 책임질 거냐고 그러고요. 예를 들어서 정말 늦잠을 자서 지각하면 당연히 잘못된 거지만 이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거잖아요. 장애인들이 연착시켜서 회사를 늦게 갔는데 이게 잘리는 이유가 된다면 그 회사는 괜찮은 회사인가요? 오히려 오늘은 이렇게 연착해서 회사 늦게 사서 너무 좋다고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아요? 그런데 다들 안 그래요. 4호선이 강북 쪽으로 가면 서민들이 많이 살잖아요. 왜 하필 힘들게 노동하는 우리한테 이러냐, 늦게 가면 잘린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 다들 그래요. 안타깝더라고요. 그런 회사 다니면서 얼마나 불안해요.

제가 가끔 아침 8시에 지하철 타잖아요? 난리 나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그래요. 어떤 젊은이는 저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저를 가리키면서 왜 이런 출근 시간에, 출근하기 어렵게 타냐, 나중에 9시 넘어서 타든가! 그래요. 저도 대답해요. 나도 출근한다!

그거 보고 참 안타깝더라고요. 저 사람은 왜 저런 사고를 갖게 됐을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어요. 학교에 특수학급 만들어서 장애인들은 격리하고 배제하잖아요. 얼마나 차별이에요? 그러면서 다를 혐오하잖아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이 성인이 돼서 직장도 다니고 정치도 하고 공무원도 하죠. 바뀌어야 할 게 엄청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근데 이제 하나씩 바꿔야겠죠. 아마,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설치되고, 교육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시설이 없어져서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들이 살게 되면 변화될 수밖에 없어요.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는 ‘조제’라는 여성 장애인이 나온다. 할머니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망가진 몸’인 그녀를 철저하게 사회와 차단한다. 그녀는 다락에 갇혀 지내다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밤에만 밖에 나와서 거리를, 하늘을 본다. 할머니가 미는 손수레에 ‘담겨’ 담요를 겹겹이 뒤집어 쓰고서. 장애인으로 받는 차별 위에 여성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는 건?

▲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서로 간의 만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일에서조차 장애인들은 배제되어 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단순한 움직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정리연
글쎄요. 장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피부로 느끼면서 살 수 있을까? 저는 없었어요. 사실, 장애랑 함께 뭉뚱그려 보기 때문에 ‘내가 여성이다’라는 고민은 하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성으로 봐주지 않아요. 그냥 장애인으로 보는 거지. 저도 스스로 너무나 수동적인 삶을 살다 보니까 내가 ‘여성’이라는 것보다는 그냥 ‘장애인이구나’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고 ‘여성’이라는 건 감춰질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비장애인은 무관심한 일상이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한 특별한 길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시민들 생각은 바뀌기 쉽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차별하는 구조에서 시민들은 대개 수동적이잖아요. 매일 다니던 곳도 인식을 못 하는 거예요. 계단이 있으면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다는 걸 전혀 몰라요. 대부분이 비장애인이니까. 탈시설 얘기도 마찬가지로 연관되어있는 거예요. 시설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는 장애인이 시설로 가는 걸 너무나 당연시해요.

선택권을 줘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 번도 밖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한테 시설에서 살래, 지역사회에서 살래? 물어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뭘 알아야 얘기를 하죠. 시설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90% 이상이 어릴 때 들어간 사람들이에요.

시설에서 수십 년 살아온 사람이 바깥에 대해 뭘 알겠어요. 시설 안에서는요, “너희 밖에 나가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한다”, “누가 널 도와줄 것 같니? 밖에 나가면 도와줄 사람 없어”, “너희 가족도 해줄 수 없어”라고 얘기해요. 이런 소리만 계속 들으면서 세뇌당하면서 사는데 어떻게 나가서 살겠다고 하겠어요? 무서워서 못 나오지. 저부터도 그럴 것 같아요.

가족 입장에서도 시설에 있는 게 좋죠. 짐이 안 되니까. 옛날에 못 살 때는 그럴 수 있어요. 돈이 없으니까. 근데 지금은 안 그러거든요. 지금은 지역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정책들과 예산이 충분해요. 그런데도 비장애인들 능력 중심으로 엄청난 건 발전을 하는데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변화를 안 주는 게 문제인 거죠.

제가 직접 경험한 건데요. 충북에 갔어요. 발달장애인인데 6살 때 엄마가 충북 옥천에 있는 시설에 넣었대요. 근데 이분이 47살에 자립하려고 하니까 시설에서 엄마한테 연락한 거예요. 80이 다 된 엄마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왔어요. 엄마는 할머니가 됐고 아들은 아저씨가 됐죠. 근데 엄마가 왜 왔는지 아세요? 혹시 사회로 나오면 자기한테 올까 봐, 자기가 힘들까 봐, 그래서 찾아온 거예요. 6살에 헤어졌는데 정이나 있겠어요? 엄마인지 알아보겠느냐고요. 엄마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냥 눈물만 흘리는 거예요. 그 세월 동안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다른 곳에서 상담한 장애인은 너무 힘들었던 게 처음에는 엄마가 한 번 두 번 온대요. 그러다가 일 년에 한 번, 명절에만 온대요. 그 시설은 명절에 집으로 외출을 보내주는 곳이어서 이분은 기대하고 엄마를 기다린다는 거죠. 근데, 와서 하는 말이 “이번에는 안되고 내년에는 꼭 집에 데려갈게”라고 한 대요. 항상 말은 그렇게 하면서 데리고 간 적은 한 번도 없는 거죠. 그게 한이 되고 마음이 힘들어서 펑펑 울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시설에 있는 대부분 장애인이 이렇게 30년을 사는 거예요.

어떤 분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누나가 보호자가 된 거죠. 근데 누나는 이민하여서 네덜란드에 있는 거예요. 이 장애인을 우리가 만났어요. 이제 사회로 나오자. 활동 지원 서비스도 몇 시간 받을 수 있고 나오면 이런저런 방법이 있다. 우리가 도와주겠다. 그래서 이분도 나오려고 했어요. 근데, 시설에서 네덜란드에 전화했어요. 누나가 수십 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만약에 너 시설에서 나가면 인연을 끊겠다”라고 한 거예요. 근데 이분은 인연 끊는 건 안 되겠다는 거죠. 누나를 언제 봤다고 그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이게 다 시설에서 세뇌당해서 그러는 거예요.

거의 다, 100%일 거예요. 그것뿐 아니라 집에 같이 가족과 사는 장애인의 삶도 다르지 않아요. 어떤 장애인은 가족 행사에 한 번도 참여를 못 했대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알려주지도 않고요. 나중에서야 돌아가셔서 장례 치렀다고 말한대요. 참 비참하죠.

이게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다 그래요. 이런 상황을 우리는 알기 때문에 더 분노하는 거예요. 중간에 사고로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삶을 살아봤잖아요? 그 사람들은 시설에 들어가서 왜 나오지 않느냐?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없대요. 그리고 시설에 한 달 있으면 무감각해진대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적응되는 거예요. 밥 주면 먹고 잘 시간 되면 자고.

내 무지와 짧고 부끄러운 생각을 다 드러낸 시간이었다. 그동안 이동의 불편함을 느껴본 적 없다. 게으름 때문에 시간에 쫓기거나 교통 체증을 겪기는 한다. 걸어 다니는 중에도 큰 불편함이 없다. 가끔 돌부리가 있거나 움푹 팬 길도 있지만, 돌아가거나 건너뛰면 된다. 상가에 들어갈 때도 입구에 턱이 있는지 계단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두 다리가 멀쩡하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버스나 지하철 혹은 택시로 상황에 맞게 이동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어서 ‘이동권’이라는 권리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동권은 이동의 문제뿐 아니라, 장애인의 다른 권리까지 박탈당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니 누굴 만나러 가는 것도, 일하러 가는 것도, 어떤 걸 배우러 가는 것도 너무나 힘겨운 여정이다. 지역 사회 안에서 살아갈 기회까지 박탈당하고 시설에 갇혀야 한다. 가뜩이나 혼잡한 이른 출근 시간에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마음이 이해되었다.

지하철이 연착되고 버스가 느리게 가서 어떤 손해가 좀 있더라도, “함께 가요. 기다릴게요”라고 말하는 우리가 많은, 신체적 ‘장애’는 있으나, ‘다른 장애’는 없는 세상이 넓어지기를 꿈꾼다.

▲ 이런 전쟁은 언제쯤 멈춰질 수 있을까. ⓒ정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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