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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시라, ‘시설 밖에 나갈래, 말래?’날라리 기자의 [기자수첩]
정리연 | 승인 2022.05.15 16:17
▲ 기약도 없이 공전하고 있는 서울시의 ‘탈시설지원조례’ 시행을 규탄하기 위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모였다. ⓒ정리연

오전에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페이스북 포스팅을 훑어보다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보도자료를 봤다. <서울시는 5월 내 탈시설 지원조례 제정하라!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제정 약속 미이행 ‘혼쭐’페스티벌> 관련 내용이었는데, 일정을 보니 당일 오후 3시였다. 에큐메니안 모임을 마치고 나면 오후 2시, 다음 일정이 4시쯤으로 이미 잡힌 게 있어서 잠깐 고민했다. 결론은 마음 편하게, 가능한 시간만 참여하기로!

오후 두 시 넘어서 서대문구에서 출발했다. 모임 장소인 서울시의회로 네비를 켜고 한 삼십 분 걸어갔는데, 도착해보니 아뿔싸! 덕수궁 돌담 근처에 있는 서울시의회 다른 건물이었다. 다시 큰길로 나와서 시청 쪽으로 걸었다. 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한가로이 앉아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여름 날씨에 덥고 지쳐서 거기에 풀썩! 앉아서 쉴까? 원래 취재하기로 예정된 것도 아닌데. 아주 잠깐의 유혹을 뿌리치고 계속 걸었다. 헤매더라도 헤매는 줄 모르고 열심히 걷는 게 길치의 장점이랄까.

걷다 보니 경찰 버스가 보이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좀 더 가보니 차도 한쪽 차선을 막아 놓고 모여 있는 ‘동지들’(저들은 나를 모르지만, 같은 마음이니까)이 보였다. 문화공연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음악공연이 먼저 있었는데 도착할 때쯤 끝나버려서 보지는 못했다. 맞은편 건물에는 엄청나게 큰 오세훈 시장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어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탈시설 지원 조례가 뭐야?

안일환(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의 진행으로 다음 순서가 이어졌다. 언제, 어디든 빠지지 않고 장애인차별철폐를 외치고 있는 든든한 동지, 이형숙(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여는 발언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매일매일 거리에 계시던데, 존경심이 마구마구 솟아올랐다. 나 같았으면 몸살이 백 번은 났을 듯.

“서울시는 2021년 3월 30일, 탈시설지원조례를 연내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미 22년 5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서울시 탈시설 지원조례가 제정되었나요? 네, 아직 안 되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우리는 시청역 지하에서 40일 넘게 농성도 하고 있습니다. 감옥 같은 시설에서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마이크 부서질 듯, 목이 마르도록 외치는 소리가 오세훈 시장 집무실까지 들려야 하는데!!!

“동지들! 너무 분노스럽습니다. 동지들은 어떻습니까? 헌법에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장애인은 갇혀 살아야 합니까? 왜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습니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기 위해서는 이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도 평등하게 받아야 하고 노동할 기회도 있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비장애인처럼 우리도 충분히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모를까요?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는 서울장차연과의 면담을 통해 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에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는데 여론 수렴 과정은 민관협의체를 통해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민의 권리 보장에 여론을 수렴하여 정한다는 게 무슨, 어이없는 말이지??

▲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김정하 활동가가 탈시설에 관한 퀴즈 시간을 가지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정리연

장애인에게 장애인 거주 시설 밖 세상을 보여주라

다음 순서는 김정하(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의 ‘알기 쉬운 탈시설 지원 조례’ 강연 시간이었는데, 상황을 고려해서 딱딱한 강의가 아니라 ‘퀴즈 타임’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와우, 센스쟁이~!! 길바닥에 앉아서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있으니 가뜩이나 다들 힘든데 공부까지 하면 너무 가혹하니까(저요, 제 얘기에요. 크크)! 거기다가 정답을 맞히면 선물도 있었다. 양말! 과연, 발바닥행동 활동가다운 선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같이 맞춰 보세요! 보도자료에 있는 내용을 토대로 힌트를 드릴게요. 맞힌 분들에게 선물이 있을 수도!

자, 연습 문제 갑니다!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 관리 협약에 가입되어 있는데 제19조에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통합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시설은 통합된 환경입니까, 아닙니까?”
(이건 너무 쉬워서 힌트가 없음)

“서울시에서 만드는 조례는 법과 같은 의미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힌트: 조례는 지방 자치 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지방 의회의 의결을 거쳐 그 지방의 사무에 관하여 제정하는 법이다. 탈시설 정책을 서울시가 하고 있는데 하고 있는데 법이 없다. 그래서 탈시설 조례를 제정해달라고 하는 거다.)

“탈시설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만 탈시설 할 수 있다?” O/X?
(힌트: 장애인은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단,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충분치 아니할 경우라고 판단된 경우는 서울시 자치구청장이 장애인의 의사결정 및 현 시설 경험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몇 십 년을 시설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탈시설 하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밖에서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는 시설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설 밖에 나갈래, 말래?”라는 식으로 물어보지 않고 시설에서 나가는 경험을 계속 늘려가면서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고 한다. 전환하는 과정을 계속 지원하면서 결국은 그 사람이 지역사회를 선택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장애가 심한 사람은 탈시설 할 수 없다?” O/X?
(힌트: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는 누구도 배제돼서는 안 되는 당연한 권리다. UN에서도 각국의 정부에 권고하는 가이드를 만들었다. 그 가이드에는 ‘장애인을 의료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 한 시설을 할 수 있다, 없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서울시가 탈시설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그 시점 마지막 시점은 언제일까요?”
(서울시는 오래전부터 민관협의체를 통해 ‘서울시탈시설지원조례’(가칭)를 협의해 왔고 ‘2021년 연내 제정’을 3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발표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나갈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저요! 저요!” 하면서 손을 들었다. 간혹 틀린 답을 외치기도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틀렸다고 비웃는 사람도 조롱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웃으면서 조례 배우기 시간을 즐겼다.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노동의 새벽’을 자신이 직접 개사한 ‘탈시설의 새벽’을 부르고 있다. ⓒ정리연

탈시설의 새벽

다음은 바로 전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혼쭐내고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의 어깨춤 시간! 항상 발언하시는 것만 봤는데 춤을 추시려나? 

“오늘은 발언하러 온 거 아니고요. 제가 못 부르지만 노래 하나 부를게요. 여러분도 노래 못 부르죠?”라는 위트를 날리시고 노래를 시작하셨다. 

감옥 같은 시설 생활/ 지내는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런 삶은 사람도 아니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오십 아홉 그릇 밥통으로/ 눈물투성이 시혜전을
온몸으로 바둥치는 무기력한 구걸질/ 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못 해
이제 다시는 그렇게 안 돼
감옥 같은 수용시설 깨뜨려 솟구칠
거친 투쟁을 피눈물 속에서 숨 쉬며 자라는 장애인의 탈시설
장애인의 분노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다
장애인의 탈시설이 오를 때까지
장애인의 햇새벽이 오를 때까지

알고 보니 노동의 새벽(노래: 노래패 햇살, 작사: 박노해, 작곡: 김용수)이라는 노래를 박 대표님이 개사했다고 한다. 제목은 ‘탈시설의 새벽’이다. 자신과 장애인들의 한 맺힌 삶, 절박한 심정을 노래로 부르셨으니 듣는 이 모두 마음이 아리고 공감이 될 수밖에.

▲ 춤의 행태도 모습도 서로 다르지만 누구하나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정리연

속도가 문제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노들 ‘에스쁘와’ 팀의 춤 공연이 이어졌다. 6~7개 플라스틱 의자를 둥그렇게 놓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멤버들이 앉았다. 경쾌한 음악이 나오자 한두 명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을 돌면서 앉아 있는 사람을 일으켰다. 어느덧 모두 일어나서 함께 몸을 움직였다. 이걸 춤이라고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팔만 허우적거리기는 사람, 그야말로 막춤인 사람 등 춤도 박자도 제각각이었다. 장애 때문에 움직임이 더디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행복해 보였다. 자유롭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음악을 느꼈기 때문인 거 같았다. 첫 곡이 끝나고 두 번째는 템포가 느린 곡이었는데 다른 멤버들은 의자에 앉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명이 춤을 췄다. 그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코가 시큰거리더니 눈물이 나왔다. 시작할 때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면서 크게 원을 그린 후에 무대 밖에서 관람하고 있는 다른 장애인과 인사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계속 손을 잡고 점점 반경을 넓히면서 몸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두 명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비장애인이 자신의 신체로 여러 가지 동작을 만들면 장애인이 그걸 따라 했다. 손바닥을 마주 대기도 하고 자신의 팔로 스스로를 안아주기도 했다. 양팔을 벌리기도 하고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율동을 하는 것 같은 동작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의 몸짓은 정확하지도 않았고 현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곡에 맞춰 온몸을 움직이는 자유로움이 흘렀다. 서글퍼 보였지만 그에게는 그 춤이 치유였고 해방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은 가능하다고, 넘어질 수도 있고 더디겠지만 일상에서 어떤 걸 맞닥뜨려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노래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고, 춤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게 아니라서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었지만.

이후로 ‘신아원 탈시설 투쟁 이야기’와 연극 등 문화공연이 더 이어졌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장애인들이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도 고되구나, 언제쯤 이뤄질까, 씁쓸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시들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혼쭐 페스티벌에 함께하면서 든 생각을 박경석 공동대표의 ‘탈시설의 새벽’ 2절로 붙여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려 본다.

시설 밖으로 나오지 마/ 거기 있어
심장으로 파고들지/ 송곳처럼 아픈 말/ 아-
이런 삶은 사람도 아니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해뜨기 전 밥 먹고/ 해지기 전 잠이 드네
온몸으로 바둥치는 감옥 같은 이 생활/ 아-
이제 다시는 그렇게 못해
이제 다시는 그렇게 안 돼
갇혀있는 몸뚱이를 일으켜 해방해
사람답게 살아가고파
당당히 일하고 교육받는 일상을
장애인이 꽃피울 계절의 그 날을 위해
오늘도 난 길 위에서 투쟁가를 부른다
장애인의 탈시설이 오를 때까지
장애인의 햇새벽이 오를 때까지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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